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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길을 예비하라 (이사야 40장 1-5절)
작성자 미션퍼블릭 등록일 2018-01-09
이사야 40장 1-5절
1.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주님의 길을 예비하라 (이사야 40장 1-5절)
 < 희망을 잃지 말라 >
   
  <이사야>는 크게 1-39장의 전반부와 40-66장의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이사야> 후반부는 “위로하라.”는 메시지로 시작된다(1절). 구체적으로 어떤 위로의 음성을 주셨는가? 이스라엘이 죄에 대한 벌을 배나 받음으로 죗값이 이미 치러졌다는 음성이다(2절). 그것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해 죗값이 치러진 것을 의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죗값이 치러지는 상황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다.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시련과 고난 중에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 믿음이 있으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환난 중에도 기뻐하면 사탄이 어디 찔러볼 데가 없게 된다. 이리 내쳐도 감사하고 저리 내쳐도 기뻐하고 감사하니 그런 사람을 어떻게 무너뜨리겠는가? 결국 사탄이 두 손 들고 물러난다.
   
  희망은 언제 커지는가? 희생을 통해 커진다. 희생의 길이 희망의 길이다. 자기를 희생시키는 예수님의 길은 희망의 길이고 타인을 희생시키는 헤롯의 길은 절망의 길이다. 절망은 희망을 위협하지만 희망도 절망을 위협한다. 신앙은 선택이다. 더 나아가 신앙은 결단이다. 또한 신앙은 밀어붙임이다. 희생을 통한 희망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고난 중에도 예수님의 뜻과 길을 따라 밀어붙이면 절망은 곧 그 힘을 잃는다.
   
  성결함이란 깨끗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대로 욕망이 넘치는 세상에서 희생을 통해 희망의 씨를 뿌리는 것이 성결함이다. 신기한 은사를 보여주면 영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생활에서 대접할 줄 모르고 식사할 때 내는 일에 쏙쏙 빠지고 손해 보려는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영성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것이다. 드리고 나누고 베풀 줄 모르는 삶에서는 영성이 자라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어두워지고 공허해진다.
   
  헤롯의 길은 곧 저문다. 반면에 예수님의 길은 오래 그 선한 영향력이 남는다. 영혼의 나무에 예수님의 삶과 정신의 싹이 돋아나게 하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했던 시간들, 간절히 기도했던 시간들, 최선을 다해 헌신했던 손길들, 믿음으로 내딛었던 발걸음들이 다 하늘나라에 차곡차곡 저축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늘 기도하라. “하나님! 어떤 경우에도 기쁨과 감사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하소서.”
   
  < 주님의 길을 예비하라 >
   
  본문이 전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라는 메시지다(3절). 길을 닦으려면 골짜기를 메우고, 산을 깎아내고, 고르지 않은 곳은 평탄하게 만들고, 험한 곳도 평지로 만들어야 한다(4절). 신약성경과 연계시켜 보면 누가 메시야의 오는 길을 예비했는가? 세례 요한이다. 세례 요한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위선과 형식주의와 교만 등을 무섭게 질책하고 회개의 세례를 주면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다.
   
  세례 요한은 주님의 길을 닦기 위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소리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거침없이 전했다. 그는 감언이설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지도 않았고 겁주는 말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지도 않았다. 다만 불의한 현실에 대해 회개의 말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웠다. 그는 옷 두 벌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고 힘 있는 사람들은 힘을 이익수단으로 삼지 말라고 외쳤다. 나눌 줄 모르는 힘과 물질이 저절로 누림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나눔이 없으면 누림도 없고 나눔이 있을 때 누림도 있다.
   
  당시 세례 요한은 요단강으로 새로운 역사를 기대하며 찾아온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저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제 뒤에 오십니다. 저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습니다. 저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줄 것입니다(막 1:7-8).” 세례 요한은 문제에 대한 자각과 고발과 질책만으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잘 알았다. 질책만 하면 사람은 더 위축된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를 뛰어넘어 사람들의 마음에 성령의 불을 일으켜줄 분을 소개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불의한 현실을 보고도 분노할 줄 모르면 ‘영적인 바보천치’다. 영어에서 바보천치를 이디엇(idiot)이라고 하는데 그 말은 ‘자기 생각(idea)에만 몰입된 사람’이란 뜻이다. 자기 이데아에 빠진 이디엇이 되지 말라.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뒤에 숨지 말고 앞서 헌신하라. 하나님은 앞선 개척자를 축복하신다. 숲에서 나무를 하나씩 잘라가며 길을 만들어가는 개척자의 길은 힘들어도 그 길처럼 복된 길은 없다. 인류의 역사는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와 개척자의 터 위에 세워진 역사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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