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을 이기는 3가지 길 (요한복음 21장 2-3절)
낙심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누가 “하늘이 파랗네.”라고 해도 고개 한번 들기 싫고 마음의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 모든 것이 싫을 때가 있다. 제자들은 점차 그런 상황에 빠졌다. “도대체 예수님은 어디 계신가? 비전은 있는가?” 그들은 서로의 얼굴에 절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것을 보았다. 그 상황을 베드로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겠다.”
베드로의 행동은 못난 행동 같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된다. 계속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더 낙심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절망적 환경에서도 땀을 흘리면 영혼까지 절망에 빠지진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 때는 가만히 있기보다 무언가 할 일을 찾아 나서라. 1992년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기도하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겠다고 일터를 버려서 수많은 부작용을 일으켰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릴 때는 기도만 하며 기다리지 말고 땀을 흘리며 기다리라. 행함과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가끔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날마다 기도원에 가는 사람이 있다. 다른 가족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는데 자신은 기도원만 찾아다니고 부흥회나 성경공부만 찾아다니면 그것은 정상이 아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기도만큼 소중한 것이다. 기도만큼 땀을 좋아하라.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땀을 싫어하면 좋은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은 무책임한 사람에게 기적을 주지 않는다. 그러면 더 무책임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매일 새벽기도를 8시간 하고 2시간을 졸면서 일하는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라 매일 새벽기도를 2시간 하고 8시간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책임적인 사람이다. 무책임은 일종의 불신이다. 진실한 믿음은 책임감 있는 사람을 만든다. 신앙이 좋은 것 같은데 책임감이 없는 것은 좋은 신앙이 아니다. 가정과 일을 버리고 기도원이나 특별집회만 따라다니는 것은 거의 불신에 가까운 것이다. 성경은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했다(딤전 5:8).
요새 일거리가 없다지만 어떤 일에는 일할 사람이 없다. 힘든 일이 싫다고 유흥업소 가서 편하게 돈을 벌려고 하고 사명도 없이 신학교만 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십계명에서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의 보다 적극적인 의미는 “땀을 흘리라.”는 것이다. 땀이 없는 삶은 크게 보면 도둑질하는 삶이다. 땀이 없으면 낙심도 금방 찾아온다. 반면에 이마에 땀이 있으면 낙심은 맥을 못 추고 조만간 사라진다.<2019.6.6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