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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이 생길 때의 축복 (에베소서 1장 18-22절)
작성자 미션퍼블릭 등록일 2018-04-19
에베소서 1장 18-22절
18.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영안이 생길 때의 축복 (에베소서 1장 18-22절)
 1. 소망의 실체를 깨닫는다
   
  본문 18절 중반부를 보라.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성도를 어떤 일로 부르신 것은 부담이 아니라 오히려 소망이다. 즉 하나님이 내게 어떤 일을 시키는 것은 내게 희망이 있다는 증거이고 앞으로 하나님이 넘치게 축복을 주실 것임을 나타내는 희망의 전조다. 지금 사람들이 가장 굶주려 있는 것이 ‘희망’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가 얼마나 복된 존재인가? 늘 넘치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절망 중에도 희망을 보라. 간신히 힘들게 살지 말고 간절히 무엇인가를 추구하며 기쁘게 살라. 믿음이 굳건해지면 희망도 넘치게 된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고 예배와 기도의 자리로 부르셨다는 것이 희망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일을 위한 어떤 부담을 주신 것도 희망이다. 현재의 모습이 부족해도 넘치는 희망을 가지고 살라. 하나님은 나를 현재의 모습대로 다루지 아니하시고 늘 예수님 안에서 나의 가능성을 보시고 다루신다.
   
  하나님은 자식도 없는 노인을 불러서 그의 이름을 ‘열국의 아비’란 뜻을 가진 ‘아브라함’이라 부르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다. 또한 사기꾼 같은 야곱을 불러서 그의 이름을 ‘하나님을 이긴 자’라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로 삼으셨다. 예수님은 갈대와 같은 시몬에게 ‘반석’이란 뜻을 가진 ‘베드로’란 이름을 주시고 그를 교회의 반석과 같은 존재로 삼으셨다. 하나님은 나도 그렇게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그런 소망의 실체를 깨달으라.
   
  2. 풍성의 실체를 깨닫는다
   
  본문 18절 하반부를 보라.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이 구절에서 ‘그 기업’이란 ‘하나님의 기업’으로서 성도를 뜻한다. 흔히 ‘풍성한 축복’이란 말을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외적인 축복을 생각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큰 축복은 내가 하나님의 기업이 된 것이다. 나는 하나님에 의해 소유되고 사랑받는 존재다. 하나님의 소유란 존재 의식을 가지고 말씀대로 순종하면 점점 풍성한 축복도 따라온다.
   
  살다 보면 힘들 때도 있지만 그때 믿음을 보여주라. 힘들면 불평하고 원망할 수 있다. 또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남을 가해자라고 생각하고 심지어는 부모와 하나님까지 가해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힘든 일에 대해 남 탓으로 돌리면 삶은 더 불행해진다. 힘들어도 내게 있는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을 생각하라. 나중에 보면 어려움이 축복의 통로였다. 고난을 내 삶의 침입자라고 생각해서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친구로 삼고 은혜와 축복의 통로로 삼으면 그 고난의 친구가 많은 것을 가르쳐줄 것이다.
   
  모든 부요가 다 누림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서 남긴 후에 “내가 누리지 못해도 내 자녀는 누리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남겨준 물질이 자녀의 누림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물질이 축복의 원천이 될 수도 있지만 저주의 흉기가 될 수도 있다. 나눔과 누림이 없는 축복과 행복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물질 때문에 인간관계가 망가질 때가 많고 심지어는 교회생활이나 믿음생활도 망칠 때가 많다. 참된 믿음이 없으면 참된 나눔도 없고 참된 나눔이 없으면 참된 누림도 없다.
   
  3. 능력의 실체를 깨닫는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그 능력의 실체를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19절). 사람들은 ‘능력’이라고 하면 어떤 인간적인 힘을 연상하지만 사실상 참된 능력은 십자가에 있다. 본문 20절에서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했다.”는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나타났다.”는 말이다.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히셨다(20절). 그리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만물 위에 있는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21-22절).
   
  그 예수님의 능력은 내 능력도 될 수 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성도도 죽은 후에 다시 부활할 것이다. 더 나아가 그 부활의 생명력을 부분적으로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다. 그런 엄청난 축복과 능력을 얻으려면 늘 전제가 있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기쁘게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아무리 비천한 존재라도 자발적으로 기쁘게 십자가를 지면 놀라운 반전 인생을 만들어낼 수 있다.
   
  능력 있는 삶을 사는 비결이 무엇인가? 능력은 밤 새워 기도하고 신비로운 체험을 할 때 생기기보다 십자가를 질 때 생긴다. 또한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은혜를 체험할 때 생긴다. 성자란 죄 없는 자가 아니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자를 뜻한다. 또한 능력자란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워 어떤 시련도 극복해내는 자를 뜻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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