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의지하지 말라(2) (이사야 2장 6-22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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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미션퍼블릭 | 등록일 | 2017-11-04 |
인생은 잠깐이다. 영원히 살 것 같은 인생이지만 금방 종착역에 도착한다. 영원의 문제는 오직 하나님만 해결하실 수 있다. 이 평범한 사실을 깊이 깨닫고 사는 것이 복이다. 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이 진지해지고 착해지는가? 그때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달으면서 인생을 바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주인공 파우스트는 학문은 통달했지만 평안은 없었다. 순간적인 쾌락을 위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의 모습은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그가 죽음을 생각할 때 새벽바람을 타고 들려온 “예수 다시 사셨네.”라는 부활 찬송을 듣고 새롭게 될 수 있었다. 쾌락과 이기주의에 자신을 팔지 말고 늘 자기 소명을 생각하며 살라. 그때 물질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면서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질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참된 사랑과 행복을 얻게 된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공부로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을 통해 알 수 있다. 인생의 문제도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할 때 해결된다. 사람은 신뢰할 수 없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도 배반한다. 욥이 고난을 당하자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다. 그런 경우가 빈번하기에 사람의 도움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다. 또한 사람의 능력과 지식과 모범도 온전히 신뢰할 수 없다.
중동에 한 정결한 수도사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당대의 신앙적인 모델로 생각했기에 귀신들은 그를 무수히 넘어뜨리려 했다. 돈과 여자 등 많은 방법으로 유혹해도 그는 끄떡하지 않았다. 모든 유혹을 속수무책으로 만든 그는 귀신 세계에서 공포의 존재가 되었다.
그때 한 늙은 귀신이 자신 있게 “내가 시험을 걸겠다.”고 한 후 수도사를 찾아갔다. 그 귀신이 말을 걸었다. “수도사님!” 수도사가 의연히 대답했다. “왜 그래?” 늙은 귀신이 수도사 귀에 대고 속삭였다. “수도사님의 친구가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가 되었어요.” 그 말을 듣자 대번에 수도사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그처럼 모든 사람의 밑바탕에는 질투심이 있다. 사람은 신이 아닌 사람이다. 사람은 온전히 믿고 의지할 대상이 아니다.
어느 날, 한 아빠가 6살짜리 아들과 함께 뒷동산에 놀러 갔다. 뒷동산의 만발한 꽃을 구경하느라고 아들이 아빠의 손을 놓고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그때 아빠는 아이가 어떻게 하나 보고 싶어 슬쩍 바위 뒤에 숨었다. 날이 조금 어두워지자 아들은 그때야 아빠가 없는 것을 알고 무섭다고 울면서 아빠를 원망했다. 그러나 진짜 잘못은 아들이 꽃동산이 아름답다고 아빠의 손을 놓은 것이다. 그때 아빠는 계속 아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살다 보면 넘어질 때도 있다. 그때 하나님께 두 손 들어 항복하고 하나님이 붙잡아주시는 힘으로 그 상황을 딛고 일어서라. 거대하고 집요하고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불의한 역사를 반전시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못할 것도 없다. 온전히 항복한 손을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면 된다. 세상이 아무리 유혹해도 하나님의 손을 놓거나 인간적인 생각을 앞세우지 말라.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99%가 될 것 같아도 결국 안 되지만 믿음으로 살면 99%가 안 될 것 같아도 결국 된다.<2017.11.4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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