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부부가 되는 길(2) (에베소서 5장 31-33절)
3. 둘이 한 육체가 되라
본문 31절 마지막 부분을 보라.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말씀은 육체적인 결합을 의미한다. 형이상학적인 플라토닉 사랑만으로는 부부가 온전히 하나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정신적인 나눔만으로는 온전한 부부생활이 가능하지 않고 육체적인 연합도 필요함을 강조하려고 “그 둘이 한 육체가 되라.”는 실제적인 명령을 주셨다.
기독교는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키고 가정과 교회를 분리시키는 플라톤의 이원론적인 사상을 따르지 않고 전인적인 인간상을 추구한다. 그래서 ‘육체의 하나 됨’도 대단히 중시한다. 육체의 하나 됨을 거룩하지 않게 여기고 소홀히 하는 것은 행복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은 이혼 사유로 드는 것이 ‘성격(性格) 차이’지만 깊이 들어가면 성격에서 ‘격’자 하나를 뺀 ‘성(性) 차이’가 더 큰 이혼 사유인 경우가 많다.
성격 차이가 있으면 보완 가능성이 있고 그 차이가 보완되면 부부생활은 더 풍성해진다. 내게 맞추라는 요구보다 내가 맞춰주려는 마음을 키우면 차이를 승화시킬 수 있다. 사실상 이혼의 깊은 이유는 ‘성격 문제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기보다는 ‘성 문제에 대한 불만 때문’인 경우가 많다. 부부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결혼이란 범주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배우자와 함께 성적인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다.
고린도전서 7장 4절을 보면 부부간의 성 윤리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부부는 성생활에서 자기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말고 배우자가 자기 몸을 주장하도록 해야 한다. 즉 자신에게 필요가 느껴지지 않아도 상대가 필요를 느끼면 그 필요를 힘써 채워주어야 한다.
부부가 자기의 필요나 욕구를 넘어서 상대방 중심의 성생활을 하려는 태도는 아가페 사랑의 핵심적인 요소다. 부부는 서로의 성적인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인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 대상으로부터 만족을 얻지 못하면 시선을 밖으로 돌리면서 부부관계가 어려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한 육체가 되라.”는 명령은 세속적이거나 부끄러운 명령이 아니라 거룩한 명령이다.<2018.7.17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