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서 기쁨을 찾는 법(1) (이사야 37장 1-7절)
< 고통이 인물을 만든다 >
인생길에는 굴복의 길과 극복의 길이 있다. 고독에 굴복하면 불안이 끊이지 않지만 고독을 극복하면 무거운 짐도 질 수 있는 튼튼한 어깨가 생긴다. 불행한 만남에 굴복하면 인생이 고독하게 느껴지며 이별로 끝나지만 불행한 만남을 극복하면 인격과 지혜를 얻는다. 실패에 굴복하면 염려에 젖어 들지만 실패를 극복하면 어제의 실패가 오늘의 승리로 변한다. 고난에 굴복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지만 고난을 극복하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한다. 아무래도 굴복의 길보다 극복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어떤 사람은 극복의 길이 좋은 줄 알면서도 의지가 부족해 굴복의 길을 택한다. 어떤 사람은 굴복의 길을 가면서도 극복의 길을 가는 것처럼 합리화시킨다. 어떤 사람은 이번에는 굴복의 길을 가지만 다음번에는 극복의 길을 가겠다고 미룬다. 오늘의 굴복은 내일의 굴복을 낳다가 끊임없는 굴복을 낳고 오늘의 극복은 내일의 극복을 낳다가 끊임없는 극복을 낳기에 지금 당장 무조건 극복의 길로 들어서겠다고 다짐해보라.
어떤 사람은 굴복의 길로 가는 자기에 대해 이렇게 변호한다. “내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십니까? 얼마나 오래 기다린 줄 아십니까? 얼마나 연단을 받았는지 아십니까?” 그러나 우리가 어려움을 당했어도 앞서간 신앙 선배들만큼 어려움을 당했는가? 우리가 오랜 세월을 기다리고 연단받았어도 앞서간 성경 인물들처럼 오래 기다리고 연단받았는가?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우리가 당하는 것 이상의 고난을 통과하면서 위대한 일을 성취했다.
내가 고난을 당하는 만큼 남들도 비슷한 고난을 당하고 있다. 고난이란 위대한 선생은 유감스럽게도 내게만 찾아오지 않는다. 내 고난이 남의 고난보다 클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내 고난은 많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그랬듯이 충분히 극복될 수 있음을 깨닫고 고난을 극복하는 길로 나서서 용기 있게 그 길을 걸어가라. 위대한 생각이 위대한 실천을 낳고 위대한 실천이 위대한 인물을 낳는다.
위대한 생각은 어디서 생기는가? 수많은 고통의 나날을 통해 기경된 마음의 터전에서 생긴다. 고통이 위대한 인물을 만든다. 소크라테스, 공자, 부처 같은 인물들은 모두 고통을 통해 사상을 발전시켰다. 키르케고르와 같은 철학가나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같은 위대한 문학가도 고통을 통해 창조성을 발전시켰다. 밀턴이 유명해진 것은 시력을 잃는 고통 중에 영안을 얻고 쓴 작품인 <실락원> 때문이었고 빅토르 위고가 유명해진 것도 베르사이유 감옥의 고통 중에 엮어낸 작품인 <레미제라블> 때문이었다.
위대한 예술성도 고통의 토양에서 배양되는 경우가 많다. 베토벤이 위대한 악성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청각 장애의 고통을 극복하고 불후의 명곡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극심한 고통이 찾아오거든 “고통이 인물을 만든다.”는 진리를 늘 기억하고 고통의 존재 이유를 긍정하면서 그때를 성공 기회로 만들라. 난관, 고난, 역경, 장애, 고통은 성공의 기회일 뿐 좌절의 기회가 아니다. 찬란한 시간이 낮의 씨실과 밤의 날실에 엮여 이뤄지듯이 찬란한 삶은 낮과 같은 형통의 씨실과 밤과 같은 고통의 날실로 엮여 이뤄진다.<2018.2.9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