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에게 필요한 말씀(1) (신명기 29장 1-9절)
어느 날 한 교인이 생일에 목사와 교인을 초청해 음식을 대접하는데 교인들부터 주고 목사에게는 제일 나중에 주었다. 몇 교인들이 “목사님께 먼저 드려야지요.”라고 하자 그가 말했다. “다 똑같은 사람이에요. 목회자는 구약시대 제사장이 아닌 섬기는 사람이잖아요. 괜찮아요.” 언뜻 들으면 바른말 같은데 왜 공감이 잘 안 되는가? 그 언행에 자기 의가 빠끔히 드러나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면서 무지의 선봉이기도 하다.
초대 교회 때 바울의 사역과 글은 큰 감동을 주었지만 그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바울 자신도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 “바울의 글도 다 맞는 것은 아니야.”라고 하며 그의 글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고 비판하면 자신은 올바른 비판으로 여기겠지만 그런 경우에는 비판보다는 비판이란 프레임을 사용해 자기를 과시하고 자기 의와 사랑을 드러낸다는 느낌을 줄 때가 많다.
비판에는 팩트에 근거한 논리적이고 정당한 비판도 있지만 자기 의를 은근히 과시하는 비판도 있다. 비판을 최대한 신중히 한다는 전제에서 전자의 비판은 대개 경청되고 존중되지만 후자의 비판은 대개 무시되고 외면된다. 신중하고 지혜롭게 한 좋은 비판은 내게도 좋고 상대에게도 좋고 공동체에도 좋지만 자랑과 과시가 은근히 섞인 비판은 공동체나 상대에게도 도움이 안 되고 자기에게도 해가 된다. 내면의 성숙을 막기 때문이다.
칭찬과 비판 중 어느 것이 더 좋은가? 단정해 말할 수 없다. 칭찬 중에는 나쁜 칭찬도 있고 비판 중에는 좋은 비판도 있기 때문이다. 비판도 정당하게 잘해야 하고 칭찬도 정당하게 잘해야 한다. 특히 비판이 자기 한과 상처의 토로나 축소된 입지에 대한 반발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자기 의의 표출이나 과시에서 나오는 비판이다. 자기 의와 사랑을 빠끔히 드러내는 비판이 체질화되면 인간성과 사회성이 저하되고 더 심해지면 반사회적으로 되기 쉽다.<2018.12.8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