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에 넘어가지 말라(2) (신명기 5장 30-33절)
< 이단에 넘어가지 말라 >
극단적인 신앙을 멀리하라. 한자에 ‘지나칠 과(過)’자가 들어간 단어 중에 좋은 단어는 거의 없다. 과식, 과음, 과로, 과민, 과열, 과장, 과시, 과속, 과대 등 나쁜 의미의 단어만 수없이 많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옛말이 과언이 아니다. 지나쳐도 좋지 못한데 극단으로 치우치면 얼마나 문제가 많겠는가?
극단적인 이원론 신앙도 버리라.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를 한다고 하루에 8시간씩 새벽기도를 하는 것은 기도의 기본 원리도 모르는 영적 과시자의 이원론적인 삶이다. 밤 12시 30분부터 아침 8시 30분까지 새벽기도를 하고 직장에 출근해 근무시간 내내 부실근무로 손가락질을 받으면 믿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모습인가?
성경에서 “항상 기도하라.”는 말은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뜻이다. 평신도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루에 2시간 이내로 기도하고 나머지는 매 순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좋다. 골방에서 기도하는 삶도 거룩한 삶이지만 직장인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잘하는 것도 거룩한 삶이고 사업가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사업하는 것도 거룩한 삶이고 학생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거룩한 삶이다.
이원론은 가장 신앙적인 모습을 하면서 가장 신앙을 해치는 것으로서 정상적인 인간관계와 사회생활과 가정생활과 교회생활을 깬다. 영성이 깊다는 한 여성은 매일 기도원을 다니면서 가정을 등한시한다. 결국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거의 매일 저녁 혼자 라면만 끓여 먹는다. 그것은 영성이 좋은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기본을 모르는 태도다.
그런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가 나중에 똑같은 길에 들어서 분별력을 잃고 극단적인 맹신주의자가 되거나 아니면 인터넷 등에서 기독교를 무섭게 비방하는 극단적인 불신자가 된다. 결국 극단주의는 ‘자기 교회’를 키우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어도 장기적이고 전체적인 의미에서는 전도를 막아서 ‘전체 교회’를 욕먹게 만들고 퇴보시킨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속상하시겠는가?
화려한 은사와 영성을 내세운 이원론을 주의하라. 아들의 영성이 아무리 깊어도 육신의 부모를 업신여기거나 반대로 부모의 영성이 아무리 깊어도 아이들과 장난하며 함박웃음을 주지 않는 삶은 거룩한 삶이 아닌 불행한 삶이다. 진리의 99%는 평범한 것에서 발견되고 참된 영성도 평범함 속에서 오히려 진가가 드러난다. 영성을 특이하고 괴상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 예수 믿고 ‘인물’이 되어야지 예수 믿고 ‘괴물’이 되면 안 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아 눈에 띄는 성공은 더뎌질 수 있다. 그러나 티가 나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주님을 바라보고 헌신하면 괴상하고 특이하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아도 그가 가진 구원은 결코 잃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축복이 예비되어 결국 최종 승리자가 되고 천국의 큰 상급이 주어진다.<2018.9.3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