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한 사람을 일으키는 길(2) (요한복음 20장 24-31절)
어떤 사람은 “이제 다 끝장났다.”고 하지만 이 세상에 다 끝장난 인생은 없다. 성도에게는 더욱 그렇다. 성도에게는 아무리 큰 시련이 있어도 그 시련 중에 반드시 하나님의 선한 계획과 손길이 있다. 그 하나님의 손길이 너무 섬세해 덤벙덤벙한 자기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하다. 특히 경쟁 사회에서 실패와 쓰라림과 상처를 많이 당하는 현대인에게는 더욱 믿음이 필요하다.
전도할 때도 “당신은 못난 죄인이다.”라고 윽박지르지 말라. 그 말을 안 해도 사람은 늘 죄책감에 시달리며 산다. 그저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혼을 일으켜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라. 사랑의 초청이 거절되기도 하지만 그 거절은 영원한 거절이 아니다. 많은 성도가 처음에는 그런 사랑의 초청을 매몰차게 거절했었다. 거절을 거절로 보지 말고 더 큰 사랑을 보여 달라는 사랑의 요청으로 받아들이라.
예전에 인터넷에서 “친구야! 정말 미안하다!”는 한 소녀의 글을 읽었다. 그 친구를 열심히 전도했는데 구원받지 못하고 교통사고가 나서 먼저 죽었던 친구를 생각하면서 그 소녀는 친구의 무덤에서 울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시 일으켜주시는 예수님’이 삶의 해답임을 전해주라. 헌신도 없고 자기의 소중한 것을 던지려는 용기도 없이 어떻게 진리를 체험하겠는가? 또한 부끄럽다고 가만히 있으면서 교회 안에서만 맴돌면 무슨 변화가 있겠는가?
사람들은 땅 짚고 헤엄치는 쉬운 삶을 선호하지만 수영의 참맛과 기쁨을 알려면 깊은 바다 속으로 쑥 들어가야 한다. 진리의 바다에 자기를 쑥 던져야 참된 축복을 얻는다. 교회생활을 할 때도 예배와 봉사와 교제의 장으로 쑥 들어오면 더욱 큰 축복의 길로 향하는 선한 변화가 반드시 나타난다.
요새 교회가 제 몫을 못한다는 탄식이 많지만 내가 내 몫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가 더럽다면 내가 걸레를 들고 지구의 한 부분이라도 닦을 때 세상이 조금 더 맑아진다. 절망적인 한을 토하고 남의 흠집만 잡는 맹목적인 분노는 자기도 해치고 사회도 어렵게 만든다. 어둡다고 원망만 하지 말고 작은 등불 하나라도 들고 어둔 세상에서 희망의 빛으로 살면서 복의 근원이 되라.<2019.6.4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