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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문에 매달리지 말라 (민수기 15장 22-28절)
작성자 요삼일육선교회 등록일 2021-10-15
민수기 15장 22-28절
22 너희가 그릇 범죄하여 여호와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 모든 명령을 지키지 못하되 23 곧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여호와께서 명령한 날 이후부터 너희 대대에 지키지 못하여 24 회중이 부지중에 범죄하였거든 온 회중은 수송아지 한 마리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리고 규례대로 소제와 전제를 드리고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릴 것이라 25 제사장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면 그들이 사함을 받으리니 이는 그가 부지중에 범죄함이며 또 부지중에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헌물 곧 화제와 속죄제를 여호와께 드렸음이라 26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도 사함을 받을 것은 온 백성이 부지중에 범죄하였음이니라 27 만일 한 사람이 부지중에 범죄하면 일 년 된 암염소로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28 제사장은 그 부지중에 범죄한 사람이 부지중에 여호와 앞에 범한 죄를 위하여 속죄하여 그 죄를 속할지니 그리하면 사함을 얻으리라
법조문에 매달리지 말라 (민수기 15장 22-28절)
 < 죄의 치명성을 알라 >
 
   본문 22절의 ‘그릇 범죄하여’라는 표현은 ‘부지중에 범한 죄’를 뜻한다. 하나님은 고의적인 죄는 물론 고의가 없이 부지중에 짓는 죄에 대해서도 속죄제를 드리라고 하셨다(23-24절). 고의성이 없는 죄에 대해서도 속죄제를 드리게 한 것은 모든 죄는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암시다. 중요한 것은 죄의 대가를 치르는 속죄의 길을 하나님이 마련해 주셨다는 사실이다. 회중의 부지중 범죄는 물론 개인의 부지중 범죄에 대해서도 속죄가 필요하다.
 
   본문 27-28절을 보라. “만일 한 사람이 부지중에 범죄하면 일 년 된 암염소로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 부지중에 범죄한 사람이 부지중에 여호와 앞에 범한 죄를 위하여 속죄하여 그 죄를 속할지니 그리하면 사함을 얻으리라.” 회중의 부지중 범죄에 대한 속죄를 위해서는 수송아지를 드렸지만 개인의 부지중 범죄에 대한 속죄를 위해서는 일 년 된 암염소를 드렸다. 그러나 빈자는 비둘기 새끼를 드리고 극빈자는 고운 가루를 드렸다(레 5:7-13).
 
   개인의 부지중 범죄에 대한 속죄 제물을 개인 형편에 따라 적게 드리더라도 반드시 드리게 한 것은 누구에게나 속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죄 사함의 복은 최대의 복이다. 요즘은 죄에 대한 두려움이 희미해지면서 죄 짓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큰 잘못이다. 1970년대까지 미국 라스베가스는 ‘죄의 도성(Sin City)’이라 불렸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의 관광지다. 죄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희미해진다는 암시다.
 
   치명적인 죄의 덫에서 해방시키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사실을 잊지 말라. 죄는 영혼을 어둡게 하고 모든 행복을 망가뜨리고 사망을 낳기에 속죄의 복은 가장 큰 복이다. 사람은 스스로 죄를 속하지 못한다. 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죗값을 다 치른 사실을 믿고 받아들일 때 속함을 받고 구원받는다. 그러므로 죄의 치명성을 아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고 받아들이라.
 
  < 법조문에 매달리지 말라 >
 
   회중의 부지중 범죄에 대해 속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했는가? 수송아지 한 마리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리고 규례대로 소제와 전제를 드리고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려야 했다(24절). 즉 회중의 부지중 범죄에 대한 속죄제를 위해서는 수송아지와 숫염소가 사용되었다. 그때 숫염소로 죄를 사함 받는 의미의 속죄제를 드린 후 수송아지로 헌신을 나타내는 의미의 번제를 제물을 태우는 방식의 제사인 화제로 드렸을 것이다.
 
   회중의 부지중 범죄에 대한 속죄제를 드리는 방법이 언급된 레위기 4장 13-21절에는 수송아지만 드리게 했는데 본문에서는 숫염소까지 드리게 했다. 왜 그런 차이가 생겼는가?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다만 한 가지 얻는 교훈은 율법의 기본 정신이 같다면 세부 지침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너무 법조문에 매달리지 말라. 법조문보다 법 정신이 중요하다.
 
   법과 원칙을 따라 다스린다는 ‘법치’도 중요하지만 법치 이상의 덕치가 필요하다. 덕치를 지향하는 리더는 피뢰침 같은 존재다. 번개로 인해 고압 전류가 흐를 때 피뢰침은 건물을 보호하려고 번개를 자기의 온 몸에 끌어들인다. 그처럼 공동체를 치는 번개로 인해 강한 고압 전류의 충격을 잘 흡수하려고 자기의 온 몸을 내던질 때 참된 리더십이 생긴다. 누군가 나를 신랄하게 비판할 때 그 마음의 충격을 믿음으로 잘 이겨 내야 거룩한 리더가 될 수 있다.
 
   교회를 섬길 때 인간적으로 남을 자기 멋대로 조종해 이끌려는 인치가 없게 하라. 법치만 너무 내세우지도 말라. 편협하게 법조문에 매달리면 큰 것을 보지 못한다. 잘만 활용되면 법치보다 정치가 소중한 것이다. 좋은 정치는 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충하는 것이다. 그런 정치보다 더 소중한 것이 덕치다. 덕치는 모든 것을 품고 크게 볼 때 생긴다. 공동체에 갈등이 많은 이유는 덕의 부족 때문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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