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규의 온라인새벽기도를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간새벽기도
주일설교말씀
칼럼모음
선교이야기
사랑방소식
네트영어
새로 등록된 글
새로 등록된 댓글
교회를 도구화하지 말라 (출애굽기 15장 22-25절)
작성자 요삼일육선교회 등록일 2022-01-05
출애굽기 15장 22-25절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교회를 도구화하지 말라 (출애굽기 15장 22-25절)
 < 십자가를 꼭 붙들라 >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 수르 광야에서 사흘 동안 물을 못 구하다가 간신히 한 오아시스를 만났다. 그런데 써서 먹을 수 없자 ‘마라(쓰다)’라고 외쳤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세례 받은 것을 상징한다. 결국 본문이 주는 중요한 메시지는 구원받은 성도도 마라를 만난다는 것이다. 왜 성도에게 마라의 쓴물이 필요한가? 더욱 큰 믿음과 축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모세는 마라 앞에서 애통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듣고 하나님이 한 나뭇가지를 가리켰다. 그 나뭇가지를 쓴물에 던지자 쓴물이 단물로 변했다. 그 나뭇가지는 주님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십자가는 인생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는 최고 도구이고 인생이 마라를 만났을 때 피할 최적의 장소도 바로 십자가 그늘 밑이다. 마라를 피하지 않고 그때 십자가를 지면 신기하게 상황은 변화되고 역전된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란 말이 있다. 열은 더 큰 열로 다스린다는 뜻이다. 비슷한 원리로 기독교는 이통치통(以痛治痛)의 종교다. 통증은 더 큰 통증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뜻이다. 마라의 고통은 더 큰 십자가의 고통과 희생으로 극복할 수 있다. 십자가가 무엇인가? 사랑과 헌신, 용서와 희생, 그리고 죽음이 십자가다. 중요한 것은 마라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십자가를 꼭 붙잡고 사는 것이다.
 
   사람들이 대개 좋은 곳으로 이민 갈 때 선교사들은 거꾸로 나쁜 곳으로 이민 가서 십자가의 사랑을 전한다. 그런 희생에 힘써 동참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생각한다. “나 살기도 벅찬데 어떻게 선교까지 하나?” 그러나 십자가를 지고 전방으로 나간 선교사들을 위해 후방에서 그 십자가의 짐을 같이 나눠지는 일은 어떤 일보다 소중한 일이다. 마라가 있어도 마라보다 더 큰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하면 마라는 슬며시 사라지고 속히 복된 날이 찾아온다.
 
  < 교회를 도구화하지 말라 >
 
   신도시에 몇백억을 들여 건축한 교회가 있었다. 화려한 건물을 보고 신도시 사람들이 많이 몰려 매주 많은 인원이 등록했다. 겉으로는 크게 성장했지만 내적으로는 병이 깊었다. 은행 빚에 대한 한 달 이자만 엄청나게 지출되었다. 결국 선교사 후원도 다 끊고 교역자 사례도 거의 못 주게 되었다. 견디다 못한 목회자가 건축헌금 얘기를 꺼내자 등록했던 교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때 교회를 떠난 한 장로가 필자에게 말했다. “교회는 크지만 그곳에 무슨 비전이 있습니까? 성도들은 교회가 그렇게 커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또한 제 소중한 헌금이 은행 빚으로만 나가는 것이 견딜 수 없습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바뀌어야 합니다. 제 힘은 미약해도 저라도 한국 교회가 바뀌는데 일조하고 싶어 결단했습니다.”
 
   지금 그런 속병에 걸린 대형 교회가 부지기수다. 그것도 모르고 겉만 보고 등록했다가 속병을 조금 내비치자 교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이다. 그런 교인들을 배신자라고 욕할 수 있겠는가? 리더가 꾀를 부리면 양떼도 꾀를 부린다. ‘자기가 다니는 교회’와 ‘자기가 섬기는 교회’는 다르다. 애틋한 교회 사랑도 없이 주일성수와 말씀을 듣는 장소로만 교회를 도구화하면 복된 미래의 가능성은 그만큼 작아진다.
 
   교회를 도구화하지 말라. 믿음이 부족해서 헌신이 늦춰지는 것은 이해되지만 헌신을 피하려고 교회의 뒷자리를 찾지는 말라. 신앙생활을 할 때 좁은 문으로도 기꺼이 들어가고 십자가의 부담도 기꺼이 져 보라. 마라 인생에게도 십자가가 던져지면 관계도 변하고 가정도 변하고 환경도 변하면서 결국 살맛나는 복된 삶이 그 앞에 펼쳐질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파일1 등록된 파일 없음 파일2 등록된 파일 없음

upd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