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당연한 것이다 (로마서 5장 7-11절)
< 이 땅에서도 행복하게 살라 >
사람이 의인을 위해 죽기도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해 용감히 죽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7-8절). 사도 바울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라고 표현한 것은 “원래 우리는 희망이 없는 죄인이었다.”는 뜻이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사랑하셨다. 쉽게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절대 사랑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아들을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죽게 하심으로 표현되었다.
본문 9절을 보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이 구절에서 ‘더욱’이란 단어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보다 “예수님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측면을 강조하려고 첨부한 단어로서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잊지 말라는 의미가 내포된 단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그 결과 구원을 얻게 되었다(10절).
구원의 축복은 구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본문 11절을 보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 축복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 축복도 있다는 말씀이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다. 하나님은 성도가 이 땅에서 원망과 탄식으로 일그러지게 살기보다 기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목전에 두고 제자들이 크게 근심할 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1).”라고 말씀했다. 성도가 기뻐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성도에게도 기쁜 일만 있지는 않다. 자신은 기쁘게 살고 싶어도 그 기쁨을 빼앗아 가는 일들이 많다. 그러나 본문은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환경과 상관없이 즐겁게 살 수 있는 존재라고 선언한다.
성도는 죽으면 행복한 천국에 가지만 이 땅에서도 행복한 천국의 삶을 살아야 한다. 환난이 없을 때나 환난이 끝난 다음에만 즐거워하지 말고 환난과 고난 중에도 즐거워하고 기뻐하라. 고난이 없으면 좋겠지만 고난도 있어야 성숙해진다. 성숙한 성도들을 보면 증오가 없다. 믿음으로 증오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개 입술부터 승리자의 입술이다. 그들은 상처를 주거나 찌르지 않고 함부로 정의를 말하지도 않고 입술에서 은혜가 되는 얘기들만 줄줄이 나온다. 고난의 터널을 잘 통과한 삶의 열매들이다.<2017.8.25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