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에 빠지지 말라(1) (요한복음 14장 1-6절)
조지 뮬러는 말했다. “믿음이 나타나면 근심이 사라지고 믿음이 사라지면 근심이 나타난다.” 근심과 믿음은 반비례한다. 믿음이 작아지면 근심은 커지고 믿음이 커지면 근심은 작아진다. 믿음은 큰 힘을 준다. 자기를 믿는 신념도 큰 힘이 되는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는가? 믿음은 소유나 학력이나 재주나 인간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믿음이 없는 하나의 성공은 열 가지 근심을 뒤따라오게 할 때가 많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소유가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물질에 집착하면 삶의 본질과 핵심을 잃는다. 소유가 적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순박한 모습을 통해 믿음도 쑥쑥 잘 자랐지만 밥술 좀 먹고 돈을 좀 만지게 되자 타락하고 교만해서 믿음이 잘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물론 소유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소유가 많은 것이 아니라 드림과 나눔과 베풂이 없는 것이다. 나눔이 없는 소유는 근심과 불행지수를 높인다.
요새 교계에서 영성(靈性)이란 말을 많이 쓰고 있다. 기독교에서 영성(靈性)이 무엇인가? 예언하고 방언하고 영서(靈書)를 쓰는 것이 영성이 큰 표시인가? 영성이란 단어가 내포하는 기본 개념에 따르면 영성을 과시하는 모습은 오히려 영성이 없는 표시다. 진짜 영성(靈性)은 영(零)이라는 숫자의 영성(零性)이다. 나를 제로(zero)로 여기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사는 것이 진짜 영성이다.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잘되고 잘못되고 하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다.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만이 구세주란 믿음을 잃지 말고 거룩한 비전을 위해 나를 전폭적으로 드리라. 그런 헌신적인 믿음이 있으면 근심이 찾아와 괴롭히지 못한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거룩한 비전에 나를 드리면 누구도 나를 해치지 못한다. 로마가 세계를 리드할 때 로마 시민권자는 아무도 해치지 못했고 영국이 세계를 리드할 때 영국 시민권자는 어디 가나 대접받았다. 요새 미국 시민권자는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테러 당하는 경우는 있어도 국가적으로 대범하게 해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하늘나라의 시민권자는 말할 것도 없다. 문제나 풍랑 앞에서 벌벌 떨지 말라.
살다 보면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도 많다. 자녀를 잘 키우려고 하지만 내 뜻대로 안 될 때가 많다. 거기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으라.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성도의 머리털까지 세고 있기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과거를 돌아보면 가끔 숨막히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때 “이제 어떻게 하나? 큰일 났네.”라고 했지만 지금도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라. 믿음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열매를 가져다주는 것이다.<2019.4.23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