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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에 빠지면 안 됩니다 (베드로후서 2장 1-8절)
작성자 미션퍼블릭 등록일 2016-06-08
베드로후서 10편 말씀 중에서 4번째 말씀입니다
베드로후서 10편 전체 말씀은 "성경66권설교파일"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4) 이단에 빠지면 안 됩니다 (베드로후서 2장 1-8절)
 < 경계해야 할 잘못된 치유 사역 >
   
  얼마 전 저희 기독교 선교연맹 교단 한인총회 기간 중 한 가지 불상사가 생겼습니다. 폐회예배 때 신유기도 순서를 맡은 A 목사님이 5분 신유기도 시간에 50분 신유집회를 한 것입니다. 대중 앞에서 발언시간을 조절하지 못하면 인생 조절도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그 신유집회의 내용과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때 그분은 반말 비슷한 말투와 쇳소리를 섞어서 마이크를 바짝 입에 대고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소리쳤습니다. 또한 수없이 성령의 역사를 강조했지만 마이크 시스템을 이용해 성령의 역사를 억지로 만들려고 했고 요새 신사도주의자들이 하는 문제 발언도 간혹 했습니다. 더 나아가 몇 년 전 실명한 한 사모님을 붙잡고 기도할 때는 수많은 목사님들 앞에서 “다 나았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낫지 못했습니다. 그 불상사로 예배 후에 예정된 많은 개별 프로그램 및 개별 모임들이 연기되거나 취소되었습니다.
   
  그날 밤늦게 열린 실행위원회 회의에서 제가 말했습니다. “한국의 장로교 목사님이 그렇게 하면 일부 목사의 일탈로 생각하지만 우리처럼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교단에서 누군가 그렇게 하면 교단 전체가 그런 교단인 줄 오해합니다. 또한 목사님들 앞에서 그 사모님이 나았다고 선포했는데 안 나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목사들은 당선을 위해 공약하고 당선 후에 안 지키는 나쁜 정치인처럼 ‘아니면 말고’ 식의 거짓 증거를 하면 안 됩니다.”
   
  저희 교단의 창시자인 심슨(A. B. Simpson) 목사님은 신유를 강조했지만 작위적인 신유는 철저히 배격했습니다. 심슨 목사님이 쓴 <사중복음(The Fourfold Gospel)>이란 책을 보면 ‘신유’를 설명하는 장의 서론에 이런 언급이 있습니다. “좋은 것이 발견되는 곳에는 어디서나 그것의 모조품도 생겨난다. 가치 있는 작품에는 항상 위조품이 있다. 그처럼 신유 문제에서도 아주 잘못된 방법으로 신유를 가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서 마인드컨트롤을 통한 치유, 심령술(Spiritualism)에 의한 치유, 그리고 자기 의지를 가지고 기도를 많이 하면 된다는 기도 치료(Prayer cure)를 배격했습니다. 또한 치유를 믿으면 치유가 일어난다는 믿음 치료(Faith Cure)도 배격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에 집중하면 믿음 자체를 잃는다. 치유하는 분은 항상 하나님이다. 기도나 믿음, 혹은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는 통로로서 어떤 수단을 덜 의지하고 오직 주님만 의지할 때 치유의 축복은 더 주어진다.”
   
  또한 심슨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유는 하나님의 뜻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신유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신유의 축복을 얻고야 말겠다고 각오하는 것이 아니다. 신유는 신유의 축복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최상의 목적과 부합될 때 주어지는 것이다.” 그처럼 신유를 강조해서 저희 교단의 4중복음의 하나로 내세운 분이 작위적인 신유를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요새 마이크 시스템을 이용한 흥분과 열광을 유도하는 감정주의, 잘못된 영성주의, 잘못된 믿음주의, 아니면 말고 식의 치유선포 등의 가짜 치유집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치유집회에서 한 거짓 선포들을 “믿음의 선포니까 틀릴 수도 있지. 좋은 의도로 그랬을 테니까 이해하자.”라고 하면서 분명히 틀려도 그냥 눈감아주고 넘어가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그런 태도는 온유하고 자비로운 태도가 아니라 거짓을 묵인하는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거짓 치유 집회 인도자들의 ‘아니면 말고’ 식의 말은 분명히 지적해야 하고 “나았다!”고 한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가 죽으면 때로는 미국처럼 고소도 해야 합니다. 야박한 태도 같지만 그래야 거짓 치유자들로 인한 희생자들의 양산과 추가피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이름을 내세워 선포한 말이 상습적인 거짓이 되면 예수님까지 상급적인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셈이 됩니다. 그런 거짓 증거들을 눈감아주는 것은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 3계명은 물론 9계명까지 범하는 태도입니다. 얼마나 큰 죄입니까?
   
  1979년 삶의 공허함을 느끼던 어느 날, 한 친구의 집에서 조용기 목사님의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책 안에는 장충체육관만한 곳에서 예배드리는 교회사진이 있었습니다. 거대한 성전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사진을 보고 숫자와 외형에 매료되어 “거기엔 뭐가 있을 거야.”란 생각으로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5년간 열심히 교회를 다니며 대학선교회 활동도 했고 철야기도와 금식기도도 많이 했지만 가장 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 바로 치유사역이었습니다.
   
  그때 조 목사님이 강단에서 어떤 병이 치유 받았다고 선포하면 곳곳에서 사람이 일어나는데 같은 사람이 일어날 때가 많았습니다. 주일에 치유 받고 주중에 도진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그게 무슨 치유입니까? 어떤 사람은 치유될 것을 믿고 일어났다고 하지만 치유 받았다는 말과 치유 받을 줄 믿는다는 말이 어떻게 같습니까? 그런 모습은 집단 거짓처럼 보였습니다. 정치인들의 “된다. 아니면 말고...”란 식의 말에 지쳤는데 교회에서도 “된다. 아니면 말고...”라고 하면 얼마나 실망이 됩니까?
   
  결국 고민 끝에 집 옆에 있던 장로교 통합측 교회로 조용히 옮긴 후 몇 년 간 교회를 섬기다가 선교사 비전을 품고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LA에 있는 풀러 신학교의 입학 허가서까지 다 받아놓고도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뉴욕에 있는 저희 교단 신학교인 얼라이언스(Alliance) 신대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저희 기독교 선교연맹 교단은 순복음 교단의 뿌리 역할을 했던 교단이었습니다.
   
  저희 교단에서 내세우는 4중 복음은 ‘구원(중생)의 주, 성결의 주, 신유의 주, 재림의 주’입니다. 저희가 일본에 세운 <동경성서학원>에서 배운 목회자들이 귀국해 시작된 한국 성결교는 그 영향을 받아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4중 복음을 주장합니다. 순복음 교단도 저희 교단의 4중 복음에 ‘축복’의 교리를 덧붙이고 ‘성결’은 ‘성령 충만’으로 변형시켜 ‘중생, 성령 충만, 축복, 신유, 재림’의 5중 복음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미국 순복음 교단에서는 아직도 심슨 목사님을 교단개척의 초창기 선구자로 높이고 있습니다.
   
  그처럼 심슨 목사님은 복음을 통해 실질적인 은혜로서 치유를 대단히 중시했지만 요새 치유 사역자들이 체육관 집회 등에서 행하는 작위적인 치유 사역은 절대 반대했습니다. 지금의 작위적인 치유 집회는 예수님이 행하신 치유와는 예수님의 말씀과 겉모습만 흉내를 낸 것일 뿐 성경적인 치유와는 전혀 내용이 다릅니다. 그처럼 ‘아니면 말고’ 식의 작위적인 치유 사역과 거짓 증거에 넘어가지 않도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 이단의 4가지 특징 >
   
  말세가 가까워지면 이단이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그래서 이단을 더욱 경계하고 이단에 절대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빠지지 않습니까? 최소한 이단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를 알고 대비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이단의 특징을 간단하게 잘 언급합니다. 이단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요?
   
  1. 비밀스럽게 활동합니다
   
  본문 1절 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이 구절에서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말하기보다는 사람들의 뜻에 영합해서 유익을 취하려고 거짓 예언을 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런 거짓 예언자들이 베드로가 살던 때도 있었지만 어느 때나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거짓 예언자들과 거짓 교사들과 거짓 성도들은 사람의 영혼을 멸망시키는 이단 사상을 은근히 그리고 은밀하게 끌어들입니다. 그래서 이단을 보면 남에게 떳떳하게 공개하지 못할 비밀이 많고 비밀스런 행동지침들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기존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스파이 교인을 비밀스럽게 침투시키기도 합니다. 그처럼 감춰야 할 비밀과 비밀스런 행동지침이 많고 심지어 스파이까지 침투시키는 곳은 교리를 볼 것도 없이 거의 이단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습니다.
   
  2. 사람을 우상화합니다
   
  본문 1절 하반부 말씀을 보면 이단들은 자기들을 구원한 예수님을 부인하고 다른 인간 메시야를 추종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내세우면서 동시에 다른 메시야를 내세우는 것도 사실상 교묘하게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더 나아가 존경과 존중의 범위를 넘어서 목사를 지나치게 절대화하고 우상화하는 것도 교리적인 이단은 아닐지라도 실천적인 이단이기에 경계해야 합니다.
   
  어느 날, 한 분이 저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카리스마가 없는 것 같아요. 카리스마를 가지고 거짓말이라도 ‘나았습니다.’라고 해야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 아닙니까?” 그런 말을 들으면 목회자들은 ‘카리스마(칼 있으마)’의 칼을 빼들고 싶은 유혹을 받지만 요새는 성도들의 말씀 지식이 늘고 영혼이 깨어나면서 그런 작위적인 칼이 많이 무뎌졌습니다.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거짓과 술수는 대개 수명이 짧습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꿈과 비전과 달란트를 따라 바른 믿음으로 성도들을 섬기고 인도하면서 최후 승리를 얻는 참된 장칼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칼 있으마(카리스마) 논리’에 따른 단칼의 유혹은 비참한 결과만 낳습니다. 서울 강남과 용산의 모 교회 목회자처럼 엄청나게 떴다가 비참하게 추락하면 얼마나 불행입니까? 사람이 자기 그릇을 넘어 너무 뜨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카리스마도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카리스마를 좋아했다가 이단교주의 칼에 찔려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요새 구원파 관련회사가 구원파 교주 일가에게 몰아준 축재 재산이 끝도 없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축재 방법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했고 집요했고 불법적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1992년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해 신도들은 집을 팔아 바치게 하고 자신은 집을 사놓고 축재한 다미선교회의 이장림은 새발의 피였습니다. 추종자들이 얼마나 배신감이 들겠습니까? 그처럼 이단 교주들은 수많은 신도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그들의 희생을 통해 자기의 물질왕국을 쌓습니다. 그것이 바로 헛된 카리스마를 좋아한 보응이고 이번 세월호 사건이 주는 엄중한 교훈입니다.
   
  3. 호색으로 욕을 먹습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이 구절에서 호색은 반복된 음행을 뜻합니다. 음행은 감춰도 부끄러운 일인데 이단교주는 버젓이 호색을 드러내고 이단 추종자는 그것을 묵인하거나 심지어는 호색의 대상이 됩니다. 그처럼 이단들이 기독교를 욕 먹이는 분야가 한둘이 아니지만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교주가 호색하고 교인이 그 호색을 묵인하고 추종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육신의 욕망을 극복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성이 깊은 구도자에게도 쉽지 않습니다. ‘일시적인 극복’은 쉬워도 ‘계속적인 극복’은 쉽지 않고 더 나아가 ‘절대적인 극복’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해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처럼 그 문제에 대해서는 늘 겸손해야 하고 남을 쉽게 정죄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다만 목자인 줄 알고 따르던 교인에게까지 호색을 드러내는 것은 자기 자녀를 범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이단 교주는 그런 일도 저지릅니다.
   
  4. 지어낸 말로 돈을 텁니다
   
  본문 3절 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이단 교주나 거짓 예언자들의 최종 목적은 교인들의 구원이나 덕성 함양이 아니고 교인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것입니다. 어떻게 텁니까? 갖가지 교묘한 방법을 다 씁니다. 종말 예언을 지어내 두렵게 한 후에 돈을 털고, 없는 사실을 지어내 돈을 털고, 거짓 교리를 지어내 돈을 털고, 사명을 내세워 돈을 털고, 병자들을 낳게 해준다고 유혹해 돈을 텁니다.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거짓으로 하와를 속일 때부터 말 지어내기의 선수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추종자인 이단 교주는 광명한 천사를 흉내 내는 거짓의 명수이고(고후 11:13-15) 거짓 복음을 내세웁니다(갈 1:6-9). 이제 때가 되면 사탄은 세상에 거짓 적그리스도를 등장시킬 텐데 그때 거짓 예언자들이 예언과 축복과 기적을 미끼로 교회에 침투해서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앞서 선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 예언자의 미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 이단에 빠지면 안 됩니다 >
   
  그런 거짓 교사들과 이단 교주들에 대해 베드로는 ‘멸망’이란 단어를 여러 번 쓰면서 그들의 멸망을 언급합니다. 본문 1절에서는 그들이 멸망하게 된다는 당위성과 그들의 멸망이 임박했다는 임박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본문 3절에서는 그들의 심판은 지체가 없고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않는다고 하면서 멸망의 단호함과 분명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왜 베드로는 본문 4절에서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않고 지옥에 던지셨다는 언급을 했습니까? 그처럼 거짓 이단들도 무섭고 단호하게 심판하실 것이란 뜻입니다. 그런 이단 교주와 교사들을 심판할 것에 대한 사례로 노아 때의 물 심판과 소돔과 고모라의 불 심판을 언급합니다(5-6절). 이 구절의 문맥적인 의미는 모든 세상 사람들을 단호하게 심판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거짓 교주와 거짓 교사와 이단 추종자들을 단호하게 심판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단들은 자기들만 구원받는다고 선전하지만 오히려 그 무리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그들이 가장 무섭게 심판받습니다. 결국 잘못된 이단을 선택하는 것은 가장 무서운 인생 도박입니다. 종교 교리는 일반 윤리의 가치를 훨씬 앞서야 합니다. 그러나 명백하게 일반 윤리보다 한참 저급한 종교 교리를 내세우는 것은 이단이라고 봐도 거의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 이단을 따르는 것은 자기 파멸의 무서운 도박판에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이단 종교에 빠진 사람은 전혀 희망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 희망을 전해주려고 베드로는 노아의 물 심판 때 노아 가족을 보존하신 사실과 소돔과 고모라의 불 심판 때 롯을 구원하신 사실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의 수가 너무 적습니다. 그것은 이단에 한번 빠지면 구원받기가 아주 힘들다는 뜻입니다.
   
  롯이 당시에 거주한 소돔은 음행이 성행한 무법천지의 이단 도성이었습니다. 사실 롯은 부족한 면도 있었지만 아브라함이 우상 도시를 떠날 때 함께 했던 기본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음행과 불법이 성행한 이단 도성에서 살려니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결국 그곳에서 고통당하던 의로운 롯을 하나님이 건져주셨습니다(7절). 그처럼 이단 도성에서 의로운 롯이 구원받았지만 후유증은 컸습니다.
   
  이단의 자극적이고 화려한 외형에 미련을 가졌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고 본인은 빈털터리로 두 딸과 간신히 이단 도성을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이단의 영향으로 성적 죄책 의식이 약했던 두 딸은 더 이상 의인이 없다는 오해에 사로잡혀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잠들게 한 후에 이틀간 교대로 관계해서 큰 딸은 모압 족속의 시조인 모압을 낳고 둘째 딸은 암몬 족속의 시조인 벤암미를 낳았습니다.
   
  그처럼 롯이 이단 도성인 소돔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그 숫자는 단 3명이었고 그 후손 족속들도 좋은 역사적인 발자취를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처럼 이단에 빠지면 롯처럼 구원받는 사람도 있지만 극히 소수이고 그 후유증도 대단히 큽니다. 그러므로 이단에는 처음부터 빠지지 않는 것이 큰 은혜와 축복입니다.
   
  이단들은 본문 말씀을 곡해해서 심판 때 자기들만 노아 식구들이나 룻 식구들처럼 구원받는다고 선전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노아의 홍수 심판과 소돔과 고모라의 불 심판을 패역한 이단 교주들과 이단 교인들에게 주어지는 경고의 본으로 베드로가 언급한 것입니다. 결국 이단 중에 극소수의 사람만 구원받는다고 하며 이단을 경계시킨 것입니다(6절). 능력은 조금 부족해도 괜찮고 영성은 조금 떨어져도 괜찮습니다. 또한 기적과 치유의 은혜는 조금 못 받아도 괜찮고 윤리성은 조금 떨어져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이단에는 절대 빠지면 안 됩니다.
   
  < 이단에 빠지지 않는 길 >
   
  이단에 빠져 심판과 패망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에서 베드로가 언급한 4가지 이단의 특징을 가진 교회를 주의해야 합니다. 첫째, 비밀스런 행동지침이 많고 뭔가 숨기는 것이 많은 교회를 주의해야 합니다. 둘째, 교주를 메시야라고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교주나 담임목사를 너무 우상화하는 교회도 주의해야 합니다. 셋째, 성 문제와 소유 문제와 정치성 문제로 목회자가 욕을 먹는 교회도 주의해야 합니다. 넷째, 지어내는 말과 거짓 술수로 능력과 축복을 과대 선전하고 헌금을 강요하는 교회도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거짓 선생들은 거의 예외 없이 체험을 내세우며 순진한 영혼들을 미혹합니다. 그러나 ‘주관적인 체험’보다 ‘객관적인 말씀’을 붙잡는 삶이 중요합니다. 말세에는 미혹의 영은 더욱 극성을 부립니다. 그래서 더욱 말씀을 붙잡고 나가야 미혹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미혹의 가능성을 줄이려면 ‘육신의 욕망과 외형’을 따라 살지 말고 ‘거룩한 사명과 내용’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창세기 19장을 보면 롯이 소돔의 심판을 알리는 두 천사를 대접할 때 마침 소돔 성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고대에 ‘성문에 앉은 사람’은 성의 대표자나 장로를 뜻합니다. 아마 롯은 소돔에서 꽤 대접받는 위치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처럼 롯은 외지인 출신으로서 꽤 성공했지만 실제 그의 삶은 별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소돔의 환경이 자신과는 전혀 맞지 않는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롯은 외형을 보고 소돔으로 갔지만 소돔 사람처럼 타락한 삶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음란한 소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왜 이런 곳에 몸을 담았을까?”하는 자책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문에서 두 천사들을 보고 그들에게 자기 집에서 묵고 가라고 간청해서 집으로 모신 후에 식사까지 잘 대접했습니다.
   
  그때 소돔의 동성애자들이 그 두 천사들을 범하려고 롯을 겁박했고 롯은 필사적으로 그들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두 딸까지 내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천사들을 보호하려는 마음은 가상하지만 그런 잘못된 제안을 한 것은 정조관념의 부족 때문이었습니다. 왜 그가 그렇게 되었습니까? 소돔에 살면서 그런 성적 일탈을 다반사로 보니까 은연중에 롯도 주변 환경에 물든 것입니다. 그래도 성적 욕망에 눈먼 소돔 사람들이 물러서지 않자 천사들이 롯을 붙잡아 문 안으로 들이고 소돔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혀서 결국 그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그처럼 롯이 화려한 소돔에 거주하면서 수많은 심적인 고통을 당하고 심한 봉변을 당하는 것을 볼 때 행복은 외형에 있지 않음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할 때 외형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판단하는 거룩한 분별력을 갖춰야 합니다. 외형만 좇아 살면 언젠가 외형적으로 이룬 것을 순식간에 다 잃습니다. 반면에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사명을 따라 살면 시간이 지날수록 복된 존재가 됩니다.
   
  세상에 의해 바뀌고 물드는 교인이 되기보다는 세상을 말씀으로 바꾸고 물들이는 인물 성도의 꿈과 사명을 가지십시오. 거룩한 사명이 외면된 상태에서 이뤄지는 성공과 물질은 결국 영혼을 죽이는 독약이 됩니다. 지금처럼 소돔의 영향력이 기승을 부릴 때는 참된 성도됨의 중요성과 사명감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 성도의 꿈을 더욱 굳게 가지고 내일을 준비하며 나가야 합니다.
   
  이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과 영광과 거룩한 사명을 따라 하십시오. 사업해도 돈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보다 많은 사람을 음지에서 돕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하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허무한 인생은 거룩한 사명이 없는 인생이고 세상에서 가장 복된 인생은 거룩한 사명을 따라 사는 인생입니다. 지금처럼 이단이 기승을 부릴 때 말씀을 굳게 붙잡고 거룩한 사명을 따라 살아감으로 이단에 미혹되지 말고 나눔을 선도하며 많은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성경66권설교파일 중에서 베드로후서 1번째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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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바른 기도의 원리 (사도행전 4장 23-31절) 요삼일육선교회 6289 2019.01.02
108 엘리사의 길과 게하시의 길 (열왕기하 5장 15-27절) 요삼일육선교회 6546 2018.12.05
107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되십시오 (열왕기상 5장 1-18절) 요삼일육선교회 7763 2018.11.08
106 건강한 리더의 4대 요소 (느헤미야 2장 11-20절) 요삼일육선교회 7031 2018.10.10
105 미래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다니엘 2장 36-45절) 요삼일육선교회 5215 2018.09.05
104 베드로의 4가지 소원 (베드로후서 1장 12-21절) 요삼일육선교회 7594 2018.08.01
103 복된 아내의 4대 성품 (베드로전서 3장 1-6절) 요삼일육선교회 5773 2018.07.04
102 구원의 6가지 명칭과 의미 (로마서 10장 5-10절) 미션퍼블릭 7187 2018.05.30
101 최선의 변화를 이뤄내는 길 (요한복음 1장 9-13절) 미션퍼블릭 7585 2018.04.25
100 승리하는 교회생활의 원리 (에베소서 2장 19-22절) 미션퍼블릭 7651 2018.03.28
99 대 자유의 은혜 체험 (골로새서 1장 18-23절) 미션퍼블릭 5675 2018.02.28
98 복음의 원리 (로마서 1장 2-7절) 미션퍼블릭 6462 2018.01.31
97 눈물의 힘과 의미 (시편 6편 1-10절) 미션퍼블릭 8941 2018.01.03
96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린 삶 (디모데후서 1장 6-10절)  미션퍼블릭 7882 2017.12.06
95 합심 기도의 능력 (디모데전서 2장 5-8절) 미션퍼블릭 7859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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