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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속한 자 (요한일서 5장 13-21절)
작성자 요삼일육선교회 등록일 2018-08-20
요한일서 5장 13-21절
13.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14.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16.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17.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18.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19.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20.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21.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하나님께 속한 자 (요한일서 5장 13-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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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술과 요가를 주의하라 >
   
  요새 교회 어린이나 학생부 행사에서 마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술은 성경도 금하고 있고 타락한 인간 본성을 자극해 우상숭배로 이끌 수 있기에 전도 수단으로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마술은 손재주나 도구를 통한 눈속임으로 감탄과 재미를 유발하기에 복음 및 교회와는 본질적으로 안 맞는 것이다. 전도한다고 고대 이방 신전처럼 교회에 창기를 둘 수 없듯이 전도 수단이 비성경적이고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이면 안 된다. 전도 목적이 거짓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마술이 주는 황홀한 자극과 충격에 익숙해지면 복음과 믿음과 말씀이 단순하게 느껴지고 거짓 환상과 체험을 추구하고 싶은 심리가 생기면서 영혼과 교회가 파괴될 수 있다. 목적이 바르면 수단도 발라야 한다. 성경은 인위적이고 화려하고 매력적인 현상보다 어리석게 보이는 십자가를 통한 복음 전파를 권고한다. 오락적인 무대 마술까지 배척할 필요는 없지만 오락은 오락 수준에 머물게 하고 교회 안으로는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요가도 마찬가지다. 요가는 단순한 운동보다 자기 인식, 수련, 완성, 합일을 목적으로 마음의 평정을 찾는 수행법으로서 힌두교나 불교의 뿌리다. 요가는 해탈을 위한 집중과 명상을 중시하기에 단순한 운동이 아닌 철학과 종교로서 인도인의 정신생활과 종교의 뿌리이고 신체나 정신 훈련을 빙자한 범신론적인 영성 훈련이다. 왜 영성 훈련 세미나를 주의해야 하는가? 이교적인 영성 훈련 방법으로 기독교를 변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요가는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한 단순한 운동이나 스트레칭이 아닌 몸으로 하는 힌두교 종교 의식과 선교 수단이다. 교인이 운동 삼아 요가를 하고 명상과 관상에 빠지면 종교적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고 힌두교 영성에 젖어들기 쉽다. 요가는 종교 수행의 기본으로서 영성을 높여준다고 여기기에 기독교 영성을 주장하는 사람도 성령충만을 내세우며 무심결에 요가의 원리를 따라 신인합일의 이교적인 범신론에 빠질 위험성도 있다.
   
  요가는 훈련, 자제, 고행, 포기, 집중, 명상, 삼매 등의 정신 수행으로 해탈을 추구한다. 그러나 영혼이 이탈된 환각 상태인 엑스터시(ecstasy)는 절대 허용하지 않고 영혼의 이탈이 없이 현실에서 자유와 해탈을 체험하는 엔스터시(enstasy)를 추구한다. 요가의 최종 목표는 신인합일이다. 특히 힌두교 신과의 합일이 목표다. 결국 요가는 힌두교 시바신에게 헌신하는 힌두교 수행법이다. 왜 기독교는 뉴에이지 운동을 경계하는가? 그 운동의 범신론적인 신비주의가 요가의 신인합일 속성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요가에서는 자아가 물질세계를 초월해 신의 경지에 들어가는 해탈이란 구원을 자력으로 이룰 수 있다고 여긴다. 예수님이 공생애 전에 한때 요가 수행자였다는 주장은 요가의 우수성을 과시하려는 거짓이다. 요가 사상은 종교이자 기독교를 허물려는 인본적인 뉴에이지 운동의 뿌리로서 운동법, 호흡법, 명상법으로 잠재된 자아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인간이 신이 된다고 가르친다. 결국 요가, 뉴에이지 사상, 종교혼합주의, 영지주의는 기본 속성이 유사하다.
   
  요가는 윤회의 굴레를 극복하고 절대적 자유의 성취인 해탈을 얻기 위한 다양한 수단의 집대성이기에 단순한 운동이나 훈련이 아니다. 요새 요가가 웰빙 바람으로 일상에 많이 침투되어 심신수련, 치료요법, 명상을 통한 성적 향상 등으로 인기를 끈다. 교인도 요가를 단순한 운동으로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요가는 본질적으로 종교로서 단순한 건강 증진 훈련으로만 여기기에는 위험성이 크다.
   
  요가는 신체 훈련에서 시작했다가 정신 및 영성 훈련으로 발전하면서 기독교의 진리에 왜곡된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범신론적 신비주의로 성령충만도 왜곡하기 쉽고 영지주의 이원론 사상으로 교인을 미혹에 빠뜨릴 수 있다. 요가를 단순히 정서 안정, 다이어트, 우울증 치료 등을 위한 운동으로 여기지 말고 요가의 기원과 목적이 이교적인 종교 행위이고 힌두교 전파 수단임을 깨닫고 교인은 요가를 운동으로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만 요가를 잘 모르고 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배교행위다.”라고 정죄하지는 말라. 사도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사람에게 “그것은 우상숭배다.”라고 정죄하지 말라고 했다.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기에 성도는 우상의 제물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지만 믿음이 약한 자가 실족하지 않도록 우상의 제물 먹는 것을 삼가라고 권면했다(고전 8:4-13). 요가도 굳이 운동 삼아 한다면 할 수 있지만 그것 때문이 믿음이 약한 자가 실족된다면 삼가는 것이 좋다.
   
  < 하나님께 속한 자 >
   
  사탄은 조금만 허점을 보여도 하나님의 사람을 세상에 속한 자로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속한 자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라. 본문 18절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란 표현이 나온다. 19절에도 “하나님께 속하고”라는 유사한 표현이 나온다. 하나님께로부터 나고 하나님께 속한 자는 누구인가?
   
  1.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
 
  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를 썼는가? 하나님의 아들, 즉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13절).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구원받은 후에는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려고 하라. 그것이 영성이 깊어지는 바른 길이고 그런 길로 가야 발전도 있다. 현실에서 괴리되어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경시하고 신비한 은사나 능력을 추구하려고 산과 굴과 격리된 곳에서 요가처럼 계속 훈련만 하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없고 발전도 이룰 수 없다. ‘명상을 위한 명상’을 추구하는 종교 행위를 잘 극복해야 성도다운 모습도 생긴다.
   
  기독교가 힌두교처럼 되면 안 된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구원받았으면 예수님의 이름을 힘써 높이려고 하라. 말도 중요하지만 이름도 중요하다. 나의 첫째 딸은 어릴 때 ‘사슴 눈’이란 별명이 붙으니까 사슴을 닮은 행동과 분위기가 풍겨 나왔고 둘째 딸은 ‘분당의 매력덩어리’란 별명이 붙으니까 묘한 매력이 풍겨 나왔다. 이름대로 앞날이 펼쳐질 때도 많다. 성도의 가장 매력적인 이름은 ‘크리스천’이란 이름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살려고 하라.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예수님과 크리스천이란 이름을 힘써 높이려는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
   
  2.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자
   
  왜 성도는 담대할 수 있는가? 기도 응답의 확신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응답된다(14절). 가장 복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길 원합니다.”라는 기도이고 가장 두려운 기도는 “하나님이 내 뜻대로 다 주시길 원합니다.”라는 기도다. 기도가 다 내 소원대로 응답되지 않는 것에 대해 감사하라. 응답 받은 후 타락해서 망할 때도 많다.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몰라도 하나님의 조치는 늘 최선이라고 믿으라. 기도는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을 해달라고 떼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아 이뤄달라고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가? 성경과 성령을 통해 알 수 있다. 하늘에 닿는 기도는 하늘에서 시작된 기도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음성도 들으라. “하나님! 들으소서. 종이 말하겠나이다.”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하소서.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하라. 하나님의 음성도 듣지 않고 “오늘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라고 하는 기도는 능력이 없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으로 구하면 그 기도가 산을 움직인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얻을 줄로 알라(15절). 그처럼 늘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리는 자가 하나님께 속한 자다.
   
  3. 사망에 이르지 않는 자
 
  본문 16-17절에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와 사망에 이르는 죄라는 표현이 나온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 하지만 연약해서 짓는 죄다. 반면에 사망에 이르는 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거나 대적하는 죄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무수한 작은 죄들이 성도의 삶에도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암시다. 왜 불안한가?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도 죄다. 교회도 무심코 죄와 짝할 때가 많다. 남의 교인을 빼오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도하는 것도 죄다.
   
  바르게 말씀으로 목회하면 부흥이 힘드니까 “으라라라라....”라는 식의 기도로 엑스터시를 일으켜 부흥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다. 성장이 조금 늦더라도 바른 길을 추구하라. 기도하지 않는 것도 죄다. 시기와 질투도 죄다. 화를 내는 것도 죄다. 불안, 시기, 질투, 분노와 같은 죄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지을 수 있다. 그래도 영생을 잃지 않기에 사람이 죄 공장이라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연약해 사소한 죄를 지어도 예수님을 영접한 믿음은 굳건해서 영원한 사망에 이르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자다.
   
  4. 우상에게서 멀리하는 자
   
  본문 19절에 나오는 ‘온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세력을 뜻한다. 어떻게 세상 세력을 이기는가? 참 하나님이고 영생이신 성육신하신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한다(20절). 성도가 있어야 할 자리는 예수님 안이다. 예수님 안에 있으라는 말은 우상을 멀리하라는 말도 되기에 사도 요한은 성도에게 자신을 지켜 우상을 멀리하라는 권면으로 서신을 끝냈다(21절). 사도 요한이 우상을 멀리하라고 한 말은 당시 영지주의를 멀리하고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굳게 믿으라는 뜻이다.
   
  영성주의는 신비주의가 영성을 내세워 교묘하게 구원의 믿음과 말씀 중심적인 삶을 시시하게 만들고 이단과 사이비 교주를 따르게 하는 통로가 될 때가 많다. 그런 영지주의의 폐해를 경고하고 마지막 때에 영지주의가 기승을 부릴 것을 알고 사도 요한은 부드러운 인사말 대신 우상을 멀리하라는 강력한 경고로 서신을 끝낸 것이다. 그의 마지막 음성은 영성이란 이름으로 침투한 이교적인 영성에 의해 우상숭배로 이끌리는 교회에 주는 강력한 경고의 음성이다. 요즘의 한국 교회는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 우상숭배를 멀리하라 >
   
  민수기 21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에 물려 죽을 때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보고 살았다. 그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상징한다. 엄청난 기적의 도구였던 그 놋뱀은 가나안 정착 후에도 히스기야 왕 때까지 약 650년간 계속 보존되었고 심지어 숭배 대상이 되었다(왕하 18:4). 결국 히스기야 왕은 종교 개혁 때 그 놋뱀을 부셔버리고 “이것은 느후스단(놋 조각)이다.”라 했다. 놋뱀 자체에 신통력이 있다고 여기지 말고 놋뱀을 통해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뜻이다.
   
  십자가를 놋뱀처럼 숭배하면 안 된다. 십자가 장식으로 귀신이나 드라큘라를 좇겠다고 하지 말라. 만약 교인들이 강대상의 십자가를 숭배하면 목회자는 그 십자가를 떼어서 “이것을 숭배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나무 조각입니다.”라고 소리쳐야 한다. 교회에 십자가를 만들어 붙인 것은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인식하라는 것이지 그것을 귀신 쫓는 무기처럼 여기라는 뜻이 아니다. 그런 무속적인 우상숭배를 하나님은 지극히 싫어하신다.
   
  사람도 숭배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예언과 치유의 능력이 있고 잘 입신시킨다고 하면서 그를 숭배하고 추종할 때 이단이 나온다. 기존 교회에서도 너무 목회자를 높이면 교리적으로는 이단이 아니어도 외형적으로는 이단성이 나타난다. 그러면 하나님이 언젠가는 반드시 쳐서 그와 그의 추종자들을 비참하게 추락시키신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사람을 숭배하지 말라. 그는 단순히 사람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의구심을 가진다. “하나님이 치시다니요? 보세요. 오히려 사람들이 몰려와서 교회도 커지고 명성도 올라가는데요.” 교회의 외적인 성장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 귀신 쫓기로 유명한 교주로 인해 10만 명 교회로 커졌던 한 이단 교회는 교인들 간의 싸움으로 오히려 귀신에 의해 점령당해 심지어 일부 교인들이 복면까지 쓰고 싸우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한국 교회의 전도를 막고 그 교회 자녀들의 영혼에 상처가 되겠는가?
   
  커지고 명성이 올라가는 것이 진짜 복은 아니다.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너무 올라가거나 커지면 한 세대도 지나기 전에 올라간 만큼 무섭게 떨어진다. 그런 떨어짐이 없으려면 올라갈수록 자신을 더 낮추고 감춰야 한다. 목회자가 유명해지면 오히려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 “너무 제게 찾아오지 마십시오. 저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제게 기도해달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훨씬 능력이 있는 기도가 됩니다.”
   
  리더는 자기 우상화를 끊임없이 절제해야 한다. 그렇게 바르게 목회하면 숫자는 많이 불리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리더와 그를 따르는 팔로워에게는 이 땅의 영화와 비교할 수 없는 천국 영화가 따를 것이고 이 땅에서의 천국 은혜와 축복도 넘치고 계속될 것이다. 믿음 생활을 할 때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내가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인식하며 살라. 그래서 사람을 찾거나 사람에게 기도해달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찾고 스스로 기도해서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세상을 이기는 능력자들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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