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사야 7장 15-25절)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라. 하늘을 목적으로 삼으면 하늘과 땅을 동시에 얻지만 땅을 목적으로 삼으면 하늘과 땅을 동시에 잃는다. 가끔 어두운 상황이 닥쳐도 낙심하지 말라. 진실한 믿음을 가지면 어둠이 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더 귀하게 느껴진다. 불신자에게는 외적인 기쁨 중에도 내적인 슬픔이 있지만 진실한 성도에게는 외적인 슬픔 중에도 내적인 기쁨이 있다. 성도의 미래를 보증해주시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심을 믿고 늘 넘치는 희망 가운데 현실을 담대하게 맞이하고 극복해내라.
절망 중에도 목숨이 남아있다면 그 사실을 소중히 여기라. 지금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살아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표시이고 희망의 씨앗이다. 참된 희망은 희망이 없는 곳에서 빚어진다. 그처럼 삶 자체를 은혜의 표식으로 알고 감사하라. 아침에 기쁜 얼굴로 나갔다가 저녁에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오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현실에서 매일 마음껏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인가? 인생에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감격을 잠재울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 말씀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 8:36).” 자기에게는 천하보다 자기 생명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자기 문제가 아무리 커도 자기 생명보다 클 수는 없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생명보다 큰 것은 없다. 아무리 큰 문제가 닥쳐도 그 문제로 인해 인생을 비관하지 말고 환경과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불의하고 고통스런 현실 속에서 미움이 없이 살려면 대안이 있어야 한다. 무엇이 대안인가? 미움을 믿음으로 승화시키며 ‘할 수 있는 일’보다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는 삶이 대안이다.
일전에 한 납치 희생자가 잔인한 납치범들에게 이렇게 사정했었다. “살려만 달라. 돈은 다시 벌 수 있으니까 요구하는 대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주겠다. 지금 회사가 부도날 지경에 있으니 다시 회사에 돌아가 회사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달라.” 살아있기만 하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는 절절한 호소였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삶 자체를 희망의 씨앗으로 삼고 하나님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라. 그래서 멋진 역전 인생을 만들어내어 슬픔의 재 가운데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의 화관을 씌워주는 비전을 가지라. 성도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회개하는 마음과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지금 다시 일어서면 하나님께서 능력도 주시고 기회도 주시고 사람도 주실 것이다. 그런 믿음을 앞세워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만들어가며 살라.<2017.11.20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