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역사와 그리스도 (창세기 1장 14-23절)
일부 성경학자는 창조 사역을 ‘예수님의 사역’과 연관시켜 우화적으로 해석한다. 그 해석에 의하면 창조 첫날의 빛은 물리적인 빛이 아닌 참 빛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예표한다. 사도 요한은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라고 기록하며 예수님을 빛으로 표현했다(요 1:9). 어거스틴도 첫째 날의 빛을 영적인 빛으로 해석했다.
둘째 날에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뉘는 역사는 예수님의 죽음을 예표한다. 둘째 날에 두 번 반복되는 어휘는 “나뉘라 하시고(6절)”와 “나뉘게 하시니(7절)”이다. 둘째 날에는 분리의 역사가 일어났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소와 지성소를 가린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지는 분리가 일어났다. 그래서 창조 사역 중 둘째 날에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없다.
셋째 날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구절이 두 번 나온다. 그것을 보면 “이날은 하나님께 갑절의 기쁨이 있었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 셋째 날은 물로부터 땅이 드러나고 씨가 맺어지고 열매가 맺어지는 역사가 나타나는 날로서 예수님의 부활을 예표한다. 예수님이 3일 만에 부활하셨듯이 창조 사역에서도 부활이 예표된 날이 3일째였다.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이 창조되었는데 ‘예수님의 승천’을 예표한다. 넷째 날의 빛은 3가지 기능을 한다(17-18절). 땅을 비추는 기능은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을 상징하고 낮과 밤을 주관하는 기능은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는 예수님을 상징하고 빛과 어둠을 나누는 기능은 궁극적인 심판자가 되신 예수님을 상징한다.
다섯째 날은 사람과 땅의 생물을 제외한 모든 생물을 창조한 날로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의 사역’을 예표한다. 다섯째 날의 창조에서 볼 수 있는 충일한 생명력은 오순절 이후 성령의 역사로 기독교가 널리 퍼지게 된 사실을 예표한다.
여섯째 날은 땅의 생물과 인간을 창조한 날로 예수님의 재림사역을 예표한다. 로마서 5장 14절은 아담을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했다. 아담으로 대표된 인간 창조는 다른 생명과는 달리 완전한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 이후에 변화될 성도의 생명이 완전체가 됨을 암시한다.
이상의 영적 창조론은 해석상의 논리지 성경적인 진리는 아니다. 성경을 지나치게 영적으로나 우화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될 위험성이 크기에 주의해야 한다. 다만 영적 창조론을 참고할 필요는 있다. 성경의 핵심 주제가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구약의 수많은 사건과 인물과 환경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내기를 원하는 가장 위대한 대상은 바로 예수님이다.<2019.7.8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