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두려워할 줄 알라 (이사야 36장 4-10절)
불신자가 믿음을 빙자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다. 선거철에 표를 얻으려고 교회를 들락날락하는 것도 역시 하나님을 망령되이 여기는 죄다. 구약 시대에 제사장들도 허락 없이 지성소에 들어가면 즉시 죽어 넘어졌다. 심지어는 대제사장도 대 속죄일이 아닌 때에 피가 없이 들어가면 역시 죽어 넘어졌다. 그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성을 스스로 지키신다. 죄인은 누구도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없다. 하나님의 거룩성을 훼손하고 얻을 수 있는 복도 없다.
사랑의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버릇없는 아이처럼 되지 말라. 버릇없는 아이는 잘해주는 사람에게 기어오르는 경향이 있다. 잘해주면 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예를 갖추어야 하는데 방종으로 흐르면서 권위를 무시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인다. 왜 오늘날 은혜가 옛날보다 떨어진 느낌을 받는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열린 예배가 좋게 느껴져도 ‘너무 열린 예배’가 되게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용해 방종으로 흐르면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고 참된 복을 얻기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 방종이란 멋대로 행동한다는 뜻도 있지만 가르치려고만 하고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뜻도 있다. 선생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선생이 되기 좋아하는 것은 방종을 낳기에 좋은 일이 아니다. 방종이 보이면 하나님의 따끔한 매가 주어진다. 그 매가 결국은 살리는 매가 될지라도 그전에 상당한 아픔을 지불해야 한다.
믿음의 철이 들지 않은 자녀의 경우에 구원은 받아도 하나님께서 안심하고 하나님의 기업을 맡기지 않는다. 오직 믿음의 철이 든 자녀에게만 구원과 더불어 하나님의 기업을 맡긴다. 결국 경외하는 성숙한 신앙이 차원 높은 축복을 예비한다. 하나님 두려워할 줄 알라. 사랑은 경외하는 마음을 포함함을 늘 잊지 말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감으로 참된 축복을 얻어 누리라.<2018.2.7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