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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신갑주(1) (에베소서 6장 14-17절)
작성자 미션퍼블릭 등록일 2018-05-31
에베소서 6장 14-17절
14.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나님의 전신갑주(1) (에베소서 6장 14-17절)
 1. 진리의 허리띠
   
  귀신은 강하고 끈질긴 존재지만 결코 성도를 이길 수 없다. 성도의 대장 되신 예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미 귀신을 이기셨기 때문이다. 귀신은 종이 호랑이이고 늙은 사기꾼에 불과하다. 종이 호랑이를 보고 놀라지 않고 늙은 사기꾼에게 속지만 않으면 귀신은 예수님의 진리로 굳게 무장한 성도를 어떻게 할 수 없다. 사실상 예수님의 능력은 성도보다 귀신이 더 잘 안다.
   
  예전에 한 성도의 말에 의하면 그가 살았던 시골 마을에는 ‘경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죽기 전에는 거의 다 교회에 나왔다. “왜 평생 경을 읽었으면서 교회를 나오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귀신들은 어떤 사람이 죽어서 그로부터 나오면 다시 다른 사람에게 들어가야 합니다. 그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대상이 ‘나온 그 죽은 사람의 자녀’입니다. 제가 평생 경을 읽었지만 제 자녀에게만은 귀신이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기에 귀신으로부터 자식을 보호하려고 죽을 때가 되면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은 신 내림을 받은 무속인이 귀신을 쫓아준다고 하고 점을 쳐준다지만 그것이 행복하지 않은 삶임을 그들 자신도 알고 또한 예수님이 얼마나 놀라운 분인가 하는 것을 그들도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을 굳게 붙잡으면 귀신은 들어올 수도 없고 그 영향력도 차단되고 이미 들어왔던 귀신도 맥을 못 추고 나간다.
   
  2. 의의 호심경
   
  성도에게는 두 가지 호심경이 있다. 하나는 ‘의로움’이다. 죄로부터 자신을 지키라. 독함, 불순종, 교만, 불신 등을 그냥 두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은 없다. 완벽하게 살지 못해도 늘 의를 따라 살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에베소서 4장 26절에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 말은 “절대 분노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분노를 다스리라.”는 말이다.
   
  의로운 사람이 되라는 말은 완전한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고 순간적인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 성경이 말하는 완전함은 ‘행위의 완전함’이 아니라 ‘동기와 의지의 완전함’을 뜻한다. 즉 말씀에 순종하려는 삶을 뜻한다. 때로 분노도 할 수 있지만 그때 즉시 자신을 낮추고 말씀에 의지하여 그 분노를 다스리려는 것이 성경적인 완전함이다. 바로 그때 귀신의 공격에서 영혼을 지킬 수 있다.
   
  또 하나의 의의 호심경은 ‘의로운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다. 귀신은 대개 교회의 성물에 거부반응을 보인다. 교회의 성물도 귀신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힘이 있다면 하물며 교회는 얼마나 큰 힘이 있겠는가? 물론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의 모임이다. 모이기를 힘쓰고 서로 격려해주고 나누는 삶을 살라. 혼자 있으면 귀신에 당하기 쉽지만 같이 있으면 귀신이 틈타지 못하기에 모이기를 힘쓰고 더 나아가 참여하고 참여하는 것보다 더 나아가 적극 협력하고 적극 협력하는 것보다 더 나아가 몸과 마음을 드려 헌신하면 귀신은 꼼짝 못한다.
   
  3. 평안의 복음의 신
   
  귀신이 가장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 왔다 갔다 하는 변덕스런 마음이다. 변덕스럽고 바다물결 같이 계속 흔들리면 귀신이 틈타기 쉽기에 생각을 잘 지키라. 기독교를 대적하는 가장 견고한 진 중의 하나는 공산주의나 인본주의나 이슬람교가 아니라. ‘생각의 진’이다(고후 10:4-5). 귀신은 생각 속에 찾아와 “키가 작다. 못났다. 더럽다. 지금 배우자와 계속 살면 행복할 수 없다.”고 속삭여 열등감과 죄책감을 주고 행복을 포기하게 만들 때 그런 소리에 넘어가지 말라.
   
  미국의 한 남자가 아내가 너무 싫어 이혼한 후 결혼상담소에 가서 자기 이상형을 찾아달라고 했다. 그때 결혼상담소에서 컴퓨터에 입력된 3만 명의 여성 중 한 여성을 골라주었는데 사진을 보니까 얼마 전에 이혼한 자기 부인이었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를 바꾸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행복하게 살려면 배우자를 바꾸기 전에 자기를 바꾸라. 자기를 바꾸지 않으면 배우자를 여러 사람 바꾸어도 소용이 없다.
   
  지금 만나는 사람을 제쳐두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 처음에는 신날 것 같지만 함께 지내면 얼마 지내지 못할 때도 많다. “지금 상태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라. 어떤 사람은 말한다. “목사님은 제 남편을 몰라서 그래요.” 물론 잘 모르지만 그 상황에서도 행복을 찾는 길은 있다. 행복한 가정이란 문제가 없는 가정이 아니라 문제를 극복하는 가정이다. “지금 상태로 너는 행복할 수 없다.”는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말라. 이 세상에 전혀 행복할 수 없는 성도는 한 사람도 없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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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청지기 (2018-05-31 오후 12:41:00) 댓글쓰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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