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숭배자들은 도취에 빠져 우상숭배로 힘을 얻었다면서 그 행위를 그치지 않았다(9-10절). 우상숭배에 빠지면 ‘도취’와 ‘착각’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낫지 않았어도 나았다고 하고 듣지 않았어도 들었다고 하고 보지 않았어도 보았다고 하면서 자신을 선민처럼 착각한다. 그러면서 삶과 마음이 점차 곤고해져도 스스로는 힘을 얻었다고 착각한다.
왜 우상숭배에 빠지는가? 거짓 선지자들이 기적과 현상을 보여주면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 같은데 하나님은 특이한 기적이나 현상을 보여주지 않고 잠잠했기 때문이다(11절).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로 우상숭배는 결국 무익한 행위로 판명난다(12절). 그때는 우상에게 아무리 구원해달라고 해도 소용없다. 반면에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뢰하는 성도는 축복의 땅과 기업을 얻는다(13절).
왜 현대인에게 평안이 없는가? 우상처럼 섬기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각종 우상에 빠져 “그것이 내게 힘을 주었다.”고 하면서 도취와 착각에 빠져 있지만 진짜 살아갈 힘은 우상이 주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다. 결국 걱정과 근심과 불안을 이기게 하는 내면의 참된 안식은 우상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릴 때 얻는다.
서양 사상의 두 원류는 그리스가 뿌리인 헬레니즘과 유대교가 뿌리인 헤브라이즘이다. 헤브라이즘을 통해 주어진 가장 복된 개념 중의 하나가 안식일 개념이다. 안식일은 빈둥거리며 노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자기 존재감을 회복하는 날’이다. 세상에서 뒤처져 존재감이 없어 보여도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이 땅에 우리를 보내셨다는 사실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소명이다. 사람은 어느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는 독특한 존재다. 함부로 살면서 메시지를 잃어버린 메신저가 되지 말라.
자기 존재감을 회복하고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날이 안식일이다. 자기 존재감을 회복한 사람이 남도 존중해준다. 나처럼 그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진리는 그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인정할 때 주어진다. 결국 안식일은 마음에 각인된 편견, 파당, 차별 의식을 깨고 선교 마인드를 새롭게 하는 날이다. 빈부, 학력, 출신지, 인종, 종교, 문화의 차이로 차별의 빌미를 삼지 않고 선교 마인드를 지속적으로 품을 때 참된 안식과 평안을 체험할 수 있다.<2018.4.28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