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천을 쫓는 길 (신명기 32장 28-43절)
2.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라
하나님을 대적할 것은 하나도 없다. 본문 31절을 보라. “진실로 그들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아니하니 우리의 원수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다.” 이 구절에서 ‘그들의 반석’은 대적이 숭배하는 이방신을 가리키고 ‘우리의 반석’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킨다. 사람이 의지하는 돈, 권력, 이방신 등의 헛된 반석들은 하나님은 순식간에 깨뜨릴 수 있다. 그 사실을 원수도 잘 알고 있다. 하나님만 참 신이기 때문이다.
헛된 반석을 통해서는 좋은 열매가 생길 수 없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림으로 소돔과 고모라처럼 음란한 백성이 되었고 결국 이스라엘의 포도는 독이 든 쓴 포도처럼 되고 그들의 포도주는 독사의 맹독처럼 되었다(32-33절). 이스라엘이 지은 뱀의 독과 같은 죄가 하나님께 쌓여 있어서 공의의 하나님이 신속히 심판하신다(34-35절).
심판하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무력한 상태와 사람이 살 수 없는 페허 상태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다(36절). 언젠가 회복의 은혜를 허락하실 것이란 암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피해야지 이방신에게 피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본문 37-38절에서 ‘그들의 신들’과 ‘그들이 피하던 반석’과 ‘그들의 제물의 기름을 먹고 그들의 전제의 제물인 포도주를 마시던 자들’은 이스라엘이 헛되게 의지하던 이방신들을 뜻한다.
왜 우상에 대해 제물을 먹고 마시는 존재로 표현하셨는가? 사람이 만든 우상은 헛된 것이라는 암시다. 즉 그 우상들이 그들을 돕고 그들을 위한 피난처가 되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결국 하나님만 의지하고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라는 뜻이다(39절). 사람의 생사를 온전히 주관하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밖에는 없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을 때 회복의 은혜가 주어진다.
돈이나 자리는 물론 어떤 사람이나 어떤 신도 피난처가 될 수 없다. 하나님만이 온전한 피난처이자 희망의 원천이다. 성도는 어두운 현실에도 왜 낙심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피난처이심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내게 말씀 하신다. “결코 낙심하지 말라. 끝까지 살아내라. 죽겠다고 하면 진짜 죽고 살겠다고 하면 진짜 살 줄 알라.” 그때 기쁘게 응답하라. “하나님! 열심히 살아볼게요.” 이 세상에 어떤 거솓 하나님의 손길에서 나를 빼앗아 갈 것은 없다.
하찮은 일로 죽겠다고 하지 말라. 그때 더욱 삶의 의지를 불태우며 기도하라. “하나님! 제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하소서.” 믿음의 삶이란 하나님의 축복을 기다리는 삶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도 포함된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불의가 정의를 이기지 못하게 공동체의 거룩한 제동 장치로 살면서 남의 피난처가 되어주는 삶이 믿음의 삶이다. 그 믿음의 천 명 이상의 대적을 쫓고 천 명 이상의 몫을 하게 한다.
<2018.12.25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