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하신 하나님(1) (신명기 4장 15-31절)
세상은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이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복되다.”고 말씀했고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다.”고 했다(고후 5:7). 태양을 보면 태양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구가 움직이는 것이다. 그처럼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진리인 경우도 많기에 꼭 눈으로 봐야 믿겠다고 하지 말라.
넘치는 요단 강물을 보면 들어서기 힘들지만 제사장들이 말씀에 의지해 믿음으로 발을 강물에 들여놓자 요단강이 갈라졌다(수 3장). 믿음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드리는 모험이다. 보이는 것을 포기하고 보이지 않는 가치에 헌신하면 삶이 불편해지고 불안해질 것 같지만 이기주의의 껍질을 깨는 삶이 궁극적으로 잘못되는 법은 없다. 거룩한 뜻을 위해 자기 것을 포기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
선교는 이기주의의 껍질을 깨는 최적의 훈련과목이다. 왜 교회가 선교에 힘써야 하는가? 교인에게 이기주의의 껍질을 깨고 헌신하라면서 교회 자신이 이기주의의 껍질을 깨지 못하면 복된 교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교회는 교회건축으로 재정이 부족하자 몇 년간 선교후원을 중단했다. 그런 모습은 복된 모습이 아니다. 한때 교회건축은 급속한 성장을 이끌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급속한 추락을 이끌고 있다. 이기주의는 비참한 결말을 예고한다.
내 필요에는 둔감해져도 선교사의 필요에는 민감해지라. 자기를 버리고 이기주의의 틀을 깰 수 있어야 참된 축복을 받는다. 손을 쥐는 삶보다 손을 펴는 삶이 복된 삶이다. 쥐기를 좋아하면 인생도 쥐어 짜이지만 펴기를 좋아하면 인생도 펴진다. 특히 선교와 구제를 위해 힘써 손을 펴면 하나님은 신기하게 내 문제도 해결해주시고 내 필요도 채워주신다.
믿음은 ’의문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의문이 있어도 기쁘게 순종하는 것‘이고 ‘불확실한 것’을 위해 ‘확실한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눈에 보이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면 진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하고 의문이 있어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2018.8.18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