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치지 말아야 할 것(2) (요한복음 9장 13-34절)
4. 축복
본문 17절에 나오는 맹인이었던 자의 예수님에 대한 증거를 보라. “선지자니이다.” 예수님을 담기에는 크게 부족한 호칭이지만 그 간단한 호칭에도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본문 25절을 보라.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이 짤막한 한 문장의 간증도 파워가 넘친다. 참된 간증은 이런 간증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이렇게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장황한 축복 간증보다 간결한 변화 간증이 더 중요하다.
반틸이란 유명한 변증학 교수가 말했다. “가급적이면 간증하지 마십시오. 간증하는 사람은 자기 얘기를 영웅적인 거짓 스토리로 만들 위험이 큽니다.” 영웅적인 화려한 축복 간증보다 달라진 삶에 대한 소박한 간증이 더 소중하다. 축복을 추구하기보다 먼저 변화를 추구하고 얻을 생각부터 하지 말고 먼저 드릴 생각부터 하라.
잘못된 축복 간증은 땀과 과정의 생략을 은근히 부추긴다. 땀이 없는 축복의 열매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무엇이든지 수고하고 얻어야 더 가치를 느낀다. 불로소득은 물질의 가치와 인격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불의한 삶을 조장하기 쉽다. 교회도 눈물의 수고 없이 너무 급속히 성장하면 한 영혼의 가치가 경시될 수 있기에 그것은 경계해야 할 사례지 모범으로 삼을 사례가 아니다. 눈물의 수고 없이 성장하면 힘은 얻어도 선은 잃기 쉽다. 또한 겸손한 진실을 잃게 하고 인간적 자랑만 남게 하기 쉽다.
요즘은 작은 교회가 많이 외면받지만 작은 교회도 장점이 많다. 그 장점 중의 하나는 한 영혼의 가치를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작은 교회에서는 한 영혼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떠나면 남은 교인들은 속으로 운다. 반면에 한 영혼이 찾아오면 첫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교인들이 들떠한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한 상태에서 한 영혼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진통하는 모습이 참된 교회의 모습이다.
성공과 성장과 축복만 바라보며 너무 서두르지 말고 하나님의 뜻과 길 안에서 수고하며 우직하게 나아감으로 거룩한 방법으로 땅을 정복하고 땅에 충만하라. 그 일은 쉽지 않기에 인내의 기간이 필요하다. 그 기간에 인내하면 이삭을 얻지만 인내하지 못하면 이스마엘을 얻는다. 오늘날 끊임없이 생기는 중동 분쟁의 근본 원인은 아브라함 부부가 약속의 성취를 넉넉한 믿음으로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왜 많은 교회가 진통하는가? 하갈을 받아들이는 부조리한 방법도 활용해 이스마엘을 얻는 식으로 교회를 서둘러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하갈은 기복주의, 신비주의, 인본주의, 헛된 종말론을 뜻한다. 화려하고 신기한 것을 너무 좋아하지 말라. 사탄은 호기심을 틈타 들어올 때가 많다. 힘들어도 진리 안에서 우직하게 살고 축복에 대한 관심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에 더 관심을 둘 때 진짜 축복을 얻는다.<2019.3.26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