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적인 삶의 축복(1) (요한복음 21장 18-19절)
공산주의 소련 때 흉년이 거듭되자 당국은 1%의 사람을 특별히 선별해 나쁜 박토를 주고 자유롭게 농사지어 먹게 했다. 몇 년 후 그 1%의 농민에게서 생산된 농업 생산량이 전 국가 농업 생산량의 27%가 되었다. 그 사례를 통해 당시 고위 당국자는 공산주의 노선을 수정하는 수정주의를 요청했다. 농사도 사랑으로 해야 한다. 모든 일의 성공에는 사랑이 필요하다. 참된 성공을 원하면 먼저 내 사랑이 건강한 성육신의 사랑인지 점검해보라.
베드로를 일으킨 것은 예수님의 성육신의 사랑이었다. 사랑은 과거의 수치를 이기게 하고 깨진 관계를 복원시켜준다. 내 한과 상처와 힘든 삶의 여정을 극복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실제로 예수님의 세 번의 질문이 끝나자 베드로에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질문이 자기 상처를 덧나게 하는 줄 알았는데 그 질문을 주고받는 사이에 어느새 마음의 질병이 다 치유되는 것 같았다. 결국 그는 과거의 수치를 깨끗이 잊고 누구보다 훌륭한 제자의 길을 새롭게 갈 수 있었다.
누구나 자신을 붙드는 과거의 아픈 기억이 있다. 그 과거를 극복하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어떤 사람은 회를 먹다가 체한 후 더 이상 회를 먹지 않는다. 한 번의 체한 기억이 맛있는 회를 먹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처럼 과거의 실패 경험을 잘 극복하지 않으면 삶의 소중한 일부가 파괴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생긴 실패 경험도 잘 극복하지 않으면 삶의 상당 부분이 파괴될 수 있다. 그때 무엇이 필요한가? 사랑이다. 특히 원수 사랑이 필요하다.
링컨은 원수는 마음에서 먼저 없애라고 했다. 누군가 링컨에게 원수를 없애라고 하자 그가 말했다. “당연히 원수를 없애야지요. 저는 원수를 사랑해서 친구로 만들어 없앨 겁니다.” 복된 삶을 살려면 원수 사랑은 필수적이다. 원수는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과거의 실패와 수치의 기억’도 원수다.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그 기억을 잘 극복하고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모든 원망과 과거의 아픈 기억을 극복하라.
‘원수 같은 과거’를 잊고 더 나아가 그런 과거까지 사랑하라. 그 과거를 그냥 잊어버리는 것도 훌륭하지만 더욱 훌륭한 일은 그 과거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그때 그 수치로 내가 이렇게 겸손할 수 있었구나. 그 실패로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구나.”라는 넉넉한 믿음의 고백으로 원수 같은 과거까지 사랑으로 품고 승화시켜 나갈 때 멋지고 사랑스런 미래가 펼쳐진다. 영안이 열렸다는 것은 ‘신비한 은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앞세워 사명 따라 사는 것’이다.<2019.6.26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