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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길 (빌립보서 3장 1-3절)
작성자 요삼일육선교회 등록일 2022-01-24
빌립보서 3장 1-3절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길 (빌립보서 3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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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길 >
 
   빌립보서 3장부터는 빌립보서의 색채가 많이 달라진다. 1-2장에는 따뜻한 격려와 권면으로 넘치지만 3장에는 잘못된 신앙과 사상에 대한 사도 바울의 강경한 어조가 잘 드러나 있다. 그것은 당시에 빌립보 교회에도 치열한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암시다. 그런 영적 전쟁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주 안에서 기뻐하라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반복적으로 기쁨을 도전했다. 왜 같은 말을 반복했는가? 자신에게는 수고로운 삶이 줄어들고 빌립보 교인에게는 안전한 삶이 넘치게 되기 때문이었다(1절). 같은 말을 계속 하면 잔소리처럼 들릴 수 있지만 너무 중요한 얘기라면 같은 말의 반복도 필요하다. 한번 듣고 기독교 진리를 다 이해하는 사람은 없고 한 번의 체험으로 사람은 성자가 되지 않는다. 말씀은 계속해서 들으라고 있는 것이고 성령님은 계속해서 체험하라고 보혜사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성경도 계속 읽으면 말씀의 맛이 다르게 느껴지고 진리가 새롭게 발견된다. 가수가 한 노래를 히트 시키려면 천 번 이상 부르고 연주자가 한 곡을 잘 연주하려면 천 번 이상 연습한다. 말씀도 계속 듣고 기도도 계속 해야 능력 있게 되기에 매일의 성경 읽기와 기도가 병행된 매일 새벽기도가 중요하고 <월간새벽기도> 사역도 중요하다. 반복해서 말씀을 보고 기도하면 말씀이 삶에 용해되어 능력으로 나타난다. 좋은 것을 반복해 체질화시키면 점차 성장하지만 반복이 싫다고 거부하면 성장과 은혜도 없게 된다.
 
   왜 바울이 기뻐하라고 반복해서 강조하는가? 영적 전쟁에서 최고의 승리 수단 중 하나가 기쁨이기 때문이다. 기뻐하는 삶에는 저주나 불행이나 이단이 틈타지 못한다. 언제 이단 교주에게 잘 미혹되는가? 교회 생활에 기쁨이 없을 때다. 교회 생활이 즐겁고 말씀과 기도의 맛을 알면 이단에 잘 미혹되지 않고 불행과 저주도 잘 접근하지 못하기에 바울은 기뻐하라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특히 기뻐할 때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바울이 말한 것에는 기쁨은 하나님 안에 있어야 온전히 주어진다는 뜻이 있다. 진정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믿으면 항상 기뻐하라. 성도에게 있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기쁨이다. 고난 중에도 기뻐하라. 성도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성도와 불신자는 인생관과 가치관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환경이 힘들 때 세상을 바라보면 슬픔과 낙심과 원망이 찾아오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기뻐할 수 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쁘게 사는 것이다. 물론 항상 기쁜 일만 있지 않고 기쁨을 빼앗아 가려는 환경이 수시로 생긴다. 그래도 환경과 상관없이 기뻐하라. 성경에서 기뻐하라는 명령은 대개 기뻐할 만한 환경이 아닌 상황에서 주어졌다. 몸이 좀 병들면 어떻고 시도하는 일이 좀 안 되면 어떤가? 나의 영혼이 이미 하늘나라의 것이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온전히 믿으면 항상 기뻐할 수 있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다. 기뻐하면서 한번 크게 웃으면 생명이 이틀 연장된다는 말도 있다. 죽도록 충성하듯이 죽도록 기뻐하라.
 
  2. 삼갈 것을 삼가라
 
   바울이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권면하면서 첫째로 강조한 것이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고 둘째로 강조하는 것은 삼갈 것을 삼가라는 것이었다. 무엇을 삼가야 하는가? 본문 2절을 보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이 구절을 보면 바울은 3가지를 삼가라고 당부했다.
 
   첫째, 개들을 삼가라고 했다. 이 세상에 개처럼 이중 평가를 받는 동물은 없다. 개는 주인에게는 꼭 달라붙어 맹목적으로 충성하지만 남에게는 “멍멍!” 짖어댄다. 그래서 주인의 사랑을 많이 받지만 남들은 좋게 여기지 않을 수 있고 특히 주인의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다른 동물들에게 개는 가장 얄미울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도 힘 있는 사람에게 꼭 달라붙어 아첨하는 사람에 대해 개와 관련된 욕을 붙인다. 사회에는 그런 사람이 많기에 결국 개는 사람들이 쓰는 욕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이 되었다.
 
   유대인들도 개에 대해 나쁜 개념을 가졌다. 그들은 이방인을 개라고 지칭했다. 하나님이 없이 사는 모습을 주인 없는 개의 모습처럼 여긴 것이다. 비교적 잘 길들여진 현대 개들과는 달리 고대에 주인 없는 개들은 여기저기 길거리를 쏘다니며 아무 데서나 배설하고 아무 배설물이나 뒤져 먹었는데 그 모습이 이방인의 모습과 같다고 여겨 이방인을 개로 비하해서 지칭한 것이다. 바울이 개들을 삼가라고 한 것은 더러운 사상을 퍼뜨려 남의 영혼을 삼키거나 병들게 하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둘째,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라고 했다. 행악하는 자란 살인마처럼 행동하는 극악한 사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영혼을 실족시키고 믿음을 병들게 하려고 고의적으로 접근해서 교회를 힘들게 하고 교인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진리를 왜곡하는 사람도 행악하는 사람이다. 또한 고의적인 악의가 없어도 행악하는 사람과 어울려 다니면 그 행악이 전염되기에 그런 사람을 삼가고 멀리하라고 했다.
 
   예를 들어 점을 쳐주는 것과 같은 것도 나쁘지만 그런 무속적인 신앙을 교회에 퍼뜨려 참된 믿음을 왜곡시키는 것도 행악이다. 어떤 교인은 점치는 것을 가벼운 흥밋거리로 여긴다. 심지어 어떤 교인은 돼지 대가리를 놓고 고사 지내는 일도 가볍게 여긴다. 그것이 의도적으로 남의 믿음을 훼손하고 진리를 막으려고 한 것은 아닐지라도 기독교인이 점과 무속적인 예언을 추구하면 결국 영혼과 교회를 멸망에 빠뜨리기에 그것도 행악이다. 그런 행악을 가볍게 흥밋거리로 여기지 말고 지극히 삼갈 것으로 여기라.
 
   셋째,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고 했다. 이 부분의 번역은 원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미흡한 편이다. 이전의 <개역한글> 성경에서 “손 할례당을 삼가라.”라고 한 표현이 오히려 문맥에 더 맞다. 그 표현에서 ‘손’이란 ‘사람의 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한문으로 ‘손상할 손’을 의미한다. 결국 손 할례당이란 몸을 손상시켜 할례를 받은 사람들의 당이라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할례를 받은 유대 율법주의자들을 뜻한다. 그런 율법주의자들이 빌립보 지역에도 있었다. 바울은 그들을 손 할례당이라고 지칭하며 삼가라고 했다.
 
   그 외에 성도가 삼가야 할 것은 무수히 많다. 그것을 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삼가는 마음을 구비해야 분별력과 판단력을 잃지 않고 폭력성에 노출되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을 잘 다스리도록 만물의 위임 통치자로 사람을 세우셨다. 그리고 사람이 다른 피조물을 폭력적으로 다스리기보다 지혜롭게 다스리도록 내면에 삼가는 양심을 주셨고 말씀을 통해 삼가는 삶을 교훈하셨다.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 계획은 모든 피조물이 조화롭게 사는 것이었다. 어떤 것도 우연히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심한 계획 가운데 창조된 것이다. 세상에는 곳곳에 하나님의 손길과 숨결이 깃들어 있다. 그러므로 만물의 곳곳에 깃든 하나님의 흔적을 발견해서 삼가는 마음으로 모든 하나님의 창조물을 조심스럽게 대하고 어떤 피조물도 함부로 대하며 남용하지 말라.
 
   병에서 회복되고 좋은 것을 보호하려고 살균제와 살충제를 사용할 때도 피조물에 대해 삼가는 마음을 가지라. 먹는 문제를 위해 식용 동물을 도축할 때도 피조물에 대해 삼가는 마음을 가지라. 자연을 개발하고 인공 구조물을 세울 때도 삼가는 마음을 가지라. 자연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지나친 자연주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꼭 필요하다면 자연을 개발하고 인공물을 세우되 그때도 남용하지 말고 삼가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삼가는 마음이 체질화되면 영적인 승리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3. 참된 할례파가 되라
 
   바울은 손 할례당을 할례의 본 의미를 잃고 할례를 받은 것만 자랑하는 형식주의자로 여기면서 참된 할례당의 삶에 대해 언급했다. 본문 3절을 보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할례당)라.” 이 구절은 참된 할례파가 되는 원리로서 3가지를 권면한다.
 
   첫째,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라. 봉사할 때 덕을 세우며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게 하라. 아무리 귀한 봉사를 해도 인간적인 자랑을 삼가라. 교회 봉사와 헌신에 대해 자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순간 사탄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영혼을 무너뜨리는 전략 시행에 나선다. 자랑스러운 일을 한 후에는 자랑하는 마음을 버리고 자랑스러운 자리에서 떠나라. 내려놓아야 할 것을 잘 내려놓고 버려야 할 것을 잘 버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새롭게 주어진다.
 
   둘째,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라. 다른 자랑은 버리되 한 가지만은 꼭 자랑하라. 바로 예수님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님을 자랑하면 남들은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비웃을 수 있다. 그래도 더욱 겸손하게 복음 전파에 힘쓰라. 복음 전파가 없는 삶은 가장 무의미하고 무기력한 삶이다. 불의에 대해 침묵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맞대응하되 그 맞대응 수단이 복음 전파와 말씀 전파가 되게 하는 것이 최고의 용기다.
 
   셋째, 육체를 신뢰하지 말라. 외적인 것에 집착하지 말라. 외적인 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은혜 받는데 가장 중요한 사전 작업은 외적인 껍질을 벗는 것이다. 고소한 알밤 맛을 보려면 첫째로 가시껍질을 벗기고 둘째로 딱딱한 껍질을 벗기고 셋째로 텁텁한 비늘을 벗기듯이 은혜의 맛을 알려면 육신의 껍질을 힘써 벗기고 내면의 진실을 앞세워 살라. 하나님은 외적인 행위보다 진실한 믿음과 마음을 받으신다. 늘 하나님 앞에 큰 믿음과 성령 충만한 마음을 보여드림으로 내일의 복을 예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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