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큰 은혜를 받는 길(1) (로마서 6장 1-5절)
2. 자기를 철저히 죽이라
본문 3절을 보라.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세례식은 주님과의 결혼식 의미도 있지만 옛사람의 장례식 의미도 있다. 성도는 세례를 받는 순간부터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축복을 얻을 생각만 하지 말고 먼저 주님과 함께 기꺼이 죽으려고 해야 진짜로 사는 길이 열린다.
사람이 완전히 죽으면 아프지 않지만 덜 죽으면 아프다. 결국 대부분의 심적 고통은 사실상 덜 죽어서 생긴 것이다. 나무가 타다 말면 볼품도 없고 쓸모도 없다. 차라리 다 타서 숯이 되면 오히려 쓸모 있게 된다. 건물도 짓다가 말면 흉물이 되고 길도 가다가 포기하면 손해가 된다. 그처럼 완전히 죽지 않고 죽는 흉내만 내니까 고통도 심해지는 것이다.
한 발은 교회에 두고 한 발은 세상에 두면 예배의 감격이나 믿음의 축복을 누리기 힘들다.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체험하려면 과감히 옛사람을 죽이라. 그때 참된 평안을 얻는다. 왜 스트레스가 있는가? 굳은 결단의 부족 때문이다. 공부하는 학생과 공부 안 하는 학생 중 누가 더 스트레스를 받는가? 공부 안 하는 학생이다. 공부하기로 결단하고 실천하면 신기하게 스트레스도 사라지지만 공부하지 않고 놀면서 자기 본분을 다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스트레스가 커지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다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과 대충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중 누가 더 스트레스를 받는가? 대충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어떤 교인은 큰 교회가 부담이 없어서 좋다고 한다. 그러나 부담이 없어서 좋은 길은 축복의 길이 되기보다는 인생과 시간을 낭비하는 길이 될 때가 많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축복받게 하는 제일 좋은 구호는 이런 구호다. “거룩한 부담을 지자!” 신앙생활의 요체는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부담을 질 때 하나님도 그를 위해 기꺼이 부담을 져주신다. 그런 은혜의 신비를 모르고 눈앞의 편안함만 추구하다가 더욱 중요한 내적인 평안과 내일의 축복과 천국의 상급을 잃는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예수 믿고 인물이 되려면 선한 결단을 하고 그 결단대로 살라. 그래도 인생에는 손해가 없다. 성도는 덤으로 사는 존재다. 덤으로 산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손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거룩한 비전에 동참하고 헌신하기로 지금 새롭게 결단하라. 이제까지 여러 번 결단한 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어도 또 새롭게 결단하라. 그러면 새로워질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고 하나님의 은혜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2017.8.29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