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문화 명령(1) (창세기 1장 24-31절)
< 성도의 문화 사명 >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은 “지구의 지배자가 되라.”는 명령이 아니라 “물질세계를 잘 관리하라.”는 문화 명령이다. 물질적인 영역 정복에도 힘쓰라. 불신자에게 물질을 다 뺏기고 가난을 자랑하지 말라. 잘 쓰지 못하는 사람에게 돈이 주어지면 사회의 고통이 심해진다. 기독교는 가난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다.
한 교인이 골방에서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거룩하게 살려고 물질에 초연하고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가난해도 만족하게 하소서.” 물론 가난해도 만족하며 살아야 하지만 가난을 거룩함의 표시나 영성의 지표로 여기지 말라. 특히 게으름과 무책임으로 인한 가난은 수치스러운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한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종 셋에게 각각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었다. 때가 되어 돌아와 종들을 부르자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고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두 달란트를 더 남겼다. 주인은 두 종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했다. 그때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말했다. “주인님! 저는 한 달란트를 그냥 땅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한 달란트 그대로 받으십시오.” 주인은 받은 것을 묵혀둔 그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면서 그의 것을 빼앗아 많이 남긴 자에게 주었다.
더 차지하려는 욕심을 버리되 더 남기려는 사명을 가지라. 가난 중에 만족하는 차원에서 끝나지 말고 더 많이 남기려고 힘쓰고 지혜를 발휘하라. 예수님이 나를 택한 이유는 열매를 많이 맺게 하기 위해서다(요 15:16). 그 목적을 이루려면 물질에 초연한 것을 자랑하지 말고 물질을 다스리려는 거룩한 도전에 나서라. 복음은 빚을 청산하는 은혜도 포함하는 것이다.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축복을 소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재정 문제로 상처받는다. 대부분 건강 문제보다 재정 문제에서 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 현실을 외면하고 물질을 외면해서 불신 세상에 물질적인 영역을 빼앗기지 말라. 기독교는 영적인 일과 물질적인 일을 분리시키는 이원론적인 종교가 아니다. 물질적인 영역도 하나님의 원리로 힘써 정복하라. 영혼 문제를 해결해주신 구원의 하나님은 생활 문제도 해결해주시는 섭리의 하나님이다.
돈을 우상화하지 말라는 말은 돈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돈을 무시하는 삶은 영성이 좋은 사명적인 삶이 아니고 영적인 허영이다. 벌지 않고 쓸 것도 없는 삶은 문화 명령을 외면하는 삶이다. 하나님은 잘 벌고 잘 쓰는 삶을 원하신다. 거룩한 사명과 비전을 이루려고 돈을 힘써 바르게 버는 삶은 복된 삶이다. 하나님 중심적인 믿음을 가지고 돈도 벌고 사업도 잘하고 인간관계도 잘하라. 본문은 그런 문화 사명을 도전한다.<2019.7.9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