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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변화를 이뤄내는 길 (요한복음 1장 9-13절)
작성자 미션퍼블릭 등록일 2018-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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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4편 말씀 중에서 4번째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04편 전체 말씀은 "성경66권설교파일"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4) 최선의 변화를 이뤄내는 길 (요한복음 1장 9-13절)
 

 < 변화의 지렛대가 필요합니다 >
   
  요새 동성애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자는 주장이 커집니다. 동성애자들은 동성애가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니까 차이를 인정하라고 하며 무지개 이미지를 내세웁니다. 그래서 동성애자들 행사에는 무지개 깃발이 휘날립니다. 물론 사람마다 성적 취향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취향이 공동체에 해가 된다면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기고 제지할 수도 있습니다.
   
  일전에 한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마약을 해보셨습니까? 저는 다 해봤습니다. 몽롱한 느낌이 쾌락이라면 술 담배보다 10배 쾌락을 주는 것이 이성행위이고, 이성행위보다 10배 쾌락을 주는 것이 마약이고, 마약보다 10배 쾌락을 주는 것이 동성행위입니다.” 그 말을 듣고 동성행위에 빠지면 그 수렁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쾌락의 강도가 클수록 끊기도 어렵고 영혼과 육신에 치명적입니다.
   
  그처럼 동성애의 중독성과 치명성에 대해 말해주면 다음과 같이 반응할까요? “목사님! 요새 삶이 권태로운데 강력한 쾌락을 얻는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제 마약이나 동성행위도 해볼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면 동성애에 대해 훨씬 더 경계하게 됩니다. 그 중독성과 치명성을 모르고 친구나 지인을 따라, 혹은 유흥업자의 미혹에 걸려, 혹은 호기심으로 한두 번 그 쾌락의 문턱을 넘었다가 중독될 때도 많습니다.
   
  동성애 문제는 이해할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치료하고 끊기를 힘써야 할 문제입니다. 물론 끊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전에 제게 말했던 그의 말대로라면 술 담배를 끊기보다 100배의 쾌락을 주는 마약을 끊기가 100배 힘들고 1000배의 쾌락을 주는 동성행위를 끊기가 1000배 힘들 수 있습니다. 그래도 끊는 사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해하자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기보다는 끊도록 도전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해도 문제지만 ‘틀린 것’을 ‘다른 것’이라고 해도 문제입니다. 도를 넘는 쾌락 추구를 막는 도덕과 윤리와 관습과 종교 등은 막힌 사고의 산물만이 아닙니다. 참된 자유란 무제한의 자유가 아닌 절제적인 자유입니다. 자연의 섭리에도 어긋나고 청소년기에 동성애의 문턱을 한두 번 넘으면 치명적인 중독성에 빠질 수 있기에 동성애를 이해하자는 것은 쿨한 시각이나 열린 시각이 아니라 허용된 자유의 경계를 허무는 시각입니다.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부모가 되기 전과 후가 많이 차이가 납니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면 동성애 허용에 대해 생각이 바뀝니다. 동성애가 쉽게 허락되는 토양이 되면 충분히 정상으로 지낼 수 있는 자기 자녀가 한두 번 그 문턱을 넘다가 거기에 빠져 성 정체성마저 흔들릴 수 있음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동성애 문제는 이해해야 할 문제라기보다는 문제시해야 할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동성애가 선천적인 성향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동성애는 한두 번 그 문턱을 넘다 보면 후천적으로도 누구나 빠질 수 있습니다. 그 강력한 중독성을 끊기 힘드니까 정체성 변환이란 더 쉬운 방법을 내세울 때가 많기에 그 상황을 그냥 방조할 수만은 없습니다. 동성애자들은 “우리가 스스로 망가지든 말든 왜 참견이냐? 다르다고 이해해라!”고 하지만 동성애 문제는 사회가 참견할 문제입니다. 동성애는 ‘상대를 필요로 하는 행위’로서 충분히 정상으로 살 수 있는 사람도 동성애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자들은 나이가 들면 젊은 동성애자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고독이 심화되고 각종 질병으로 결말이 비참해질 때가 많습니다. 특히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자녀가 동성애에 빠져 성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부모는 통곡합니다. 사춘기 때는 금기된 성에 더 끌릴 수 있음을 기억하고 동성애자들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장치나 환경조성은 꼭 필요합니다. 인권이란 무제한으로 행사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를 위해 인권의 한계를 두고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어떤 행위가 치명적인 중독성이 있을 때 그 행위가 확산되지 않도록 장벽을 놓는 것은 필요합니다. 동성애 인권이 높이 보장되는 나라에서 동성애자의 자살률이 더 높다는 통계는 동성애 확산에 대한 장벽을 세우는 것이 필요함을 반증합니다. 그런 장벽들이 개인 변화의 지렛대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치열한 내적 사투를 통해 금단현상을 이겨내고 동성애를 끊고 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변화의 가능성’을 ‘실제적인 변화’로 만들어내려면 변화의 지렛대가 필요합니다.
   
  < 최선의 변화를 이뤄내는 길 >
   
  이 세상에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처럼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면 변화를 시도하고 변화를 이뤄내야 됩니다. 사람의 사람다움은 변화의 가능성이 없다고 할 때 절망하지 않고 최선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에 있습니다. 변화의 가능성을 통해 실제적인 최선의 변화를 이뤄내어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예수님이 참 빛이심을 아십시오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이 구절에서 ‘참 빛’은 예수님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되셨습니다. 그 말은 주님과의 일대일 관계가 신앙생활의 기초란 뜻입니다. 살면서 사람을 지나치게 의지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지나치게 의지하면 무서운 어둠이 삶에 닥칩니다. 의지하는 그 사람이 참 빛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교주를 지나치게 높이는 이단을 멀리해야 합니까? 축복을 못 받기 때문이 아니라 저주를 받기 때문입니다. 담임목사도 너무 의지하지 마십시오. 담임목사는 영매가 아니라 교사나 리더나 산파일 뿐입니다. 치유 집회나 기적 집회를 너무 쫓아다니지 마십시오. 자기를 잘 알고 사랑하는 자기 담임목사의 은밀한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더 움직입니다.
   
  남을 통해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추구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추구하십시오. 예수님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 직접 담대하게 나가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인위적인 사람 다리를 잘 끊어야 신적인 구름다리가 잘 펼쳐집니다. 이단 교주에게 속지 말고 ‘기적의 종, 능력의 종, 치유의 종’이란 사람에게 속지 마십시오. 기적집회를 찾아다니느라고 수고하지 마십시오. 섬기는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며 자기 담임목사의 선한 인도를 따라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는 소박한 삶이 은혜와 축복과 기적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또한 참 빛이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라는 말은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메시지도 암시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입는 옷, 타는 차, 사는 집 등으로 사람을 차별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없으면서도 있어 보이려고 합니다. 바로 거기서 불행감이 생기고 결국 불행한 현실이 펼쳐집니다. 반면에 참된 성도는 있으면서도 없어 보이려고 합니다. 바로 거기서 행복감이 생기고 결국 행복한 현실이 펼쳐집니다.
   
  ‘있어 보이려는 사람’은 사실상 ‘없는 사람’으로서 남을 차별도 잘합니다. 반면에 ‘없어 보이려는 사람’은 사실상 ‘있는 사람’으로서 남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둘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과 사귀려고 하고 나쁜 사람을 멀리하려는 것은 차별이 아닙니다. 그러나 외형과 편견 등으로 사람을 몰상식하게 차별하면 안 됩니다. 차별 받는 사람도 얼마든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이룰 수 있는 ‘각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매우 소중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베들레헴의 말구유로 초라하게 오셨기에 세상은 예수님이 참 빛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10절). 때로는 목수의 아들이라고 비하하고(마 13:55) 귀신들린 자라고 멸시하며(막 3:22) 소외시키고 따돌리고 외면했습니다. 놀라운 기적과 능력을 목격한 후에는 예수님을 그저 정치적인 메시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각종 어둠을 물리치는 변화의 근원이 되는 참 빛이십니다. 그 사실을 늘 기억하고 변화의 희망을 잃지 않고 살면 결국 변화됩니다.
   
  2.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으십시오
   
  본문 11-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이 에 땅에 오셨을 때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는 최선의 변화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을 때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다른 무수한 축복이 뒤따릅니다. 크게 다음과 같은 3가지 축복이 뒤따릅니다. 첫째, 영생을 얻습니다.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다른 것을 다 얻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둘째, 평안을 얻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 펼쳐져도 흔들리지 않는 내적인 평안은 외적인 평화와 행복을 낳습니다. 셋째, 변화의 가능성이 생깁니다. 사람에게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만큼 복된 사실은 없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늘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축복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세상은 “된다! 된다!”고 해도 결국 안 되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안 될 것 같아도 결국 됩니다. 사람은 사람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나누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예수님을 영접한 자’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자’로 나눕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것과 영접하지 않은 것은 엄청난 차이와 변화를 낳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때로 고난이 있어도 결국 승리합니다.
   
  요새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해고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절대 해고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영적인 평생직장이 보장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어려움이 장애가 되겠습니까? 살다 보면 때로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시적인 실패로 절망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장군이 토냐에게 묻습니다. “왜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었지?” 토냐가 대답합니다. “혁명 중에 거리가 불타고 혼란해서 아버지가 제 손을 놓쳤어요.” 그때 장군이 말합니다. “아냐. 진짜 이유를 말해줄까? 진짜 이유는 코마로프스키가 네 친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이야. 지바고가 네 아버지야. 친아버지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의 손을 놓지 못해!” 사람도 자식의 손을 놓지 않는데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손을 놓겠습니까? 하나님은 자녀의 기도와 시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너무 쉽게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안 된다고 하지 말고 계속 꿈과 비전을 따라 나아가십시오. 사람과 환경과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마침표를 너무 빨리 찍지 마십시오.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변하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너무 빨리 마침표를 찍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거나 멈추게 하지 마십시오. 고난과 상처와 문제와 시련은 잠깐의 쉼표입니다. 잠깐 쉰 후에는 야곱처럼 강한 집념과 끈기로 다시 일어서십시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늘 변화의 가능성과 내일의 소망이 있습니다. 지금은 어려워도 곧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잠깐의 쉼표는 찍어도 마침표는 찍지 마십시오. 찬란한 비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힘들어도 계속 기도하고 계속 시도하고 계속 감사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을 통해 결국은 하나님이 개입해주십니다. 스스로 마침표만 찍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는 언젠가 숯덩이처럼 타버린 가슴이 불덩이처럼 타오르는 가슴이 되고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역전의 역사를 이룰 것입니다.
   
  3. 예수님처럼 살려고 하십시오
   
  본문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최선의 변화는 사람의 뜻과 힘과 선택과 의지로 이뤄지기보다는 하나님의 뜻과 선택과 은혜로 이뤄진다는 뜻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님처럼 살려고 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어둔 현실에 빛이 비치는 놀라운 변화의 역사도 나타납니다.
   
  1차 세계대전 중인 1914년 12월 24일 저녁에 생긴 일입니다. 플랑드르 전선에서 100미터 거리를 두고 영국군과 독일군이 치열한 총격전을 벌여 많은 병사들이 죽었습니다. 그때 살아남은 병사들이 참호 속에서 잠시 숨을 돌릴 때 한 독일 병사가 조용히 노래했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조용히 듣던 양측 병사들이 한 명씩 캐럴을 따라 부르면서 마침내 큰 합창이 되었습니다.
   
  그때 영국군 진영에서 박수를 치자 독일군 병사 하나가 일어서서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고 잠시 휴전을 제안했습니다. 곧 곳곳에 초가 밝혀졌고 양쪽 병사들은 총을 내려놓고 잠시 휴전 상태에서 서로 만나 여러 얘기도 나누고 이와 쥐의 퇴치법도 가르쳐주고 두 전선 사이에 널린 시신도 함께 묻어주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상대가 사탄이 아닌 사람임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처럼 살려고 하고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폭력이 비폭력이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특히 예수님처럼 살려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잘하는 선교마인드를 훈련해야 합니다. 요새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벌까?”에 관심이 많지만 성도는 “어떻게 돈을 바르게 벌까?”에도 관심을 기울이면서 동시에 “어떻게 돈을 잘 나눌까?”에도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뭔가를 자기에게 주셨다면 그것을 가지고 자랑하면서 마음이 높아지는 재료로 삼지 말고 겸손하게 남을 섬기고 돕고 일으키는 재료로 삼으십시오.
   
  어느 날, 성 프랜시스의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겸손해질 수 있습니까?” 프랜시스가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을 한번만 진실로 쳐다보게나. 그러면 결코 교만해질 수가 없네.” 자랑이 넘치는 것은 예수님과 멀어지는 증거이고 사랑이 넘치는 것은 예수님과 가까워지는 증거입니다.
   
  왜 하나님이 구원과 축복의 은혜를 주셨습니까? 자기가 가진 것을 가지고 다른 영혼들을 구원하고 나누고 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갚는 최적의 방법은 자기 축복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누가 저주 받고 누가 축복 받습니까? 축복은 무속인이나 관상쟁이나 점쟁이가 결정하지 않고 대개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즉 거룩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영혼을 구원하고 잘 나누면 하나님의 축복이 그를 비켜가지 않습니다.
   
  남의 짐을 져주면 신기하게 자기 인생의 짐이 훨씬 가벼워지고 남의 상처를 싸매주면 신기하게 자기 인생의 상처가 훨씬 줄어듭니다. 결국 기적의 종을 찾고 기적 집회를 찾기보다 차라리 약자를 찾아 사랑과 수고의 손길을 베푸는 것이 더욱 기적적인 역사를 만듭니다. 물론 공의도 없이 남용된 사랑은 참된 사랑도 아니고 대개 역효과를 낳습니다. 사랑만큼 공의도 중요합니다. 그처럼 공의를 바탕으로 펼쳐진 사랑은 반드시 선한 변화의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 변화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
   
  사람은 가끔 질문합니다. “사람이 변할 수 있습니까?” 타인은 물론 자신도 잘 변화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사람이 과연 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가 생기기도 합니다. 가끔 보면 겉으로는 변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변하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변한 줄 알았는데 옛 성질이 표출되어 순식간에 망가질 때도 얼마나 많습니까?
   
  어느 날, 강을 건너려는 전갈이 개구리에게 사정했습니다. “개구리야! 나 좀 태워줘.” 개구리가 말했습니다. “전갈아! 너를 태웠다가 네가 등에서 나를 물면 내가 죽는데 어떻게 태워주니?” 전갈이 개구리의 이성에 호소했습니다. “개구리야! 생각해봐. 너를 물으면 나도 죽는데 왜 물겠니?” 결국 개구리가 전갈을 태워주었습니다. 그런데 강 중앙에서 갑자기 전갈이 개구리의 목을 꽉 물었습니다. 결국 둘 다 빠져 죽게 되었는데 그때 개구리가 물었습니다. “전갈아! 왜 물었니?” 전갈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원래 무는 전갈이잖아?”
   
  물면 같이 죽는 줄 머리로는 알면서도 옛 성질대로 일단 물고 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만큼 사람의 변화는 힘듭니다.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산이 움직였다는 말은 믿어도 사람이 변했다는 말은 믿지 말라.” 그처럼 사람의 변화가 힘듭니다. 때로는 남을 단시일 내에 변화시키려고 하다가 인간관계가 깨질 때도 많습니다. 자신도 잘 바꾸지 못하는 사람이 남을 어떻게 쉽게 바꾸겠습니까? 바꾸려고 하기 전에 바뀌려고 하십시오.
   
  뭔가 변화되기를 원하면 항상 자기 변화를 우선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자기변화를 이룬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약하고 허무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강한 것 같은 사람도 알고 보면 다 약합니다. 어떤 스턴트맨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네 번이나 맨 몸으로 뛰어내리고도 살아남아서 불사조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 불사조가 뉴욕의 맨해튼 거리를 걷다가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져 죽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도 자신을 자신하지 못합니다. 아침에 기쁘게 배낭매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런 연약한 사람이 자기도취에 빠져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주변을 보면 공주병과 왕자병에 걸린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사람은 가장 똑똑한 것 같지만 가장 어리석은 행동을 할 때도 많습니다. 불면증이나 정신병과 같은 질병들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사람에게는 모두 크고 작은 정신병들이 있습니다. 사람에 대해 지나친 비관도 금물이지만 지나친 낙관도 금물입니다.
   
  언젠가 한 목사가 용인 정신병원에서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 예배에는 비교적 경증 환자만 참석할 수 있는데 그때 설교 중에 한 병자가 자꾸만 킥킥대며 웃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병자가 그를 쿡쿡 찌르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신경 쓰지 마세요. 얘가 원래 이렇게 미친 행동을 잘해요.” 미친 사람이 남보고 미쳤다니까 목사님이 설교하다가 너무 웃겨서 정신없이 웃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환자가 말했습니다. “어어! 저 목사도 미쳤네.” 그 말을 듣고 그 목사는 자기도 미친 것을 그날 처음 발견했다고 합니다.
   
  미쳤다는 사람과 정상이란 사람은 사실상 별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낙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구원받은 성도도 낙관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누구나 겁나는 행동이 나올 수 있고 심지어는 신실한 성도도 순간적으로는 불신자보다 더 나쁜 행동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미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늘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더 나은 변화를 이룰 수 있는 최대 근거는 오직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만약 그런 변화의 가능성도 없이 현재의 잘못된 모습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으면 얼마든지 변화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안에서 사람이 얼마든지 선한 변화를 이룰 수 있음을 무수히 증거합니다. 오래도록 변화되지 않았어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찬란한 꿈과 비전을 품고 나가면 월새기(월간 새벽기도) 발행사역 이상의 사역도 이룰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중에 인물이 나오든지 혹은 인물이 연결되든지 혹은 인물에게 영향력을 미치든지 해서 교회를 살리고 나라를 구하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에 일조하되 그 일도 가급적 은밀하게 할 것입니다. 예수 믿고 인물이 되십시오. 더 나아가 인물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이 되십시오. 그래서 찬란한 꿈과 비전을 이루고 최선의 변화를 이뤄내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성경66권 설교파일 중에서 요한복음 4번째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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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하나님은 나의 전부 (예레미야 2장 9-19절) 미션퍼블릭 1485 2017.04.12
82 주님이 고난 받으신 5가지 이유 (히브리서 2장 11-18절) 미션퍼블릭 1304 2017.03.29
81 승패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사무엘하 5장 17절) 미션퍼블릭 1497 2017.03.08
80 변화는 믿음의 생명입니다 (삼상 2장 1-11절) 미션퍼블릭 1990 2017.02.15
79 좋은 이름을 남기는 길 (전도서 7장 1-4절) 미션퍼블릭 1884 2017.02.01
78 기다림은 낭비가 아니다 (출애굽기 2장 11-15절) 미션퍼블릭 1646 2017.01.18
77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마태복음 5장 6절) 미션퍼블릭 1642 2017.01.04
76 주님이 찾아오시는 마음(2) (이사야 8장 16-22절) 미션퍼블릭 1666 2016.12.21
75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 (사사기 4장 11-24절) 미션퍼블릭 1690 2016.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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