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결국 먹혀든다(2) (요한복음 4장 1-10절)
사마리아 여인이 “왜 유대인이 사마리아 여자인 제게 물을 구합니까?”라고 도전적으로 말해도 예수님은 끝까지 인내와 사랑으로 대하셨다. 사랑은 즉시 충고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기까지 오래 참는 것이다. 인내와 헌신이 없는 사랑은 값싼 사랑이 된다. 요즘 가장 큰 문제는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인내와 헌신이 없는 값싼 사랑이 많은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여인의 문제도 사실상 인내하는 사랑이 없었던 문제였다. 그녀에게 사랑의 이름으로 많은 남자가 접근했지만 모두 값싼 사랑이었다. 값싼 사랑은 영혼을 더 갈증 나게 한다. 그녀도 남편을 다섯 명이나 바꾸고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었다(18절). 그녀의 다섯 남편은 누구였겠는가? 가상적으로 이런 추리를 해볼 수 있다.
첫째 남편은 인물이 좋았을 것이다. 그는 선악과처럼 보암직했지만 속이 비었고 자주 바람을 피웠다. 그래서 바람피우지 말라고 따지니까 심지어 때리기까지 해서 도망쳤다.
둘째 남편은 지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배웠기에 속이 꽉 찬 것처럼 보였지만 너무 고지식하고 재미도 없고 가난했다. 그래서 빨리 팔자를 고치자고 관계를 끝냈다.
셋째 남편은 돈이 많았을 것이다. 원하는 것은 다 가질 수 있었지만 그는 가정보다 사업을 더 중시해서 돈 때문에 돌 것 같았다. 그래서 위자료를 많이 챙기고 끝냈다.
넷째 남편은 권력이 있었을 것이다. 권력의 맛은 꿀맛이어서 권력 휘두르는 기분이 끝내주게 좋았지만 매일 중상모략하고 남을 칠 궁리만 하는 그를 보고 환멸이 나서 끝냈다.
다섯째 남편은 평범한 농부였을 것이다. 모든 부귀영화가 귀찮고 평범한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그와 같이 농사를 하며 살았지만 얼마 후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이 너무 팍삭 늙어 보여서 아무래도 밑지는 인생 같아 관계를 끝냈다. 그렇게 만나고 헤어졌다가 현재는 희망도 없이 그저 우연히 만난 남자와 살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현대인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왜 많은 현대인들이 방황하는가? 헌신이 없기 때문이다. 헌신이 커지면 공허가 작아지고 헌신이 작아지면 공허가 커진다. 결국 ‘주는 삶’이 갈증과 공허를 극복하고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최고의 삶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고 인간관계를 튼튼히 하고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려면 위로는 하나님께 드리고 옆으로는 이웃과 나누고 아래로는 어려운 사람에게 베푸는 ‘드나베의 삶’을 힘써 실천하라.<2019.2.8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