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사슬도 잘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에돔이 황폐해졌을 때 에돔은 철저히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에돔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도전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황폐하게 한 것을 다시 쌓겠다고 했습니다(말1:4). 그런 태도는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긍정적인 믿음의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한 태도입니다. 운명론을 거부하는 것은 좋지만 자기가 하면 다 된다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내세운 잘못된 행동주의도 주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에 깊이 젖어들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외면하고 자기 행동과 경험을 신뢰하면 점차 영혼이 병들게 됩니다. 어떤 이단 목사는 주장합니다. “여러분! 내가 약 8천 번의 임상실험을 해보았는데 귀신은 불신자들의 사후 영이었습니다.” 그렇게 귀신론을 내세워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면서 포교활동에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8천 번이 아닌 8억 번의 경험을 했어도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면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행동주의자의 헛된 주장일 뿐입니다.
신앙과 신념은 아주 다른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신념은 자기를 믿는 것입니다. 한때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구호가 대단한 믿음의 구호처럼 한국 교회에 유행했었습니다. 그런 구호를 내세워 과정이 생략된 성공과 성장을 추구함으로 성공과 성장은 얻었지만 한국교회의 가치저하와 불신자들의 교회조롱이란 안타까운 결과물도 얻게 되었습니다. ‘덕과 윤리와 인격과 성도다움’이 외면된 상태에서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외형적인 목표를 이룬들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가르치는 목사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성도님! 무조건 하려고 하지 말고 못하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 뜻대로 바르게 해야 합니다. ‘하는 것’보다 ‘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렇게 바로 하면 결국은 됩니다.” 세상의 처세술이나 성공학에서도 강조하는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신념을 따라 무조건 “하면 된다. 할 수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진리 안에서 바르게’란 전제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교회의 수준이 얼마나 낮아지겠습니까? 성도는 자기 신념에 의한 행동주의의 사슬도 잘 벗어나야 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