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과 비본질을 분별하라 (로마서 7장 7-13절)
< 본질과 비본질을 분별하라 >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면 본질과 비본질을 잘 분별해야 한다. 교회에서의 갈등은 본질적인 문제보다 비본질적인 문제로 생길 때가 훨씬 많다. 예수님이 유일한 구세주란 사실은 본질적인 진리다. 그 진리는 목숨을 걸고 지키라. 그러나 어느 교단이 좋은가 하는 문제는 비본질적인 문제다. 이단이 아니라면 서로의 사상과 가치를 존중해주어야 한다. “침례가 맞느냐? 세례가 맞느냐?”와 같은 문제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습은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시지 않는다.
옛날에 마룻바닥에서 예배드릴 때 방석 문제로 큰 논란이 있었다. 누가 방석을 놓자고 하자 보수적인 교인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그깟 한 시간을 못 참아서 방석을 놓느냐?”고 해서 교회 마룻바닥에 방석 하나 놓는 데에도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의자 문제도 그렇다. 누가 의자를 놓자고 하자 보수적인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예배드려야지 어떻게 의자에 앉아 등을 대고 예배드리느냐?”고 해서 교회에 의자 놓는 문제로 또 많이 다퉜다. 그런 사소한 갈등으로 많은 교회와 교파가 생겼다.
본질적인 것에는 보수적이 되어야 하지만 비본질적인 것에는 개혁적이 되어야 한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이 갈등이 본질적인 문제인가? 비본질적인 문제인가?”에 대한 성찰을 하고 비본질적인 문제로 생긴 갈등이라면 너그럽게 상대방을 대해주고 열린 마음으로 그 갈등을 풀어야 복된 성도가 된다.
왜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싫어했는가? 철저히 안식일을 지킨다고 하다가 본질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신앙을 보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499미터의 거리는 가도 되지만 500미터의 거리를 넘어가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란 식의 규정들이 많았다. 그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고 예수님도 비난했었다. 안식일의 본질은 하나님께 삶의 초점을 새롭게 맞추는 것에 있는데 하나님은 간 곳 없고 비본질적인 문제로 안식일 논쟁을 벌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안식일에 먹을 것을 사먹어도 되는가, 안 되는가? 버스를 타야 되는가, 타지 말아야 되는가?”와 같은 소모적인 논쟁들이 많다. 그런 소모적인 논쟁을 좋아하고 비판을 잘하는 인생은 결코 복된 인생이 될 수 없다. 비판주의자가 참된 축복과 행복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혹시 세상적인 축복을 받아도 그것은 잠시로 끝난다. 비판주의자에게는 참된 의미의 행복과 평안이 없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비판을 좋아하지만 복된 존재가 되려면 죽음을 각오하고 십자가를 지듯이 죽음을 각오하고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 비판주의자의 길을 멀리하라. 본질적인 문제는 죽기까지 고수하되 비본질적인 문제에서는 늘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라. 본질과 비본질을 잘 분별해 본질적인 문제에서는 보수적으로 살고 비본질적인 문제에서는 개혁적으로 살면서 율법주의적인 습관과 전통을 과감히 벗어던지는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다.<2017.9.5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