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4장 1-33절
2. 나태 / 3. 두려움
2. 나태
느부갓네살은 참된 믿음은 없었지만 체험한 이적들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성을 인정했기에 하나님이 그에게 편안과 평안을 주셨다(1-4절). 그러나 그 편안과 평안을 창조적인 에너지로 전환시키지 못했다. 의미 없이 편안하거나 일이 없는 삶은 정신을 병들게 한다. 결국 느부갓네살의 정신병의 발단은 나태였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말했다. “생각도 없이, 할 일도 없이, 전념할 일도 없이 완전한 휴식 속에 사는 것처럼 참기 힘든 고통은 없다.”
일이 많은 것은 괴로운 것이 아니라 행복한 것이다. 일이 없이 완전한 휴식 속에 있으면 권태, 허무, 불안, 회의, 무력감, 공허감, 그리고 절망감에 빠진다. 바쁜 것은 원망할 일이 아닌 감사할 일이다. 다만 생각 없이 바쁘지는 말라. 사람 됨됨이는 일하는 모습으로도 파악되지만 휴식하는 모습으로도 파악된다. 하나님이 안식하라고 하신 이유는 일의 바른 해석을 위해서다. 휴식은 사람을 비 노예화하고 일의 목적을 상기시킨다. 일과 휴식의 균형 잡힌 삶은 마음을 건강하게 만든다.
3. 두려움
어느 날 편안과 평안에 젖은 느부갓네살이 한 꿈을 꾸고 그로 인해 두려움에 빠졌고 자기 침상에서의 생각과 머릿속의 환상으로 인해 번민에 빠졌다(5절). 두려움으로 인한 번민은 마음을 병들게 하다가 그 두려움에 집착하면 병이 깊어진다. 느부갓네살은 수시로 꿈에 연연해 두려움에 빠지고 꿈의 해석에 집착했다. 그처럼 꿈에 너무 큰 의미를 두거나 꿈의 해석에 집착하면 신비주의에 빠지기도 쉽다. 신비 자체는 삶을 생동감 있게 만드는 영적인 간헐천 역할을 하지만 신비주의로 인한 두려움은 마음을 병들게 만든다.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두려움에 빠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내일의 소망을 가지며 ‘실패의 여유’를 기르라. 잠언 24장 16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의인도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의인은 실패를 작은 일로 여기며 일시적인 시련이나 하나님의 목적 있는 시련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의인은 실패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서 실패의 책임을 전적으로 자신이 진다. 그래서 자신에게 고쳐야 할 것이나 버려야 할 것이 있다고 여기고 태도를 바꾼다. 또한 실패 속에서 반드시 얻는 것이 있다고 여긴다. 실제로 무엇인가를 잃고 나서 지혜를 얻는 경우도 많다. 사업을 잃지만 친구를 얻고 지위를 잃지만 겸손을 얻기에 의인의 인생은 실패 중에도 적자 인생이 아닌 흑자 인생이다. <22.1.5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