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의 사랑을 실천하라(1) (요한복음 3장 16-21절)
< 하나님의 사랑의 정의 >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의 사랑을 잘 나타내는 구절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첫째, 먼저 사랑하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받을 만해서가 아니라 죄인 되어 사랑받을 자격이 없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다. 사랑은 사랑스러울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힘들게 하고 갈등 중에도 따뜻한 손을 펼치는 것이다. 교육 목적으로 멀리할 때도 속으로는 그를 품고 축복하는 것이 사랑이다.
둘째, 변하지 않는 사랑이다. 환경과 기분과 조건에 따라 인간의 사랑은 변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흔히 첫사랑에 큰 의미를 두지만 첫사랑의 감미로운 연애적인 사랑보다 꾸준하고 변함없는 가정적인 사랑이 더 중요하다. 신앙도 감미롭고 재미있고 연애적이고 감정적인 신앙에서 양보하고 헌신하고 책임적이고 가정적인 신앙으로 발전해야 한다. 은혜도 반짝 은혜보다 꾸준한 은혜가 더 귀하다.
셋째, 크고 깊은 사랑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크고 깊은 사랑을 잘 말해준다.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기보다 구원하려고 세상에 보내셨다(17절). 세상 전체를 사랑했으니 얼마나 그 사랑이 큰가?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했지만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다. 인간적인 사랑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랑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이타적이고 선교적인 사랑이다.
넷째, 희생이 큰 사랑이다. 십자가는 귀신 쫓는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큰 사랑을 나타내는 표시다. 어느 날 한 아이가 고모와 함께 처음 교회에 가서 강대상 뒷벽에 붙은 십자가를 보고 물었다. “고모, 왜 벽에 ‘더하기 표’가 붙어 있어요?” 고모가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너 예수님 알지? 저 ‘더하기 표’는 예수님이 생명과 구원과 기쁨을 더해주셨다는 표시야.” 하나님은 희생적인 사랑으로 하늘의 기쁨과 소망을 더해주셨다.
예전에 필자 교회의 가족 수련회를 섬기려고 온 봉사팀이 있었다. 그때 수련회 장소가 아주 더웠지만 어떤 교인도 불평하지 않았다. 봉사 팀원들이 훨씬 더 땀을 흘렸기 때문이다. 그 팀은 나중에 교회에서 주는 사례비도 받지 않았다. 그들은 교인 60명 중 30명이 중증 장애인인 교회를 섬기고 있었기에 그 교회로 헌금한다고 해도 안 받았다. 수련회의 각종 소품과 준비물도 그들 돈으로 직접 준비했다. 사랑의 봉사라는 의미가 조금이라도 퇴색될까 봐 그렇게 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헌신적인 사랑이 진짜 사랑이다.
다섯째, 예비하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에벤에셀의 사랑’과 ‘여호와 이레의 사랑’이다. 에벤에셀이란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뜻이고 여호와 이레는 “하나님이 필요를 예비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과거의 은혜 위에 미래의 은혜를 예비하고 쌓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축복하실 때 완성된 축복보다 축복 재료를 주신다. 즉 나를 위해 다 해주시기보다 내가 스스로 하도록 돕고 힘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왜 하나님은 완성된 축복보다 축복 재료를 주시는가? 그래야 삶이 더욱 보람 있고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축복 재료를 통해 축복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지금 일이 잘 안 풀려도 안심하라. 나중에 보면 그 안 풀리는 일로 인해 더 좋은 일이 생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실패와 고난에는 늘 선한 목적이 있다. 그 선한 목적을 깨닫고 묵묵히 나아가면 조만간 멋진 작품 인생이 된다.<2019.2.1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