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규의 온라인새벽기도를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간새벽기도
주일설교말씀
칼럼모음
선교이야기
사랑방소식
네트영어
새로 등록된 글
새로 등록된 댓글
구원받은 성도의 4대 삶 (로마서 1장 13-17절)
작성자 미션퍼블릭 등록일 2016-05-25
복음의 기초 26편 말씀 중에서 23번째 말씀입니다
복음의 기초 26편 전체 말씀은 "성경66권설교파일"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복음의 기초(23) 구원받은 성도의 4대 삶 (로마서 1장 13-17절)
 < 큰 불을 일으키십시오 >
   
  감리교를 창시한 요한 웨슬레는 몸무게가 50Kg 밖에 되지 않는 왜소한 분이었지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흥사였습니다. 그는 아버지 위로 5대가 목사였고 어머니 위로도 5대가 목사인 신앙적인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게다가 영국 최고의 옥스포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강의도 했습니다.
   
  1732년, 그는 인디언 선교사로 자원해 미국 조지아 주의 인디안 원주민들을 찾았습니다. 그때 그에게는 광대한 신대륙에 복음을 전하겠다는 웅대한 비전이 있었고, 당당한 실력이 있었습니다. 또한 불타는 사명감과 인디언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처절한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그처럼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큰 꿈과 이상과 사명과 열정까지 가진 사람이 실패하면 도대체 누가 성공합니까? 그러나 사람의 힘이나 능력만 가지고는 되지가 않습니다. 스가랴 4장 6절은 말합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1980년 대학 예비고사 전날, 방송에서 수험생들에게 일찍 잠자리에 들라고 해서 저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매일 늦게 자다가 9시쯤에 잠자리에 드니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몇 시간 몸을 뒤척였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서 불안감은 커졌고, 짜증이 깊어졌고, 신경은 예민해졌습니다. 점차 시계 소리와 옆집의 라디오 소리까지 크게 들렸습니다.
   
  불면증이 그렇게 무서운지 처음 알았습니다. 온 몸이 쑤시고, 머리와 허리도 아파졌습니다. 결국 새벽 네 시 반에 집안 식구가 다 깼고, 급기야 어머님이 옆집에 가서 라디오를 꺼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옆집에서 라디오를 켜고 있지 않았습니다. 신경이 예민해지니까 환청 현상까지 생긴 것입니다.
   
  새벽 5시 15분쯤에 간신히 잠이 들어 6시 10분쯤에 일어났습니다. 그날 간신히 시험을 쳤지만 시험 후에는 정말 허탈했습니다. 평생 불면증이 한 번도 없었던 사람이 하필이면 그때 불면증에 걸립니까? 일 년을 준비해도 하나님께서 하룻밤의 잠을 주시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됩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만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야 축복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셔야 길이 열립니다.
   
  결국 웨슬레는 선교사역에 실패하고, 폐결핵까지 걸린 웨슬레는 패잔병처럼 영국으로 귀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귀향하던 배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배는 사람들의 아우성과 몸부림으로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때 웨슬레도 두려움에 젖어 있는데 어디선가 찬송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에 이끌려 선창으로 가니 모라비안이라 불리는 경건파 성도 몇 명이 손잡고 찬송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웨슬레가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두렵지 않습니까?” 그들은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서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선생님도 예수를 믿어보세요.” 그 말은 목사였던 웨슬리의 신앙양심을 무섭게 때렸습니다. “내가 이러고도 선교사를 자처했나?”
   
  귀향 후, 런던에서 투병하다가 웨슬레는 1738년 5월 24일, 우연히 모라비안 성도들의 작은 밤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청년이 오늘 본문 17절을 낭독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평소에 잘 알던 말씀이었지만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이 그날따라 그의 가슴을 치며 뜨거운 믿음의 불꽃이 점화되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화재로 타죽기 일보 직전에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타다 남은 숯’이란 별명을 지녔습니다. 그 숯에 다시 불이 붙은 것입니다. 그는 투병하면서 자기 묘비에 새길 기도문을 적었습니다. “하나님! 이 무익한 종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타다 남은 웨슬레가 여기 누웠습니다.”
   
  그 마지막 기도문을 써 놓고 35세를 일기로 죽음을 기다리다가 그때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몸도 치유되었습니다. 그 뒤 그는 88세까지 장수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말을 타고 지구를 열 두 바퀴 돌며 복음을 전했고, 일생 4만 2천 4백 번의 설교를 했고, 200권이 넘는 신앙서적을 남겼습니다. 작은 불꽃이 큰 불을 일으킨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거룩한 불꽃을 점화시켜야 합니다. 연약하고 작은 불꽃도 성령님이 기름을 넣어주시고, 우리도 땀을 흘리며 장작을 더 넣으면 됩니다. 큰 불길 속에 들어가서 뜨겁게 타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작은 불길 속에서도 뜨겁게 타오르는 것입니다.
   
  < 구원받은 성도의 4대 삶 >
   
  본문은 복음 안에 있는 축복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잘 말해주는 말씀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복음 안에서 우리는 의인이 되고, 영원히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인으로 인정받고 끝나야 합니까? 아닙니다. 이제는 의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구원 자체도 열매입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사람이 실제적인 삶의 열매를 맺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현재보다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물론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느 날, 전갈이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강물이 불어 건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개구리에게 “나 좀 태워 달라!”고 했습니다. 개구리가 반문했습니다. “전갈아! 내가 너를 태울 때 네가 등에서 나를 물면 내가 죽는데 어떻게 태워주니?” 전갈이 대답했습니다. “개구리야! 너는 뇌도 없냐? 생각해 봐라. 내가 너를 물으면 나도 같이 죽는데 물겠냐?”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서 개구리가 전갈을 태워줬습니다. 그리고 강을 건너는데 갑자기 전갈이 개구리를 꽉 물어 둘 다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개구리가 물었습니다. “왜 물었니?” 전갈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물어야 하는 전갈이잖아.”
   
  그만큼 천성은 변화되기가 힘들다는 말입니다. 중동 격언에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산이 움직였다고 하면 믿어라. 그러나 사람의 성격이 변했다는 말은 믿지 말라!” 그처럼 사람이 변하기 힘들지만 하나님은 그런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성경은 변화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되어 멋있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우리로부터 선한 열매가 많이 나오도록 힘써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열매를 봅니다. 우리는 보다 성숙해져서 얼굴과 복장과 마음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잘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에게 세상적 성공은 없어도 신앙적 성숙은 있어야 합니다. 세상적 성공은 옵션이지만 신앙적 성숙은 필수입니다.
   
  어떤 분이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이는 날 때부터 머리가 통뼈였습니다. 보통 사람은 머리뼈에 금이 가 있어서 자라면서 머리도 동시에 커지는데 이 아이는 머리가 통뼈라서 몸은 점점 자라는데 머리가 자라지를 못해 결국 3살에 죽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태어나고서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비극은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으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숙해져야 합니다.
   
  2. 빚진 자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사도 바울은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빚진 자 의식을 가지면 어느 사람도 차별할 수 없습니다. 만약 사람을 차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있다면 “내게 은혜가 떨어졌구나!”라고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끔 “은혜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말은 결국 빚을 많이 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빚진 자 의식을 가지는 것이 믿음이고, 은혜를 아는 것이고, 아름다운 신앙인격입니다. “내가 이만큼 했지.”라고 공로의식을 가지면 시험이 찾아오지만 “내가 받은 은혜가 훨씬 많지.”라고 빚진 자 의식을 가지면 시험이 찾아올 수 없습니다.
   
  은혜는 주는 입장에서는 선물이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항상 빚으로 생각하고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도 이 빚을 언젠가는 반드시 갚아야지!”라고 생각하고 받을 생각보다는 줄 생각을 더 하려는 것이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처럼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보상이나 칭찬을 바라지 않고 묵묵히 충성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공동체 구성원들이 큰 힘을 얻고, 리더들은 말은 하지 않아도 그런 사람들에게 큰 고마움을 가집니다.
   
  어떤 목사님 고백입니다. 그 교회에서 건축을 하는데 한분의 자기 것을 다 바쳐서 거의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그분에게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집사님! 너무 죄송해요! 그런 충성과 사랑을 받고도 보답할 길이 없네요!” 그때 그분이 말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다만 저의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은혜는 예수님께 받고 빚은 사람에게 졌다는 의식을 가지면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엄청난 역사가 이루어지고, 하나님께서 크게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의 엄청난 상급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빚진 자 의식을 가지고 우리의 가진 것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누가복음 16장 24절 말씀을 보면 부자는 음부에서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가 아브라함을 아버지라 불렀다는 것은 그에게도 형식적인 믿음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부자와 같은 신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때 부자가 음부에서 “나사로의 손끝에 물 한 방울만 찍어서 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 물질로 음부에서 물 한 방울도 사지 못했고 아무리 하소연해도 다시 회개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회개 기회는 이 세상에 있을 때만 주어집니다. 그걸 모르고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낭비하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습니다.
   
  얼마 전, 꿈에 둘째 딸 한나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아빠! 믿지 않는 사람에게 4자는 제일 나쁜 숫자지만 우리 믿는 사람에게 4자는 제일 좋은 숫자지요.” 제가 너무 대견해서 말했습니다. “그럼! 믿는 사람은 자기를 버릴 줄 알아야 돼. 모든 것이 하나님 거야.”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은 하나님께서 영혼의 때를 위한 밑천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 밑천을 거룩한 일에 쓰지 않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내 것을 움켜쥐고는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없습니다. 물질이나 시간이나 내가 쓰고 남은 것을 드리려고 하지 말고 먼저 구별해 드려야 합니다. 같은 양을 드려도 ‘남은 것을 드리는 것’과 ‘먼저 구별해서 드리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우리는 항상 내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빚진 자 의식을 가지고 더욱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영원히 남을 것을 위해 수고하고 투자해야 합니다. 그런 삶이 없이 하늘나라에 가면 “걸걸걸 소리!”만 나올 것입니다. 천국에 갔을 때 사랑과 헌신의 축복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 줄 알고 “그때 그 사람을 용서할 걸. 그때 더 헌신할 걸. 그때 더 사랑할 걸.”하고 아쉬워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진동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기회는 지나갔습니다.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백화점에서 물건 바가지 써서 몇 만원 손해 본 것은 원통하게 생각하면서 영혼과 영원을 위해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것은 원통하게 생각하지 않은 불행한 교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빚진 자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갚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3.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기서 능력이란 헬라어로 두나미스라고 합니다. 이 헬라어에서 다이나마이트란 말이 나왔습니다. 즉 복음은 가는 곳마다 엄청난 역사를 일으키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그 복음을 담대하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그 모습이 오히려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복음을 들고 나가면 복음은 능력이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반드시 선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업을 할 때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면 하나님이 그 사업을 도와주십니다. 공부를 할 때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면 하나님께서 그 공부도 도와주십니다. 결혼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면 하나님께서 최상의 상대를 만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존재하는 최상의 목적을 복음 전파에 두어야 합니다. 구원은 끝이 아닙니다. 만약 구원이 끝이라면 우리가 더 이상 이 땅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구원하시고도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있게 하시는 것은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즘 조금 더 살겠다고 웰빙 음식을 찾고 난리를 치는데 복음은 영원한 삶을 줍니다. 그런데 웰빙 음식은 말해주면서 복음을 말해주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그래서 천사도 흠모한다고 했습니다.
   
  요새 똑똑한 학생들은 다 의사가 되려고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최고의 영적인 의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복음전파에 최상의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복음을 외면하고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해도 소용없습니다. 수학에서 가로 안에 있는 것이 다 플러스라도 가로 밖이 마이너스이면 모두 마이너스가 됩니다. 그처럼 복음 전파가 없으면 이 세상의 모든 축복이 마이너스가 되고 저주의 씨앗이 될 뿐입니다.
   
  물론 우리는 세상일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항상 전도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전도를 위해 이웃도 사귀고, 밥도 사주고, 우리의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자신이 없어도 전도는 해야 합니다. 요새 전도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도 전도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전도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믿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서 최선을 다해 전도에 동참해야 합니다.
   
  4.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 17절 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우리는 믿음생활 할 때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나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넘어집니까?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행위로 빠져들고, 감정적 체험으로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그러나 체험 이전에 계시된 종교입니다. 꼭 기적적 체험을 한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치료하신 10명의 문둥병자 중 오직 한 명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했습니다. 그 장면은 체험이 꼭 구원의 믿음을 주는 것이 아님을 잘 나타냅니다. 우리의 믿음은 감정에 기초하지 말고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나야 합니다.
   
  어떤 분은 교회 다니면서도 점쟁이를 찾아다닙니다. 말은 무서운 것입니다. 무서운 말을 한번 잘못 들으면 그 말이 계속 맴돌아 그의 영혼을 파괴합니다. 그러므로 점쟁이의 말은 아예 듣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날 한 점쟁이가 점치는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당신 터줏대감이 심술이 대단한데! 점괘가 안 나와. 집안에 예수장이 있지?” 점치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없는데요.” “분명히 있어. 사촌까지 잘 훑어봐.” 그러자 점치는 사람이 깊이 생각하다 말했습니다. “사촌 중에는 없고 팔촌 형님뻘 되는 분이 교회 집사예요.” 요즈음 한국 사람치고 사촌, 팔촌까지 뒤져서 기독교인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까?
   
  그 말을 듣고 점쟁이가 말했습니다. “그래서 터줏대감이 섭섭하데. 복채 더 얹고 죄송하다고 빌어.” “아니, 팔촌인데요?” “그러니까 빌어야지. 자네 터줏대감의 마음이 넓으셔서 팔촌까지 굽어 살피시니 어찌 모른 체 하나?” 결국 복채가 몇 만원 더 얹히자 점괘가 안 나온다고 연신 괴로운 표정을 짓던 점쟁이의 얼굴이 곧 펴지면서 점괘를 내놓았습니다. “초년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 천년만년 장수로다.”
   
  그때 점치는 사람이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저는 초년에 죽을 고비를 넘긴 일이 없는데요?” “없긴 왜 없어. 10세 이전에 몸에 칼자국 낸 일이 있어.” 너무 이상해서 다시 깊이 생각한 후에 말했습니다. “아홉 살 때 연필 깎다가 손을 크게 벤 적이 있었는데 그것 말인가요?” “거 봐. 칼자국 냈잖아. 이젠 걱정 마. 고비는 다 넘겼으니까.”
   
  그런 점을 들으면 그냥 듣고 넘길 수 있지만 만약 점쟁이로부터 “마가 끼었어. 40대에 특히 조심해!”라는 말을 들으면 40대의 10년 동안 영혼이 아주 힘들어집니다. 점을 듣고 사는 것과 믿음으로 사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최대의 생존 조건이고 최대의 성공조건입니다.
   
  < 복음 중심적으로 사십시오 >
   
  저도 이런 예언은 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백년 후에 오늘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이 자리에 계속 계실 분은 한분도 없을 것입니다.” 분당 샛별교회는 그때도 분당 지역에 샛별처럼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전혀 다른 사람이 우리 대신 사역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짧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복된 이름을 남기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요새 사회가 각박해지다 보니까 혈기를 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왜 혈기를 냅니까? 그것은 인정해 달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이름을 남기고 ‘자기’라는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처럼 고독한 일은 없습니다. 진짜 왕따는 공동체에서 따돌림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더욱 진짜 왕따는 복음을 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떠나면 곧 철저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 인생을 값지게 산 사람과 헛되게 산 사람이 철저하게 분리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말로는 “썩어질 물질, 썩어질 육신!”이라고 말하지만 물질과 육신을 우상처럼 섬기고 있는 것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그 육신과 물질에 대한 집착을 믿음으로 잘 극복해야 합니다.
   
  내 영혼과 영원을 위해 유익이 없는 것은 과감히 버리고,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고집스럽게 그 일을 밀어붙여야 합니다. 고집도 잘만 쓰면 쓸 만합니다. 고집을 잘 쓰면 하나님은 우유부단한 사람보다 고집이 센 사람을 쓰십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젊은이들이 빗자루를 잡으면 어르신들로부터 야단을 맞습니다. “왜 내 상급을 뺐느냐! 왜 이리 버릇이 없느냐?”고 어르신들이 더 앞서서 일을 합니다. 헌신의 축복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한 것은 어느 한 가지도 헛된 것이 없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평가하시고 생각하시고, 결정적인 때에 축복으로 돌려주시고, 마지막 때에 천국에서 상급을 후하게 내려주실 것입니다.
   
  요새 메일 시스템으로 온라인 새벽기도를 하니까 누가 언제 메일을 열어보고, 누구를 추천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컴퓨터의 위력에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처럼 컴퓨터도 누가 말씀과 복음전파에 관심이 있는지 다 파악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고를 모르시겠습니까? 다 아십니다. 그리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수고에는 보상이 있습니다.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이 다른 것처럼 성도의 최종 영광도 다를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한 사람과 심심해서 한번 교회에 나와 보는 사람과의 영광이 같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중심적으로 살면서 최선을 다해 헌신하며 살면 우리의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이 큰 보상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항상 복음 중심적으로 살아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멋지게 이루는 거룩한 도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성경66권설교파일 중에서 복음의 기초 23번째 설교>

  
  파일 신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성경66권설교파일 목록에서 신청하실 파일을 선택하고,
  2) 아래의 미션퍼블릭 계좌에 후원금을 입금하신 후,
  3) 아래의 대표메일로 신청하시면 메일로 파일을 보내드립니다.
  4) <씨티은행 : 325-00121-266-01 미션퍼블릭 > <대표메일 : missionpublic@hanmail.net>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파일1 등록된 파일 없음 파일2 등록된 파일 없음
번호 제목 작성자 조회수 등록일
124 낙심한 심령에게 필요한 3가지 (학개 2장 4-5절) 요삼일육선교회 562 2024.02.06
123 고난은 성도의 표식 (고린도후서 11장 16-27절) 요삼일육선교회 1107 2023.10.23
122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 (디모데전서 2장 1-4절) 요삼일육선교회 1961 2023.06.21
121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길 (사무엘상 1장 1-8절) 요삼일육선교회 3015 2022.12.20
120 오늘보다 내일을 소유하십시오 (룻기 4장 1-6절) 요삼일육선교회 4191 2022.07.06
119 인생 전환기의 승리 비결 (사사기 1장 1-7절) 요삼일육선교회 4765 2022.03.02
118 무엇으로부터 구원받았는가? (요한계시록 7장 10절) 요삼일육선교회 3920 2021.11.02
117 하나님께 다 맡기십시오 (사무엘하 1장 1-16절) 요삼일육선교회 6992 2021.01.04
116 위대한 축복의 통로 (에베소서 1장 11-14절) 요삼일육선교회 5975 2020.09.29
115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 (사무엘상 1장 1절) 요삼일육선교회 6937 2020.06.03
114 생활로 회개를 외치십시오 (마가복음 1장 1-8절) 요삼일육선교회 6282 2020.01.08
113 시련 중에 필요한 말씀 (여호수아 1장 1-2절) 요삼일육선교회 6587 2019.09.04
112 표적에 휩쓸리지 마십시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2절) 요삼일육선교회 6167 2019.05.02
111 세상에 취해 살지 말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요삼일육선교회 7584 2019.04.03
110 사람을 실족시키지 마십시오 (갈라디아서 3장 23-29절) 요삼일육선교회 6888 2019.03.06
109 바른 기도의 원리 (사도행전 4장 23-31절) 요삼일육선교회 6339 2019.01.02
108 엘리사의 길과 게하시의 길 (열왕기하 5장 15-27절) 요삼일육선교회 6586 2018.12.05
107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되십시오 (열왕기상 5장 1-18절) 요삼일육선교회 7878 2018.11.08
106 건강한 리더의 4대 요소 (느헤미야 2장 11-20절) 요삼일육선교회 7093 2018.10.10
105 미래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다니엘 2장 36-45절) 요삼일육선교회 5278 2018.09.05
104 베드로의 4가지 소원 (베드로후서 1장 12-21절) 요삼일육선교회 7647 2018.08.01
103 복된 아내의 4대 성품 (베드로전서 3장 1-6절) 요삼일육선교회 5843 2018.07.04
102 구원의 6가지 명칭과 의미 (로마서 10장 5-10절) 미션퍼블릭 7260 2018.05.30
101 최선의 변화를 이뤄내는 길 (요한복음 1장 9-13절) 미션퍼블릭 7664 2018.04.25
100 승리하는 교회생활의 원리 (에베소서 2장 19-22절) 미션퍼블릭 7710 2018.03.28
99 대 자유의 은혜 체험 (골로새서 1장 18-23절) 미션퍼블릭 5713 2018.02.28
98 복음의 원리 (로마서 1장 2-7절) 미션퍼블릭 6521 2018.01.31
97 눈물의 힘과 의미 (시편 6편 1-10절) 미션퍼블릭 9002 2018.01.03
96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린 삶 (디모데후서 1장 6-10절)  미션퍼블릭 7969 2017.12.06
95 합심 기도의 능력 (디모데전서 2장 5-8절) 미션퍼블릭 7932 2017.10.25

upd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