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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호
작성자 미션퍼블릭 등록일 2018-01-17
성경구절 : 이사야 33-41장
2/01(목) 이사야(84) 높은 곳에 거하는 자 (사 33:7-16)
2/02(금) 이사야(85) 최후 승리의 요건 3가지 (사 33:17-24)
2/03(토) 이사야(86)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사 34:1-17)

2/05(월) 이사야(87)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길 (사 35:1-10)
2/06(화) 이사야(88) 힘은 오픈마인드에서 온다 (사 36:1-3)
2/07(수) 이사야(89) 하나님 두려워할 줄 알라 (사 36:4-10)
2/08(목) 이사야(90) 큰 문제를 극복하는 길 (사 36:11-22)
2/09(금) 이사야(91) 절망에서 기쁨을 찾는 법(1) (사 37:1-7)
2/10(토) 이사야(92) 절망에서 기쁨을 찾는 법(2) (사 37:1-7)

2/12(월) 이사야(93) 기도밖에는 길이 없다 (사 37:8-20)
2/13(화) 이사야(94) 인생 역전은 늘 가능하다 (사 37:21-38)
2/14(수) 이사야(95)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으라(1) (사 38:1-8)
2/15(목) 이사야(96)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으라(2) (사 38:1-8)
2/16(금) 이사야(97) 4가지 감사의 원리(1) (사 38:9-22)
2/17(토) 이사야(98) 4가지 감사의 원리(2) (사 38:9-22)

2/19(월) 이사야(99) 최종 승리자가 되는 길 (사 39:1-8)
2/20(화) 이사야(100) 주님의 길을 예비하라 (사 40:1-5)
2/21(수) 이사야(101) 전도를 위한 4대 교훈(1) (사 40:6-11)
2/22(목) 이사야(102) 전도를 위한 4대 교훈(2) (사 40:6-11)
2/23(금) 이사야(103)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 (사 40:12-26)
2/24(토) 이사야(104) 높이 날아오르라 (사 40:27-31)

2/26(월) 이사야(105)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삶(1) (사 41:1-7)
2/27(화) 이사야(106)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삶(2) (사 41:1-7)
2/28(수) 이사야(107) 두려워말고 기도하라 (사 41:8-10)
마중물 : 작은 예수가 되라
 < 인생 최대의 축복 >
   
  세균보다 작은 바이러스는 종류에 따라 대략 크기가 10나노미터에서 1000나노미터다. 밀리미터는 1000분의 1미터이고, 마이크로미터는 100만 분의 1미터이고, 나노미터는 10억 분의 1미터다. 태양의 지름은 약 140만 킬로미터다. 키가 1미터인 유아에게 140만 킬로미터는 1억 분의 1미터 크기인 10나노미터의 바이러스에게는 약 14미터의 크기다. 즉 10나노미터의 바이러스에게는 지름 14미터인 초대형 풍선이 태양 크기다.
   
  지구와 화성이 가장 가까워질 때의 거리는 대략 5500만 킬로미터다. 1미터의 키를 가진 유아에게 5500만 킬로미터는 10나노미터인 바이러스에게는 550미터의 거리다. 키가 1.7미터 정도인 성인에게 화성까지의 거리가 더 가깝게 체감된다면 10나노미터인 바이러스에게는 3-4백 미터 거리 정도일 것이다. 결국 시내버스 한 정거장 사이의 거리가 대략 10나노미터인 바이러스에게는 지구와 화성 사이의 거리다.
   
  손이 매우 큰 성인의 손바닥이 12.7센티미터 정도다. 10나노미터인 바이러스에게 1270만 배인 12.7센티는 키가 1미터인 사람에게 1270만 배인 12700킬로미터다. 결국 10나노미터인 바이러스에게 12.7센티미터인 사람 손바닥의 크기는 키가 1미터인 유아에게 12756킬로미터인 지구의 크기와 유사한 셈이다.
   
  사람은 미소한 존재가 아니다. 작은 바이러스에게는 사람의 주먹 하나가 지구의 크기다. 사람을 너무 작게 보지 말라. 사람의 가능성과 위대성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교만하면 안 된다. 작은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이 죽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구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은 바이러스에 의해 사람이 죽듯이 작은 사람에 의해 지구가 파멸될 수도 있다.
   
  어린이가 천천히 뛰면 시속 10.8킬로미터로 뛴다. 그 속도는 1억 분의 1미터 크기인 10나노미터 바이러스에게는 시속 10억 8천 킬로미터의 속도다.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가는 빛의 시속은 초속의 3600배인 10억 8천 만 킬로미터다. 사람에게 빛의 속도는 10나노미터의 바이러스에게는 어린이가 천천히 뛰는 속도다. 10나노미터인 바이러스에게 자동차의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10배 빠르고 비행기의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100배 빠르다. 그래서 필자는 빛보다 빠른 물체가 반드시 존재하고 또한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평균 38만 킬로미터다. 10나노미터인 바이러스에게 그 거리는 3.8미터로서 사람의 다섯 발걸음이다. 결국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개념으로는 사람의 발걸음 하나도 작은 발걸음이 아니다. 영적인 측면에서는 사람의 발걸음 하나가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사람의 작은 생각의 변화가 엄청난 변화를 선도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사람을 가장 놀랍게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고 외면을 통해 내면을 보는 것이고 현재를 통해 미래를 보는 것이고 육적인 것을 통해 영적인 것을 보는 것이다. 믿음이 있으면 비천과 가난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볼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다. 그처럼 믿음을 통해 영적인 시야도 열리고 내적인 능력도 얻지만 믿음이 주는 가장 위대한 축복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이다.
   
  그런 위대한 축복과 기적을 외면하고 어떤 교인은 세상적인 것을 얻는 축복과 기적을 더 추구한다. 교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찌개라고 한다. 찌개가 끓을 때 ‘보글보글’ 하고 끓는데 그처럼 “복을! 복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복주의는 참된 축복을 놓치게 한다. 복과 기적에 집착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의 축복과 기적을 깨닫지 못하거나 경시하는 것은 큰 불행이다. 구원의 축복이 없으면 다른 축복은 큰 의미가 없고 조만간 빈털터리가 된다. 특히 죽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전부를 전무로 돌린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주전 336년에 20세의 알렉산더가 헬라 문화 전파를 위한 세계 정복의 꿈을 품고 마케도아를 출발했다. 그 뒤 그는 한 번도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세계 정복에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알렉산더처럼 다른 차원에서 정복에 바빴던 사람이 있었다. 자기 정복에 바빴던 철학자 디오게네스다. 알렉산더가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 외에 거의 유일하게 존경했던 사람이 평생 작은 술통에서 극기하며 지냈던 디오게네스다.
   
  어느 날, 알렉산더가 디오게네스에게 사자를 보내 말했다. “선생님! 한 가지 소원만 말해 보십시오. 무슨 소원이든지 다 들어주겠습니다.” 디오게네스가 대답했다. “영원의 한 조각만 주시오.” 그 요구를 듣고 알렉산더가 고민하다가 얼마 후 사자를 다시 보내 말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 소원만은 들어드릴 수 없군요.”
   
  그때 디오게네스가 사자에게 말했다. “가서 대왕에게 전해주시오. 영원의 한 조각도 줄 수 없고 붙들 수 없으면서 세상을 정복하겠다고 왜 그렇게 바쁘신지 이유를 알고 싶다고 전해주시오.” 그 질문에 알렉산더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자기도 뚜렷한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다.
   
  얼마 후, 알렉산더는 33세에 열병으로 죽었다. 어떤 역사가는 애완 원숭이에게 물려 생긴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그처럼 젊은 나이에 어처구니없이 죽게 되자 자신도 너무 기가 막혀서 이런 유언을 했다. “내가 죽으면 관 양쪽에 구멍을 뚫어 빈손을 양쪽으로 내놓게 하고 사람들에게 그 손을 보이라.” 사람이 죽을 때는 다 놓고 간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한 것이다. 얼마나 기막힌 인생인가?
   
  거룩한 삶의 목적이 없이 바쁘면 기막힌 인생이 된다. 더 나아가 최종 목적지도 모른 채 바쁘면 더 기막힌 인생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때가 되어 천국으로 가게 된 사실만큼 복된 사실은 없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인생 최대의 축복’이다. 그런 축복이 어떻게 가능해졌는가? 예수님의 성육신 때문이다.
   
  < 눈높이를 맞추라 >
   
  성육신이란 예수님이 사람과 소통하려고 육신이 된 것이다. 성육신은 대화와 소통을 도전한다. 누가 어떤 문제로 대화를 요청하면 “아니, 믿음도 없어?”라고 진리의 말씀을 내세워 설교하지 말고 성육신의 따뜻한 대화로 맞아주라. 목회자가 늘 진리를 내세워 강단 밑에서도 설교하는 식으로 말하면 권위가 높아지기보다 상대는 오히려 마음 문을 닫고 결국 권위도 잃는다. 말씀도 중요하지만 말씀의 소통도 중요하다. 진리와 영성은 ‘몸’을 입어야 참된 진리와 영성이 된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요 1:14).”는 말씀은 육신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암시다.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원론적 영성은 신비주의나 금욕주의로 흘러서 오히려 영혼을 망친다. 예수님은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부활하실 때 몸으로 부활하셨고 성령님은 지금도 몸을 성전으로 삼고 우리 안에 계신다. 몸도 소중하다. 사랑할 때 마음으로도 깊이 사랑할 수 있지만 몸과 물질과 시간까지 주어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내용을 담는 틀도 중요하다. ‘진실한 신앙’도 중요하지만 ‘바른 신학’도 중요하다. 교회도 중요하지만 가정도 중요하다. 하나님을 버리라는 얘기만 아니라면 가족의 반대도 늘 경청하라. ‘하늘을 향한 사다리’도 중요하지만 ‘땅을 이어주는 다리’도 중요하다. 천상도 바라보아야 하지만 세상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세상’과 ‘세상적인 것’은 다르다. 세상적인 것은 주의해도 세상은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서 아름답게 가꿀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율법’과 ‘율법주의’도 다른 것이다. 율법적인 삶은 주의해야 하지만 율법 자체는 소중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가진 민족이란 사실만으로도 큰 자부심을 가졌다. 이단은 대개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이니까 “기독교는 윤리가 아니다.”라는 그럴듯한 표현으로 마치 도덕과 윤리가 신앙에 방해가 되는 것처럼 끊임없이 세뇌한다. 진리는 도덕과 윤리를 말살하며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도덕과 윤리도 믿음의 원리 안에서 최대한 존중하라. 하나님 아버지도 소중히 여기면서 이 땅의 아버지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성육신의 믿음이다.
   
  어떤 사람은 “오직 예수야. 예수뿐이야.”라고 말은 최고로 잘한다. 그러면서 삶으로 예수님을 증거하지 못하고 행동이 엉망이고 약속도 지키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다. 말과 마음으로만 사랑하지 말고 몸으로도 함께하는 성육신의 사랑과 영성을 가지라. 행복한 인생과 가정과 교회를 만드는 다른 비결은 없다. 언어와 삶을 성육신의 언어와 삶으로 바꿀 때 행복의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성육신이란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사람이 수십 년간 가졌던 태도와 자세와 언어를 남의 눈높이에 맞춰 바꾸기는 쉽지 않다. 설교도 눈높이를 잘 맞춰야 하는 어린이 설교가 제일 힘들다. 그래도 눈높이를 맞추려고 할 때 소통이 이뤄진다. 부모가 눈높이를 맞출 때 자녀가 마음 문을 열고 선생님이 눈높이를 맞출 때 학생들이 마음 문을 연다. 하나님은 성육신을 통해 사람에게 눈높이를 맞추셨고 사랑하는 대상처럼 되셨다.
   
  가장 위대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처럼 되는 사랑’이다. 어떤 집사는 자녀가 좋은 대학에 붙어도 교회에서 기쁜 내색을 하지 않는다. 목회자도 무덤덤하다. 입시에 집착하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자녀가 대학에 떨어진 다른 성도의 입장을 생각해 기쁨을 절제한 것이다. 그처럼 남의 입장에 서려는 영성이 성육신의 영성이다. 그런 영성을 가지고 사랑하는 대상에게 눈높이를 맞추면서 몸과 힘과 시간과 물질을 최선을 다해 드림으로 가는 곳마다 감동과 행복의 모델이 되라.
   
  흔히 눈높이를 맞추라면 윗사람이 아랫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만 생각한다. 그러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도 눈높이를 맞추는 사랑이다. 긍휼의 눈으로 아랫사람의 처지를 살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해의 키를 높여 윗사람의 심정을 살펴주는 것도 중요하다. 부당한 조치가 아니라면 순수하게 리더나 목자의 뜻에 힘써 맞춰보려고 하라. 그런 자세는 결코 아부가 아니라 은혜와 축복을 받는 가장 복된 원리 중 하나다.
   
  눈높이를 맞추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겸손이다. 예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만 생각해도 예수님의 지극한 겸손이 느껴진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얼마나 겸손한 모습인가? 결국 예수님의 삶이 가장 강력하게 도전하는 삶의 덕목이 ‘겸손’이다. 많이 알고, 많이 가지고, 많이 헌신하고, 많이 체험할수록 더 겸손하라.
   
  인생은 달과 같다. 보름달일 때 겸손하라. 곧 초승달이 되기 때문이다. 초승달로 있을 때는 용기를 잃지 말라. 곧 보름달이 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은 보름달 때는 교만하고 초승달 때는 낙심하지만 신실한 성도는 보름달 때는 겸손하고 초승달 때는 용기를 잃지 않는다. 자신이 초승달임을 인정하면 곧 보름달의 축복이 주어지지만 자신이 보름달임을 주장하면 곧 초승달의 처지가 된다. 축복을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이 겸손이다.
   
  < 십자가를 지라 >
   
  성육신의 핵심적인 의미는 역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자기를 희생하는 십자가의 사랑이다. 계명을 잘 지켜도 사랑이 없는 성도보다 계명을 잘 지키지 못해도 사랑이 있는 성도가 되라. 다만 불의와 응석을 무조건 받아주는 것까지 사랑이라고 오해하지 말라. 공의를 위해 때로는 죽음과 이별과 아픔과 손해도 불사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참된 교회의 증표는 ‘훌륭한 의식’이나 ‘대단한 기적’이나 ‘화려한 건축물’이나 ‘교인 숫자’가 아니라 ‘사랑’이다. 목회의 성공도 숫자에 있지 않고 사랑에 있다.
   
  얼마 전, 전문인 목회연구과정(MSP) 학생들에게 필자가 강의 중에 역설적으로 말했다. “이제 저를 만나서 숫자적인 교회 성장은 틀렸다고 보십시오. 최근의 교회 성장 방식과는 달리 교회 성장이 안 될 것 같은 원리들만 배우는 것을 불행하게 생각하지 말고 감사하게 생각하십시오. 목회에 성공을 못해도 바른길로 가십시오. 바른길로 잘 가지 못해도 바른길로 가려는 마음만은 결코 잃지 마십시오. 숫자적인 성공에 대한 야망이 있다면 차라리 지금 그만두십시오.”
   
  요즘처럼 전도가 힘들 때 교회 성장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들리는 원리들을 주로 강조하니까 필자를 만나 공부하는 것이 실패의 전조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성공이다. 성공은 숫자에 달려있지 않고 선한 영향력에 달려있고 하나님의 마음에 달려있다. 한 사람이라도 참된 사랑을 아는 멋진 후대를 키우는 것이 진짜 성공이다. 인간적인 성공은 다 자기만 살겠다는 성공이다. 참된 사랑은 “너를 위해서라면 지금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성공한 사람이다.
   
  어느 날, 한 집사가 십자가의 사랑에 감동을 받아 아내에게 고백했다. “여보! 당신하고 결혼해서 사니 정말 행복하고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소.” 그 고백을 들으면 아내가 행복하게 되면서 그 가정도 얼마나 행복한 가정이 되겠는가? 참사랑은 기본적으로 ‘요구가 없이 그저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다.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자세로 성육신의 사랑을 실천할 때 행복도 결코 그 인생과 가정을 비켜가지 않는다.
   
  < 작은 예수가 되라 >
   
  성육신의 개념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다. 작은 예수가 되라.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스스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완벽하게 이룰 수 있지만 그 뜻과 계획을 사람을 통해 이루는 방법을 즐겨 사용하신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에게 할 일을 주시고 그 일을 수행하는 모습을 통해 삶의 의미도 주고 상급도 주시기 위해서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신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 해주시는 것은 은혜와 축복이 아니다. 진짜 은혜와 축복은 하나님의 일에 대해 사명을 주시고 우리를 동참시키는 것이다. 교회에서 은혜받는 것도 축복이지만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은 더욱 큰 축복이다.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축복이지만 거룩한 일을 위해 돈을 많이 쓰는 것은 더욱 큰 축복이다.
   
  행복을 원하면 나로 인해 행복해지는 사람이 많아지게 하라. 또한 뜻있는 큰일을 할 때도 은밀히 하라. 그래야 누군가의 시기와 질투와 불평이 생기는 부작용도 줄어든다. 내가 열심히 일했는데 엉뚱한 사람이 이익을 보면 이런 소리가 나온다. “괜히 남 좋은 일만 했네.” 그러나 남 좋은 일 하면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갚아주심으로 언젠가 내게도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 <월새기(월간새벽기도)> 사역을 통해 남 좋은 일 하니까 가끔 재정적인 압박은 있지만 신비하고 기적적인 은혜의 손길도 체험하면서 기쁨과 보람도 얼마나 큰지 모른다.
   
  선교와 구제에 최대 관심을 두고 그 일에 몸과 마음과 물질로 동참하라. 지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필요로 하신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로서 “나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멋있게 성취하고 하나님의 꿈을 이뤄드리겠다.”고 다짐하고 최선을 다하라.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높은 자리를 좋아하지만 낮은 데로 오신 예수님처럼 낮은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주위를 살펴보라.
   
  어느 누구도 가볍게 보지 말고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말라. 어린이들은 존중해주고, 어르신들은 존경하고, 가난한 사람은 긍휼히 여기고, 장애인들은 천사처럼 대해주고, 심지어 괴팍한 사람도 “요새는 저렇게 개성이 강한 사람도 필요해.”라고 인정해주라. 그처럼 생활 전선에서 성육신의 삶을 실천하는 작은 예수가 되어 세상의 빛이 되고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겨내라.
   
  인생은 때때로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의 약속을 믿으며 살라. 과거를 잘 잊으려면 결단이 필요하지만 내일의 풍성한 약속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이전의 경험과 이미지만 믿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약속을 믿으라. 그 약속을 믿고 찬란한 내일의 비전을 세우고 나아가라.
   
  필자는 현재까지 41개의 <성경 강해설교>를 완성했다. 성경 전체의 약 77%다. <월새기(월간새벽기도)> 42호(2018년 2월호)는 15800권 발행한다. 필자에게 41개의 완성된 강해설교는 41명의 생명제자처럼 여겨지고 15800권의 <월새기>는 15800명의 교인처럼 여겨진다. 만약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월새기 영어판>이 예정대로 2019년 9월에 창간호가 발행된다면 그것들이 작은 해외선교사처럼 세계 곳곳에서 변화를 일으키며 복음 한류의 역사를 위한 선봉 도구가 될 것이다. 얼마나 복된 비전인가?
   
  거룩하고 찬란한 비전을 품고 나아가도 때로 장벽과 실패의 순간을 만나지만 하나님은 그 장벽과 실패까지도 멋지게 선의 재료로 활용하신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도 길을 열어주시고 결국 약속대로 풍성한 축복을 허락하실 것이다. 과거의 안 좋았던 경험은 참고만 하라. 과거의 안 좋았던 경험을 믿으면 의심 많은 불행한 인생이 된다. 반대로 과거의 좋았던 경험은 더 좋게 될 내일에 대한 믿음으로 발전시키라. 희망찬 내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복된 내일을 향해 나아가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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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75 이달의 월새기 백 배의 복을 얻는 길(1) (마가복음 4장 1-9절) 요삼일육선교회 91 2024.04.13
10774 온라인새벽기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 (시편 47편 1-9절) 요삼일육선교회 110 2024.04.12
10773 이달의 월새기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2) (마가복음 3장 31-35절) 요삼일육선교회 92 2024.04.12
10772 담안편지 담안편지(898) - 나가라 하실 때 나가면 되겠지 하고 있습니다 요삼일육선교회 67 2024.04.12
10771 이달의 월새기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1) (마가복음 3장 31-35절) 요삼일육선교회 87 2024.04.11
10770 온라인새벽기도 하나님을 앞서지 말라 (시편 46편 8-11절) 요삼일육선교회 85 2024.04.11
10769 온라인새벽기도 공휴일 요삼일육선교회 75 2024.04.10
10768 이달의 월새기 성령 충만의 5대 증표(2) (마가복음 3장 20-30절) 요삼일육선교회 831 2024.04.10
10767 온라인새벽기도 주님과 날마다 동행하라 (시편 45편 10-15절) 요삼일육선교회 116 2024.04.09
10766 이달의 월새기 성령 충만의 5대 증표(1) (마가복음 3장 20-30절) 요삼일육선교회 102 2024.04.09
10765 주일설교 예수님을 잘 아는 길 (마가복음 8장 27-38절) 요삼일육선교회 112 2024.04.08
10764 온라인새벽기도 예수님을 잘 아는 길 (마가복음 8장 27-38절) 요삼일육선교회 91 2024.04.08
10763 이달의 월새기 끝까지 제자답게 살라 (마가복음 3장 13-19절) 요삼일육선교회 74 2024.04.08
10762 대표기도 주일예배 대표기도 (허장도집사) 요삼일육선교회 70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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