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에서 건짐 받는 길 (이사야 16장 1-14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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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미션퍼블릭 | 등록일 | 2017-12-16 |
2. 약자를 잘 돌봐주라
본문 2절에서 “모압의 딸들이 아르논 나루에서 떠다니는 새처럼 된다.”는 것은 모압의 힘없는 백성들이 비참하게 흩어지게 된다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전쟁으로 나라가 어려워질 때 상대적으로 더 비참해지는 존재가 여자들 및 약자들이다. 그때 어려운 자를 살피는 것은 어려움을 벗어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본문 3절을 보라. “너는 방도를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대낮에 밤 같이 그늘을 지으며 쫓겨난 자들을 숨기며 도망한 자들을 발각되게 하지 말며.” 선지자가 ‘공의의 판결’을 언급할 때는 늘 “힘없는 자를 괴롭히지 말라.”는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기에 이 말씀은 약자와 피난민을 잘 돌봐주라는 뜻이다. 그래야 압제자가 멸절하고 모압에게 피할 길이 생겨난다(4절).
약자를 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예수님은 약자를 위하셨다. 사람이 약자를 위한다고 할 때는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우월의식이 은근히 깔려있을 때도 있지만 예수님의 삶은 약자를 위한 삶의 순수한 결정체였다. 그런 기독교의 진리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니체는 “하나님은 죽었다. 기독교는 약자의 종교다.”라고 비웃으며 초인사상을 들고 나왔다. 초인사상을 가져야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가? 자신조차 이기지 못해서 정신병에 걸려 횡사했다.
나중에 니체의 초인사상에 심취해 정치에서 그 사상을 이용한 사람이 히틀러였다. 그는 초인사상을 가지고 세상을 정복하려고 했다. 그 결과 수천만 명이 죽게 되었다. 약자를 배려할 줄 모르는 초인사상이 지옥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한다. 결국 진짜 약자와 패자는 니체와 히틀러였다.
교회와 교인이 힘을 숭상하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진다. 힘이 커지면 대개 흠도 커진다. 현대의 무조건적인 성공주의나 기복주의적인 세미나를 통해 추구하는 힘은 그 수명이 짧다. 참된 힘은 참된 믿음에서 나온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에서 영혼을 든든하게 뒷받침해주고 약자를 밀어 올려주는 ‘밑의 힘’과 같다. 참된 성공도 힘이 강해지고 숫자가 많아지고 돈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소유로 약자를 돕는 것이다. 하나님이 강함을 주실 때 그 강함을 약자를 위해 쓰는 자가 진짜 승리자다.<2017.12.16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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