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인 소수가 되라(1) (요한복음 6장 60-71절)
예수님이 군중을 피해 혼자 산으로 가자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으러 다니다가 배를 타고 가버나움까지 가서 마침내 예수님을 만났다(24-25절). 예수님을 좇는 그들의 열정에 감복해 예수님이 칭찬하셨는가? 오히려 질책하셨다. 그들은 복음의 진리가 아닌 육신적인 필요를 채우려고 예수님을 찾았는데 예수님은 자신을 육신적인 필요 때문에 찾지 말고 영생의 양식을 위해 찾으라고 말씀했다(요 6:26-27). 그런 핵심 메시지를 담아 죽음과 희생을 강조한 ‘생명의 떡’ 말씀을 하셨다(요 6:32-58).
그 말씀을 듣고 백성들이 “어렵다. 재미없다.”고 하면서 다 떠나고 최후에 12제자만 남았을 때 예수님이 말씀했다. “너희도 가려느냐?” 가슴 아픈 장면이다. 그때 베드로가 절망적인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말을 했다. “영생의 말씀이 주님께 있는데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기적의 주님’이라고 하지 않고 ‘영생의 말씀’이라고 했다. 얼마나 평범한 고백인가? 그 다음 고백도 평범하다.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습니다(69절).”
베드로는 기적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주님에 초점을 맞추면서 자신은 누가 뭐래도 주님과 함께 좁은 문으로 가고 소수의 길을 택해 가겠다고 했다. 그 말이 예수님께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는가? 베드로의 그 한마디 말은 무엇보다 소중한 헌신이었다. 예수님이 그런 헌신적인 언행을 기억하고 수제자로 삼은 것이지 그가 나이가 제일 많고 능력이 있어서 수제자로 삼은 것이 아니었다.
상황이 힘들 때 이렇게 말하라. “저는 당신을 믿어요. 용기를 내세요.” 그러면서 애써서라도 웃어 보이고 밝게 행동하고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소중한 헌신이다. 그런 헌신을 보면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시고 사탄 마귀는 매우 싫을 것이다. 신실한 헌신은 마귀를 고문하는 고문 도구이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이끌어내는 축복 도구다. 첫사랑의 감격을 품고 다 바치고 싶어 하는 헌신적인 마음은 사람을 가장 매력적으로 만들기에 헌신이 몸에 배이면 점차 인상도 좋아진다.
가정과 일터에 힘든 문제가 생길 때 기쁜 얼굴을 하고 희망의 말도 전해주면서 가족과 동료의 기를 살려주려고 애쓰라. 물질적인 헌신도 소중한 헌신이지만 어려울 때 기쁜 얼굴을 하고 믿음의 말을 해주면서 가정과 교회와 이웃을 기쁘게 해주는 것도 소중한 헌신이다. 하나님은 그런 헌신을 결코 잊지 않고 그가 속한 공동체도 축복하고 특히 그 자신을 누구보다도 복된 존재로 만들어주실 것이다.<2019.3.5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