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추구하며 살라(1) (이사야 11장 6-16절)
참된 믿음은 참된 진리를 바탕으로 한다. 진리란 영원한 지식을 뜻한다. 무속신앙과 기복주의에는 진리가 없기에 지식을 경시하고 정성만 중시한다. 흔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지만 정성의 지성(至誠)만큼 지식의 지성(知性)도 중요하다. 바른 지식 안에서 정성을 드려야 하나님이 감동하신다. 정성을 드리는 대상이 어떤 분인지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아닌 우상 앞에서 정성을 드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큼 하나님을 바르게 믿을 수 있다. 알고 믿는 것은 믿음이지만 모르고 믿는 것은 미신이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라.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일반계시의 3대 통로는 ‘자연, 양심, 역사’다. 자연을 보며 하나님을 느끼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역사 앞에 겸허하게 설 줄도 알라. 무엇보다 특별계시인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넘치게 하라. 세상 지식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의사의 의학지식을 무시하면서 기도를 통해 병을 고치겠다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넘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넘치면 의학적인 지식이나 과학적인 지식도 품을 줄 안다.
어느 날, 한 대학생이 “오직 성경!”을 내세우며 가진 책을 다 불태웠다. 그 책들이 불타는 장면을 보면서 진리의 수호자 같은 자부심을 느꼈다. 그때부터 성경만 파고들다가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탈레반처럼 책들을 불태워버리면 인생까지 불태워버릴 수 있다. “오직 성경!”이란 말은 “성경만 읽으라!”는 말이 아니다. 성경만 읽다가 성경을 잘못 해석해서 이단에 빠질 때도 얼마나 많은가? 극단주의는 참된 지식과 진리에서 멀어지게 한다.
성경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세상 지식도 존중하고 세상 지식을 가진 사람도 존중하라. 믿음과 지식은 180도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믿음과 지식은 대개 같이 가는 것이다. 가끔 믿음을 배척하는 논리를 만들려고 세상 지식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믿음과 지식은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믿음이 있다고 지식을 경시하지 말라. 믿음은 게으름과 무식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적인 믿음을 기초와 표준으로 삼아 더 많이 알려고 하라. 알고 가는 길은 쉽다. 알면 여유가 넘치고 두려움이 줄어든다. 믿을수록 성경 지식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많아져야 한다. 바른 지식을 외면하면 원시성을 탈피하지 못해 미신에 사로잡히기 쉽고 늘 혼돈과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바른 믿음을 가지려면 바른 지식이 충만해야 한다.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시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해진다. 그 말은 성령충만을 나타내는 뚜렷한 표식이 흔히 생각하는 ‘은사 충만’보다 오히려 ‘진리 충만’이란 뜻이다.<2017.12.7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