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규의 온라인새벽기도를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간새벽기도
주일설교말씀
칼럼모음
선교이야기
사랑방소식
네트영어
새로 등록된 글
새로 등록된 댓글
2018년 7월호
작성자 미션퍼블릭 등록일 2018-06-15
에베소서 4-6장
7/02(월) 에베소서(28) 성숙한 믿음을 가지라(2) (엡 4:13-16)
7/03(화) 에베소서(29)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17-24)
7/04(수) 에베소서(30) 새 사람의 4대 행동양식(1) (엡 4:25-30)
7/05(목) 에베소서(31) 새 사람의 4대 행동양식(2) (엡 4:25-30)
7/06(금) 에베소서(32) 용서는 영혼의 치료약(1) (엡 4:31-32)
7/07(토) 에베소서(33) 용서는 영혼의 치료약(2) (엡 4:31-32)

7/09(월) 에베소서(34)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 (엡 5:1-7)
7/10(화) 에베소서(35) 빛의 3대 열매 (엡 5:8-14)
7/11(수) 에베소서(36) 복된 성도가 되는 길(1) (엡 5:15-21)
7/12(목) 에베소서(37) 복된 성도가 되는 길(2) (엡 5:15-21)
7/13(금) 에베소서(38)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1) (엡 5:22-30)
7/14(토) 에베소서(39)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2) (엡 5:22-30)

7/16(월) 에베소서(40) 복된 부부가 되는 길(1) (엡 5:31-33)
7/17(화) 에베소서(41) 복된 부부가 되는 길(2) (엡 5:31-33)
7/18(수) 에베소서(42) 잘되고 장수하는 길(1) (엡 6:1-3)
7/19(목) 에베소서(43) 잘되고 장수하는 길(2) (엡 6:1-3)
7/20(금) 에베소서(44) 부모가 가져야 할 마음(1) (엡 6:4)
7/21(토) 에베소서(45) 부모가 가져야 할 마음(2) (엡 6:4)

7/23(월) 에베소서(46) 성도의 직업윤리 (엡 6:5-9)
7/24(화) 에베소서(47)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길(1) (엡 6:10-13)
7/25(수) 에베소서(48)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길(2) (엡 6:10-13)
7/26(목) 에베소서(49) 하나님의 전신갑주(1) (엡 6:14-17)
7/27(금) 에베소서(50) 하나님의 전신갑주(2) (엡 6:14-17)
7/28(토) 에베소서(51) 영향력이 있는 기도(1) (엡 6:18-20)

7/30(월) 에베소서(52) 영향력이 있는 기도(2) (엡 6:18-20)
7/31(화) 에베소서(53) 변함없는 사랑의 축복 (엡 6:21-24)
마중물 : 성공적인 삶을 사는 길
 성공적인 삶을 사는 길
   
  < 믿음이 최대 성공 조건 >
   
  일전에 한 택배기사가 엄청나게 서둘렀다. 10미터 앞의 정차 공간을 놔두고도 아파트 입구 앞의 찻길을 막고 차를 댔다. 필자는 그 차 조금 뒤에 주차하고 집으로 올라가다가 그를 1층에서 만났다. 그는 층수 누르는 버튼을 몸으로 막은 채 누구와 통화하면서 3번이나 닫히는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가 올라가지 못하게 했다. 그때 전화 상대가 왜 이렇게 짜증내느냐고 하자 그가 소리쳤다. “내가 뭘 짜증을 내? 이 개OO야!” 그러면서 무섭게 한동안 욕을 해댔다. 그 모습을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안타까웠다. 돈에 지는 삶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돈 있는 사람이 돈을 잘못 쓰는 것도 돈에 지는 것이지만 돈을 벌겠다고 너무 서두르고 짜증내고 분노하는 것도 돈에 지는 것이다. 이기는 삶이란 평화의 세상을 여는 꿈을 품고 열심히 벌고 열심히 나누는 삶이다. 돈을 나눌 힘이 없으면 다른 것을 나누면 된다. 줄 수 있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사랑과 우정에 굶주린 사람도 많다.
   
  돈 자체를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해 이룸으로 기쁨과 평안과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라. 돈을 사랑하면 참된 자유를 잃는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도 많다. 돈에 집착하면 영혼이 더 목말라진다. 집착해서 어떤 것을 붙드는 것은 사실상 그것에 붙들린 것이다. 집착의 원인은 대개 결핍감이다. 결핍감이 심하면 뭔가 채우려다가 사람과 단절된다. 그러면 고독감이 생기면서 더 소유에 집착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돈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잘 벌고 잘 쓰는 능력과 지혜를 구하라. 그것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예배다. 예배를 멀리하고 열심히 하는 일은 집착이 된다. 어떤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예배하면서 하면 그 일은 집착이 되지 않는다.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앞세우지 말고 어떤 일도 예배보다 앞세우지 말라. 하나님이 빠진 상태에서는 얻는 것도 잃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성공은 사실상 실패다. 하나님이 있는 성공이 참된 성공이다.
   
  세상은 성도를 통해 하나님을 본다. 일반인은 성도가 실패하면 하나님도 실패한 것처럼 볼 수 있고 성도가 꾀죄죄하게 살면 하나님도 꾀죄죄하게 볼 수 있다. 얼굴, 복장, 마음을 잘 관리해서 하나님을 멋지게 나타내려고 하라. 적당히 생존하는 것으로 만족하지도 말고 거룩한 일류 인생을 꿈꾸라. 결과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해도 과정에서는 성공하라.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이미 성공한 사람이다.
   
  < 생각과 마음을 키우라 >

   
  믿음은 어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믿음은 최대의 생존 조건이고 성공 조건이다.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믿음을 바탕으로 생각과 마음도 성공적으로 만들라.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다.”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생각과 마음을 계속 키워야 성공과 행복 가능성도 커진다.
   
  미국 남북전쟁 때 링컨 대통령이 참모총장의 의견을 제쳐놓고 자기 뜻대로 일을 처리했다. 그 일이 실패한 후 링컨이 비서를 통해 사과문을 보내자 사과문을 읽은 참모총장이 소리쳤다. “멍청한 자식!” 비서가 돌아오자 대통령이 물었다. “뭐라 합니까?” 비서가 말했다. “‘멍청한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링컨은 “참모총장이 사람 하나는 제대로 보네.”라고 하면서 크게 웃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기에 심한 비난도 여유 있게 웃어넘긴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성경말씀은 모든 사람이 ‘멍청한 자식’이라는 말씀이다. 그 사실을 겸손히 인정하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사람은 자신의 멍청함이 드러날까 봐 소심해지고 말 한 마디에 상처를 받고 외적인 조건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지는 것이다. 불행감은 외적인 환경보다 소심한 생각과 마음 때문에 생길 때가 많고 인간관계의 문제도 생각이나 성격 차이보다 건강하지 못한 생각과 마음 때문에 생길 때가 많다.
   
  많은 갈등이 “나는 똑똑하고 남은 멍청하다.”라고 생각하면서 생긴다. 내 멍청함을 인정하고 “나는 부족하고 잘못이 많기에 하나님의 용서와 도우심이 필요하다.”라고 인정해야 갈등을 잘 극복할 수 있다. ‘이해력’보다 ‘인정력’이 중요하다. 내 이해력을 너무 믿지 말라. 내 이해력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내 이해력으로 남을 판단하기보다 그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날 유명한 심리학자인 폴 투르니에가 임종을 맞은 친구를 찾았다. 친구가 힘들게 말했다. “폴!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 그러면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너무 힘들어하자 투르니에가 조용히 말했다.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되네. 중요한 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인정하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친구가 행복한 미소를 띠면서 “맞아. 인정하는 것이지.”라는 말과 함께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사람의 다름도 인정하라. 이해되지 않아도 인정할 것을 인정할 때 성공적인 삶의 가능성이 커진다. 다 이해해야 인정하겠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사람마다, 지역마다, 나라마다, 문화마다 차이가 크다. 미국은 한 나라지만 각 주마다 법이 다르다. 그중에는 이해가 안 되는 법도 많다.
   
  알래스카 주에서는 곰을 총으로 쏴도 되지만 사진 찍으려고 잠자는 곰을 깨우면 불법이다. 애리조나 주에서는 선인장을 자르면 징역 25년 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아칸소 주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한 달에 한 번 이상 때리면 불법이다. 미시간 주에서는 아내가 남편의 허락 없이 머리카락을 자르면 불법이다. 몬태나 주에서는 처녀가 혼자 낚시하면 불법이고 뉴저지 주에서는 경찰에게 인상을 쓰면 불법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틀린 음정으로 노래하면 불법이고 오하이오 주에서는 여자가 한집에 다섯 명 이상 살면 불법이다. 오클라호마 주에서는 남의 햄버거를 베어 먹으면 불법이고 워싱턴 주에서는 부모가 부자인 것처럼 허풍을 떨면 불법이다.
   
  사람마다, 문화마다 차이가 많다. 그것을 가지고 “왜 그럴까?” 하고 다 이해하겠다고 하면 불신이 삶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냥 인정하라. 이해도 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정이다. 사람은 인정받을 때 행복을 느낀다. 딸이 “나는 커서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할래요.”라고 할 때 아빠는 행복을 느낀다. 자녀가 공부를 못해도 “네가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라고 인정할 때 자녀는 행복해진다. 그렇게 행복을 배운 자녀가 나중에 행복하게 잘 산다.
   
  <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말라 >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사하신 내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신다. 과거에 내가 저지른 어떤 죄보다 하나님의 은혜는 더 크다. 성 프랜시스는 하나님을 ‘지우개를 들고 계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했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삭제하셨다는 암시다. 그런데 정작 사람이 사람의 죄와 허물을 지우는 일에 인색하다. 죄책감이 심한 것을 영성으로 오해하지 말라. 지나친 죄책감은 영혼의 암과 같다. 그 암이 커지면 인생 전체를 죽일 수 있다.
   
  지나친 죄책감은 하나님의 은혜보다 죄를 크게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죄도 덮을 수 있다. 진심으로 회개했다면 더 이상 어떤 죄로 인해 신음하지 말라. 성도는 죄가 없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완벽하게 살려는 모습이 지나쳐 안달하면 하나님이 기쁘게 생각하실 것 같지만 사실상 그것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없다.
   
  오래전 교회 학생부 수련회 때 필자가 대략 다음과 같은 설교를 했다. “남을 생각하며 살라. 친구나 부모의 입장을 조금 더 생각하라. 사람은 나보다 남을 조금 더 생각하면서부터 철이 들었다고 한다. 철든 성도의 꿈을 가지라. 부모님께 얻어먹을 생각만 하지 말고 사드릴 생각을 하라. 받으려고 애쓰면 구걸하는 인생이 되지만 주려고 애쓰면 구제하는 인생이 된다.” 그 말씀을 듣고 수련회에 참석했던 필자의 어린 둘째 딸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설교 후에 전도사와 학생들이 저녁 식사 준비를 할 때 필자가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교회로 돌아가는 운전 길에 졸지 않도록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서였다. 그 모습이 딸에게는 아빠가 힘들어하는 모습으로 비친 것 같았다. 그때부터 언니들과 어울려 놀지도 않고 필자의 품에 안기더니 여러 가지 사랑스러운 말을 했다. 또한 필자의 손과 발도 주물러주면서 잘 섬겨주었다.
   
  그때 딸이 갑자기 옆에 있던 아내에게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게 말했다. “엄마! 제가 왜 사는지 모르겠어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자신이 아빠를 너무 생각하지 않고 까불며 지낸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지나쳐서 그런 말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그렇게 센티멘털하게 되고 까부는 행동이 없어지고 너무 진지하게 나오니까 “이제야 얘가 철이 들었구나.”라고 하면서 대견한 생각이 들기보다 오히려 염려가 되었다. 차라리 평소처럼 밝은 표정으로 까불면서 지내는 것이 훨씬 좋았다.
   
  그때 필자는 “하나님이 성도가 어떻게 행동하기를 원하실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다. 성도가 “내가 이제까지 하나님을 위해 살지 못했구나.”라고 자책하며 더욱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 살 것을 다짐하는 것은 좋다. 문제는 그런 자책이 너무 지나쳐서 “내가 이렇게 엉터리로 살았다니. 나는 벌레보다 못해.”라고 하면서 웃음도 잃고 완벽하게 살지 못한 자신을 자학하며 사는 것이다. 그 모습을 하나님은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밝은 웃음을 잃을 정도로 너무 진지해지지 말라. 지금 형편과 믿음으로 제대로 헌신하지 못하는 자기를 너무 무가치하게 보지도 말라. 헌신에도 때가 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도 매번 옥합을 깨뜨린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헌신하라고 했지 헐벗게 살라고 하지 않았다. 말씀대로 살려는 모습은 좋지만 말씀대로 완벽하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너무 들볶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워 밝게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
   
  예전에 A 선교사 부부를 만난 후 그의 숙소까지 차를 태워주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서 조금 더 대화하고 싶어 근처 카페에 들렀다. 카페에서 오래된 감미로운 팝송이 흘러나왔다. A 선교사가 20년 만에 이런 곳에 처음 왔다고 좋아하면서 음악을 음미하며 분위기에 젖어 말했다. “믿는 사람에게도 이런 음악과 분위기가 필요해.”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의 아내가 무드를 깨며 유머가 섞인 어조로 말했다. “이제 갑시다.” 결국 카페에서 15분 만에 나왔다.
   
  필자도 믿음이 뜨거울 때는 무드를 깨는 선수였다. 그러나 그날 헌신적인 선교사가 일반 노래를 듣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깨달음을 얻고 필자도 일반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또한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근엄한 목사’의 모습보다는 ‘보통 아빠’의 모습을 보이자고 다짐했다. 즐겁고 정겨운 무드를 잘 깨는 모습이 영성 있는 모습은 아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꼴 보기 싫어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즐겁게 뛰놀 줄 아는 건강하고 정겨운 심령이 되라.
   
  < 마음 관리를 잘하라 >
   
  죄나 형식에 너무 매이지 말고 과거의 상처에도 매이지 말라. 기독교는 과거에 집착하는 종교가 아닌 미래를 지향하는 종교다. 과거의 좋은 전통은 살리고 계승하되 과거의 좋지 못한 기억들은 과감히 잊으라. 교회에 열심히 나갔다가 안 나가는 사람 중에는 과거에 교회생활을 할 때 큰 상처를 경험했던 사람이 많다. 그 사연을 들어보면 대개 누군가가 자기를 실족시켰다는 것이 요지다. 그런 상처는 하루 빨리 잊는 것이 좋다. 누가 실족시켜도 내가 실족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라. 실족을 너무 잘하는 것도 문제다.
   
  어느 날 한 교인이 목사에게 와서 따졌다. “왜 사모님이 새벽에 기도할 때 나보고 교회를 나가라고 기도합니까?” 그 말을 듣고 목사가 사모에게 정말 그렇게 기도했느냐고 묻자 사모는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목사가 “그래도 새벽에 어떻게 기도했는지 자세히 생각해 보라.”고 했다. 자세히 생각해보자 그 교회에 해외 취업을 간절히 원하는 성도가 있는데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그를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그가 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 그 기도를 듣고 오해한 것이다.
   
  가끔 보면 실족하려고 5분 대기조처럼 대기하는 사람이 있다. 때로는 설교를 듣고 실족한다. 물론 설교가 기분을 언짢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설교를 들을 때 기분 좋게 되지 않아도 좋다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실족 가능성이 줄어든다. 왜 어떤 말씀이 남에게는 은혜롭게 들리는데 내게는 민감하게 들리는가? 그 말씀과 관련된 과거의 상처 때문인 경우가 많다. 상처를 잘 승화시키라. 과거에 아무리 힘든 상처를 겪었어도 여전히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자녀임을 잊지 말라.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마음 관리가 중요하다. 자기중심적인 마음은 확실한 실패 요소다. 반면에 말씀중심적인 마음은 확실한 성공 요소다. 말씀은 죄를 책망하고 내 변화를 도전하지만 세상은 죄를 지어도 “오냐? 오냐?”하고 그 죄를 합리화시키려고 한다. 많은 현대 철학, 교육학, 상담학, 심리학 등이 죄를 합리화하는데 동원되고 있다. 그런 풍조 때문에 많은 경우 남 탓만 하고 도덕적 해이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예전에 신용 불량자가 많아지니까 세상 여론은 “왜 정부에서 돈을 쉽게 빌려주는 카드 정책을 쓰느냐?”고 질타했다. 안 갚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빌려준 것이 나쁜 것처럼 된 것이다. 또한 세상을 비관한 장애인이 지하철에 불을 질러 큰 인명 피해를 내자 어떤 신문은 “왜 장애인을 푸대접해서 그런 일을 초래했느냐?”고 했다. 장애인을 생각해주는 말 같지만 오히려 모욕하는 말이다. 대부분의 장애인은 장애가 있어도 책임적으로 열심히 잘 산다.
   
  사회의 구조적인 악을 내세워 개인의 죄를 합리화하면 무책임과 도덕적 해이를 낳는다. 죄를 지었으면 야단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때 야단맞았다고 자존심이 상하고 불쾌하게 여기면 영혼까지 망한다. 말씀을 통해 “내가 이런 죄인이었구나. 내게 이런 이기심이 있었구나.”라고 하는 애통한 심령을 가져야 참된 속죄와 치유가 나타난다. 불행이란 고통을 ‘실족과 상처의 기회’로 삼는 것이고 행복이란 고통을 ‘회개와 변화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실족하게 하는 것도 죄지만 잘 실족하는 것도 죄다. 실족하게 하는 것은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죄’이고 잘 실족하는 것은 ‘남 탓에 기반을 둔 부정적인 죄’다. 가끔 끔찍한 죄를 저지르고 환경 탓이나 사회 탓을 하는 경우가 있다. 무책임한 모습이다. 배고픈 환경은 도둑도 만들지만 성인도 만든다. 환경 탓과 사회 탓과 남 탓을 최대한 삼가라.
   
  어떤 사람이 죽어서 지옥에 갔는데 거기서도 탓했다.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실족해서 여기에 왔습니다.” 불행한 변명이다. 내 영혼을 사탄에게 판 것은 내 탓이지 남 탓이 아니다. 내 불행을 가족 탓으로도 돌리지 말라. 가족은 사랑과 격려의 대상이지 탓할 대상이 아니다. 힘든 환경에서도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의 기회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마음을 성공적으로 관리하고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때를 기다리면 된다.
   
  < 행동의 씨를 뿌리라 >
   
  왜 성공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내 성공을 통해 무엇을 이뤄야 하는가? 하나님의 뜻과 의를 이뤄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되고 내 성공이 하나님의 사랑의 도구가 되게 하라. 특히 작은 자, 비천한 자, 연약한 자를 긍휼히 여기고 존중하라. 작은 자를 살피면 하나님이 그 모습을 기뻐하신다. 외롭게 혼자 지내는 사람이 교만하거나 불의하지 않고 성실하다면 그와 함께 있어주려고 하라. 그 마음은 성령님이 주신 마음이다.
   
  힘없는 사람과 친구가 되어주면 세상적인 보상은 없어도 하나님이 보상해주신다. 세상에서 크려면 큰 자에게 아부해야 하지만 영적으로 크려면 작은 자에게 친절해야 한다. 하나님은 작은 자를 향한 마음과 사랑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행한 대로 받고 심은 대로 거둔다. 화려한 말의 씨보다 은밀한 행동의 씨를 뿌리라. 작은 자를 향해 베푸는 친절과 사랑은 자신은 기억하거나 의식하지 못해도 어디선가 축복나무가 되어 쑥쑥 자라고 있을 것이다.
   
  풍성한 축복과 기적을 체험하려면 화려한 무대나 기적만 찾지 말고 초라한 곳이나 소외된 곳을 잘 살피라. 화려한 것만 바라보면 오히려 영적으로 초라해지고 초라한 것을 살피면 오히려 영적으로 화려해진다. 참된 축복을 원하면 큰 교회만 찾지 말고 내 손길이 필요한 작은 교회도 찾아 등록하고 시골 및 선교지 교회의 필요에도 관심을 기울이라. 무엇이 기적인가? 최대 기적은 ‘나만 위해 살던 사람이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다.
   
  혼자 살기에 급급하면 급급하게 살 만한 축복만 받지만 거룩한 꿈과 비전에 헌신하면 넉넉하게 살 수 있는 축복을 받는다. 지금 희생하는 삶을 새롭게 다짐하라. 희생이 없는 삶에 축복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눈앞의 것에 연연하는 애벌레처럼 살면 평생 기는 삶을 살지만 꽃가루를 옮겨주는 나비처럼 살면 하나님께서 예쁜 날개를 주셔서 창공을 날게 하신다. 기적을 밖에서 찾아다니지 말고 먼저 십자가의 기적이 내게서 나타나게 하라.
   
  헌신하는 내 손길이 기적의 씨앗이다. 내가 손을 움직이지 않고 말만 하고 생각만 하면 변화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지만 내가 손을 움직이면 일상의 많은 것들이 변화되고 누군가의 절실한 필요도 채워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려고 하면 성공적인 인생이 펼쳐지지만 사명을 외면하고 마술적인 기적과 세상적인 성공만 추구하면 오히려 패배적인 인생이 된다. 하나님은 기적을 찾아다닐 때 기적을 주지 않고 일상에서 희생적인 삶을 실천할 때 진짜 기적을 주신다.
   
  2018년 6월 14일 (월새기 영어판 D-444)
  이한규 (요삼일육선교회 대표/ 월간새벽기도 주필)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파일1 다운로드 파일2 등록된 파일 없음
번호 게시판 제목 작성자 조회수 등록일
10802 온라인새벽기도 감사를 체질화시키는 길 (시편 50편 22-23절) 요삼일육선교회 12 2024.04.25
10801 이달의 월새기 기적을 만드는 믿음 (마가복음 5장 35-43절) 요삼일육선교회 13 2024.04.25
10800 온라인새벽기도 감사해야 은혜가 간직된다 (시편 50편 22-23절) 요삼일육선교회 41 2024.04.24
10799 이달의 월새기 치유를 일으키는 요소 (마가복음 5장 21-34절) 요삼일육선교회 26 2024.04.24
10798 공지사항 (알림) 월간새벽기도 2024년 5월호 발행 요삼일육선교회 23 2024.04.23
10797 온라인새벽기도 복을 원하면 감사하라 (시편 50편 14-15절) 요삼일육선교회 50 2024.04.23
10796 이달의 월새기 예수님을 만나고 전파하라(2) (마가복음 5장 1-20절) 요삼일육선교회 30 2024.04.23
10795 주일설교 성도의 자랑거리 (예레미야 9장 17-26절) 요삼일육선교회 45 2024.04.22
10794 온라인새벽기도 성도의 자랑거리 (예레미야 9장 23-26절) 요삼일육선교회 62 2024.04.22
10793 이달의 월새기 예수님을 만나고 전파하라(1) (마가복음 5장 1-20절) 요삼일육선교회 53 2024.04.22
10792 이달의 월새기 삶의 광풍을 잠재우는 길 (마가복음 4장 35-41절) 요삼일육선교회 73 2024.04.20
10791 온라인새벽기도 감사해야 은혜가 간직된다 (시편 50편 16-23절) 요삼일육선교회 85 2024.04.19
10790 이달의 월새기 복과 행복을 나누라 (마가복음 4장 30-34절) 요삼일육선교회 62 2024.04.19
10789 담안편지 담안편지(899) - 감사합니다 하나님! 요삼일육선교회 40 2024.04.19
10788 이달의 월새기 열매 맺는 믿음의 원리 (마가복음 4장 26-29절) 요삼일육선교회 101 2024.04.18
10787 온라인새벽기도 범사에 감사하라 (시편 50편 14-15절) 요삼일육선교회 111 2024.04.18
10786 온라인새벽기도 부자를 부러워하지 말라 (시편 49편 6-15절) 요삼일육선교회 134 2024.04.17
10785 이달의 월새기 영적인 부를 얻는 길 (마가복음 4장 21-25절) 요삼일육선교회 108 2024.04.17
10784 시/그림 〈월간새벽기도 24년 5월 16일자 본문〉 중에서 발췌 요삼일육선교회 67 2024.04.17
10783 선교소식 월간새벽기도 24년 5월호 선교소식 : <월간새벽기도> 기도 편지 요삼일육선교회 67 2024.04.17
10782 월새기 발간 모음 2024년 5월호 요삼일육선교회 59 2024.04.17
10781 이달의 월새기 네 종류의 마음 밭 (마가복음 4장 10-20절) 요삼일육선교회 121 2024.04.16
10780 온라인새벽기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 (시편 48편 8-14절) 요삼일육선교회 132 2024.04.16
10779 대표기도 주일예배 대표기도 (전정복집사) 요삼일육선교회 94 2024.04.15
10778 주일설교 십자가를 지는 삶의 복 (마가복음 10장 28-31절) 요삼일육선교회 535 2024.04.15
10777 온라인새벽기도 십자가를 지는 삶의 복 (마가복음 10장 28-31절) 요삼일육선교회 537 2024.04.15
10776 이달의 월새기 백 배의 복을 얻는 길(2) (마가복음 4장 1-9절) 요삼일육선교회 103 2024.04.15
10775 이달의 월새기 백 배의 복을 얻는 길(1) (마가복음 4장 1-9절) 요삼일육선교회 118 2024.04.13
10774 온라인새벽기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 (시편 47편 1-9절) 요삼일육선교회 126 2024.04.12
10773 이달의 월새기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2) (마가복음 3장 31-35절) 요삼일육선교회 112 2024.04.12

upd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