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의 축복을 얻는 길(2) (신명기 8장 11-20절)
이제 기도하라.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몰입되어 범사에 감사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거룩한 나눔의 비전을 가지고 실천하며 살게 하소서. 무엇보다 인간의 논리가 아닌 하나님의 논리에 익숙해지고 늘 말씀을 추구하며 살게 하소서.” 수천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통해 영혼의 목마름을 해갈했고 안식을 얻었고 찬란한 비전을 발견했고 그 비전을 향해 달려나가는 힘을 얻었다.
말씀 중심적인 삶은 어떤 삶인가? 상세하고 정확하게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복주의와는 정반대의 삶이란 것이다. 물질과 건강과 성공과 마음의 안정을 얻으려고 복음을 이용하고 예수 이름을 내세우면서 나눔의 삶에 인색했던 기복주의로 인해 공허한 현대 교인들이 양산된 것이다. 신앙의 반대말은 ‘불신’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말하면 ‘기복주의 신앙’이다.
왜 요새 교회가 신선한 충격을 주지 못하는가? 교회의 핵심 열매는 ‘말씀의 나눔’과 ‘물질의 나눔’ 2가지인데 그동안 몇 단계 성경공부나 각종 세미나 등을 통해 말씀을 나누려는 교인은 양산했지만 물질을 나누려는 교인은 양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누구보다 필요한 사람은 은밀하게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런 삶을 실천할 때 영적인 공허함도 사라지고 한국 교회는 다시 이 시대의 희망 발전소가 될 것이다.
참된 신앙을 통해 참된 축복을 받으려면 기복신앙을 깨뜨리라. 어떻게 기복신앙을 깨뜨리는가? 그것을 위해 무엇보다 나눔을 체질화시키라. 지금은 돈이 돈을 버는 시대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돈을 휩쓸어가는 시대다. 인기 있는 게임 하나만 개발해도 1조 원을 번다. 그처럼 무서운 속도로 펼쳐지는 기계화 및 정보화 시대에 사람의 노동력이 점차 설 땅을 잃고 있다. 이런 시대에 나눔의 뜻을 가진 사회적 인물이 없으면 부의 지나친 편중으로 인해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다가 언젠가는 반드시 뒤집어진다.
그런 비극이 충분히 예고되는 상황에서 나눌 줄 모르는 세상 사람에게 물질이 무섭게 흘러들어 가지 않도록 잘 나눌 줄 아는 인물 성도가 물질적인 영역을 정복해서 자발적으로 나누는 거룩한 조정자 역할을 잘해야 한다. 그런 사명감을 가진 인물이 되고 그런 인물을 만드는 것이 교회와 성도의 중요한 책무가 되어야 한다.
나눔의 비전을 이루도록 성공도 구하고 물질도 구하라. 성공이나 물질을 최종 목표로 삼지 말고 나눔을 최종 목표로 삼으라. 나눔이 최선의 성공이다. 나눌 때는 특별한 경우 외에는 드러내지 말고 은밀하게 나누라. 그때 영혼에 채워지는 은밀한 행복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 나눔의 목표를 가지고 힘써 땀 흘려서 사람들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전해주고 영생의 물이 흘러넘치게 하는 복의 작은 근원이 되라.<2018.9.17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