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성육신의 사랑(2) (요한복음 1장 14절)
2. 눈높이를 맞추는 것
사람이 수십 년간 가졌던 태도와 자세와 언어를 남의 눈높이에 맞춰 바꾸기는 쉽지 않다. 설교도 눈높이를 잘 맞춰야 하는 어린이 설교가 제일 힘들다. 그래도 눈높이를 맞추려고 할 때 소통이 이뤄진다. 부모가 눈높이를 맞출 때 자녀가 마음 문을 열고 선생님이 눈높이를 맞출 때 학생이 마음 문을 연다. 하나님은 성육신을 통해 사람에게 눈높이를 맞추셨고 사랑하는 대상처럼 되셨다.
가장 위대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처럼 되는 사랑’이다. 어떤 집사는 자녀가 좋은 대학에 붙어도 교회에서 기쁜 내색을 하지 않는다. 목회자도 무덤덤하다. 입시에 집착하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자녀가 대학에 떨어진 다른 집사의 입장을 생각해 기쁨을 절제한 것이다. 그처럼 남의 입장에 서려는 영성이 성육신의 영성이다. 그런 영성을 가지고 사랑하는 대상에게 눈높이를 맞추며 몸과 힘과 시간과 물질을 최선을 다해 드림으로 가는 곳마다 감동과 행복의 모델이 되라.
눈높이를 맞추라면 윗사람이 아랫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만 생각하지만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도 눈높이를 맞추는 사랑이다. 긍휼의 눈으로 아랫사람의 처지를 살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해의 키를 높여 윗사람의 심정을 살펴주는 것도 중요하다. 부당한 조치가 아니라면 순수하게 리더의 뜻에 맞춰보려는 자세는 아부가 아니라 은혜와 축복을 받는 복된 원리 중 하나다.
눈높이를 맞추려면 꼭 필요한 것이 겸손이다. 예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만 생각해도 예수님의 지극한 겸손을 느낀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얼마나 겸손한 모습인가? 결국 예수님의 삶이 강력하게 도전하는 것은 ‘겸손’이다. 많이 알고, 많이 가지고, 많이 헌신하고, 많이 체험할수록 더 겸손해지라.
인생은 달과 같다. 보름달일 때 겸손하라. 곧 초승달이 되기 때문이다. 초승달로 있을 때는 용기를 잃지 말라. 곧 보름달이 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은 보름달 때는 교만하고 초승달 때는 낙심하지만 성도는 보름달 때는 겸손하고 초승달 때는 용기를 잃지 않는다. 자신이 초승달임을 인정하면 곧 보름달의 축복이 주어지지만 자신이 보름달임을 주장하면 곧 초승달의 처지가 된다. 축복을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이 겸손이다.<2019.1.12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