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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호
작성자 요삼일육선교회 등록일 2019-07-12
창세기 5-14장
8/01(목) 창세기(24)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1) (창 5:21-24)
8/02(금) 창세기(25)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2) (창 5:21-24)
8/03(토) 창세기(26)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3가지 (창 5:25-32)

8/05(월) 창세기(27) 복으로 오해하지 말 것 (창 6:1-8)
8/06(화) 창세기(28) 노아의 방주가 주는 교훈 (창 6:9-22)
8/07(수) 창세기(29)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창 7:1-12)
8/08(목) 창세기(30) 교회는 어떤 공동체인가? (창 7:13-24)
8/09(금) 창세기(31) 희망을 가지고 전진하라 (창 8:1-14)
8/10(토) 창세기(32) 복된 신앙생활에 필요한 것 (창 8:15-22)

8/12(월) 창세기(33)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창 9:1-7)
8/13(화) 창세기(34) 마음속에 무지개를 두라 (창 9:8-17)
8/14(수) 창세기(35) 은혜를 받는 3대 자세(1) (창 9:18-29)
8/15(목) 창세기(36) 은혜를 받는 3대 자세(2) (창 9:18-29)
8/16(금) 창세기(37) 축복에 대한 바른 관점 (창 10:1-32)
8/17(토) 창세기(38) 바벨탑 사건이 주는 교훈(1) (창 11:1-9)

8/19(월) 창세기(39) 바벨탑 사건이 주는 교훈(2) (창 11:1-9)
8/20(화) 창세기(40) 하나님 안에 거하라(1) (창 11:10-32)
8/21(수) 창세기(41) 하나님 안에 거하라(2) (창 11:10-32)
8/22(목) 창세기(42) 복된 인물이 되는 요소(1) (창 12:1-9)
8/23(금) 창세기(43) 복된 인물이 되는 요소(2) (창 12:1-9)
8/24(토) 창세기(44) 삶의 기근을 극복하는 길 (창 12:10-20)

8/26(월) 창세기(45) 복을 예비하는 선택(1) (창 13:1-9)
8/27(화) 창세기(46) 복을 예비하는 선택(2) (창 13:1-9)
8/28(수) 창세기(47) 바른 선택의 4대 원리 (창 13:10-18)
8/29(목) 창세기(48) 강한 대적을 이기는 길(1) (창 14:1-16)
8/30(금) 창세기(49) 강한 대적을 이기는 길(2) (창 14:1-16)
8/31(토) 창세기(50) 드리고 나누고 베풀라 (창 14:17-24)
마중물 : 진리 안에서 기뻐하라
 <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우라 >
   
  중국은 등소평 집권 후 개혁 개방으로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시진핑 집권 후 그의 독재적인 조치와 애국주의 패권 전략으로 국제적인 신뢰를 많이 잃었다. 급기야 미중 무역 전쟁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단기적으로 중국은 아주 힘들어질 것이다. 미국의 대중 수출액보다 중국의 대미 수출액이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달러 패권도 중국을 어렵게 할 요소다. 교역액에서 달러는 중국 위안화보다 몇십 배 더 많이 사용되는 기축통화다.
   
  특히 현 시점에서 중국이 미국을 이기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세계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변국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길 원해도 미국이 거절하니까 합병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반면에 중국은 이질적인 지역의 분리 독립도 무력으로 막고 오히려 합병하려니까 주변국들이 위협을 느낀다. 게다가 지식재산권을 무시하고 타국 기술을 탈취하고 중국인 구원을 위해 헌신했던 선교사들을 내쫓고 수시로 경제 보복을 가하니까 참된 동맹국이 별로 없다.
 
  지금 중국의 어려움은 사드 보복이 큰 시발점이다. 사드 보복은 미국의 보복을 초래했고 국제 사회의 신용을 크게 잃게 했다. 사드 보복으로 우리도 고통을 받았지만 중국도 상당한 고통을 받았고 국제적 신용을 잃은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은 셈이다. 시진핑의 절대 권력 강화를 위해 취한 애국주의 패권 전략은 중국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중국은 아무리 노력해도 북한처럼 1인 절대 권력 체제를 갖추기 힘들다. 12만km²의 땅과 2500만 인구를 가진 북한에서는 꽤 장기간 절대 권력을 가질 수 있어도 960만km²의 땅과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는 북한과 같은 절대 권력을 가지기 힘들다. 중국은 상당한 자유를 이미 맛보았기에 역사의 바늘을 거꾸로 돌리기 쉽지 않다. 지금 시진핑은 큰 도전과 스트레스를 받아서 조만간 그의 신변에 이상 소식이 들려올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사드 보복을 하는 중국과 단교하자고 하지만 쉽지 않다. 우리의 대중 무역흑자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최대 갑질 고객인 셈이다. 무역 역조도 심하고 한류로 인해 중국 신세대의 문화적 예속이 심해져서 대국이란 자존심이 상처를 입으니까 사드를 빌미로 “한국은 우리로부터 돈만 벌고 마음은 주지 않는다.”고 하며 어리석은 경제 보복에 나선 것이다. 너무 커져버린 한중의 경제 혈맥이 막히면 양쪽 다 힘들어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지금의 위기를 시장 다변화와 신기술 개발과 경제 체질 개선 기회로 삼는 것이다.
   
  사드 보복으로 중국도 어려워지는 것을 보면 인심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조금 힘이 있다고 약한 상대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감정적인 보복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드 문제로 중국이 경제 보복에 나서서 한국도 피해를 입었지만 중국은 국제 사회의 인심을 잃는 더 큰 피해를 입었다. 누가 중국에 투자하겠는가? 결국 중국 경제의 암 덩어리가 사드 보복으로 눈덩이처럼 커진 셈이다. 최근에 일본의 아베도 한국을 향해 경제 보복의 칼을 꺼냈다. 그것도 인심을 잃게 만들어 결국은 일본도 큰 해를 입을 것이다.
   
  남을 미워하며 보복하면 나부터 병에 걸리기 쉽다. 개인관계에서도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하면 대개 나도 피해를 보고 때로는 더 피해를 본다.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하지 말고 정의를 세우려고 하라. 그 정의가 바른 정의라면 내게 피해가 있어도 곧 회복되지만 잘못된 정의라면 내가 더 고통스러워지고 먼저 죽을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의 사드 보복은 안하무인의 패권국가 인상을 심어 미국도 자극해서 미국의 대중 제재를 초래했다.
   
  사드 보복 대상이 한국인 것도 중국을 어렵게 했다. 한국의 경제 규모와 실력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중국은 조금 잘살게 되었다고 교만해져서 자살골을 넣고 물귀신 작전을 펼쳐서 한국도 같이 어려워졌지만 지금의 한국은 예전의 IMF 때와는 달리 경제 체질이 아주 강해졌기에 너무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다만 경제는 작은 혈맥이 막혀도 위기가 생길 수 있기에 잘 대비해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 공적인 재정 및 투자를 확대해 어려움을 타개하려는 시도가 무조건 좋은 일만은 아니다. 나랏돈을 눈먼 돈으로 여기고 빼먹으려는 악인이 도처에 있어서 예전의 자원 외교 사업처럼 큰돈이 누군가의 주머니로 불의하게 들어가 허무하게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적인 재정 확대보다 개인의 기업 의욕을 살려 적절한 이윤을 창출시키고 그 이윤으로 사회적 가치 실현에 기여하게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사람의 힘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인심도 잃지 말아야 하지만 신심은 더 잃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인생은 곧 절벽을 맞이한다. 하나님의 선행적인 은혜가 있기에 생명과 생활이 유지되는 것이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믿음이 없어도 은혜를 주실 때가 있었다. 하나님의 선행적인 은혜가 없었다면 사실상 믿음도 생길 수 없다. 인간의 힘만 믿고 나가면 반드시 패망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것에 앞서야 한다.
   
  < 하나님의 선행적인 은혜 >
   
  누가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이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열여덟 해 동안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었다. 18년을 그렇게 지냈다면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그녀를 보시고 불러 말씀했다.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그녀가 병을 낫게 해달라고 간청하지도 않았는데 예수님은 치유의 은혜를 베푸셨다. 그녀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겨 고쳐주셨을 것이다.
   
  기도해야 하지만 기도가 부족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믿어야 하지만 믿음이 부족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기도와 믿음 이전에 하나님의 선행적인 은혜가 중요하다. 무엇을 하거나 기도로 무엇을 요청하기 전에 먼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히는 것이다. 믿음이 크지 않고 기도를 잘하지 못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어요. 하나님이 필요해요.”라고 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무엇을 해드리는 사람보다 하나님이 무엇을 해주시도록 기회를 드리는 사람을 더 기뻐하신다. 인간 아버지도 “아버지가 없어도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자녀보다 “아버지가 정말 필요해요.”라고 말하는 자녀를 더 기쁘게 여긴다.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고백에 아버지를 향한 신뢰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의와 공로를 과시하지 말라. 영성이 높다는 마음도 버리고 말씀을 많이 알고 기도를 많이 한다는 생각도 버리라.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다 부족한 죄인이다. 세상에는 2종류의 사람만 있다. 드러나지 않은 죄인과 드러난 죄인이다. 죄도 2종류가 있다. 드러나지 않은 죄와 드러난 죄다. 자기의 죄인 됨과 숨겨진 죄를 생각해서 판단도 조심하고 교만은 더 조심하라. 나를 낮추고 하나님이 필요한 줄 알면 하나님의 선행적인 은혜도 더욱 넘치게 주어진다. 예수님이 그녀에게 무조건적으로 치유를 베푸신 것은 선행적인 은혜의 원리를 잘 보여준다.
   
  < 하나님께 직접 기도하라 >
   
  예수님이 치유를 선포하고 안수하자 그녀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안수는 안수하는 주체가 안수받는 객체에게 무엇인가를 전가할 때 한다. 구약시대에는 제물에 안수해서 죄를 전가한 후 제물을 죽였다. 또한 신성모독자를 돌로 치기 전에 신서모독을 듣고 영혼이 더럽혀진 죄를 안수를 통해 그에게 전가했다. 또한 직분을 위임할 때도 안수했다. 예수님과 사도는 신적인 능력을 병자에게 주입해 치유하거나 성령의 능력을 받게 하려고 안수했다.
   
  안수를 너무 쉽게 하거나 너무 쉽게 받지 말라. 직분을 위임할 때도 오래 준비된 사람에게 안수하지 그런 준비도 없는 사람에게 쉽게 안수하지 않는다. 치유와 성령의 능력을 위한 안수도 “그저 하나라도 걸려 역사가 나타나라.”는 식으로 마구 안수하면 안 된다. 그렇게 안수했다가 회복이나 변화가 없으면 그것은 안수를 망령되이 만드는 죄다. 특히 이단이나 악인의 안수를 받으면 더 안 된다. 그의 사악한 영과 수많은 죄가 주입되기 때문이다.
   
  이단이나 탐욕스런 미혹자의 안수받는 것을 지극히 주의하라. 살인죄도 회개하면 용서받지만 이단과 악인의 큰 죄를 주입받으면 치명적이다. 안수를 쉽게 하는 교만도 주의하고 안수를 쉽게 받는 경솔도 주의하라. 예수님처럼 한다면서 믿음과 기도의 준비도 없이 “능력이 나타나라.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안수했다가 성결의 능력과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속이고 속는 것이다. 예수님도 치유할 때 특정한 때에 한해서 안수하셨다.
   
  치유를 위해 안수를 받는 것이나 치유 기도 받는 것도 너무 좋아하지 말라. 직접 치유 기도를 하라. 구약시대처럼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간자가 필요 없다. 신약시대는 기도하라고 권하는 목사가 필요한 것이지 대신 기도해주는 제사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사람을 통하거나 바라보거나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 직접 기도하라. 그리고 은혜받으면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라.
   
  어떤 특정한 능력자만이 치유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기도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능력자라고 선전하는 교만한 사람의 기도보다 자기를 사랑하는 담임목사의 기도가 훨씬 능력이 있다. 치유를 준다고 과시하는 체육관 집회 이단 강사에게 가서 안수 기도 받는 것을 지극히 주의하라. 그것도 일종의 우상숭배다. 치유를 위해 대단한 능력자가 되어야 한다고 여기지 말고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치유기도 한다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야.”라고 여기지 말라. 믿고 기도하면 생각을 초월한 능력이 나로부터도 나타날 수 있다.
   
  치유는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말할 것도 없다. 치유의 성경적인 근거는 많다. 아담의 타락은 사람의 영적인 속성과 육적인 속성을 다 훼손시켰지만 예수님의 구원은 그 두 가지 속성을 다 회복시켰다. 구원에는 치유의 은혜도 포함된다. 죄로 인한 타락으로 질병이 생겼다면 속죄로 인한 구원으로 치유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죽음을 정복한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은 질병을 정복하는 치유의 원천이다.
   
  사람에게 희망의 근거를 두지 말라. 희망의 원천은 예수님이다. 갈릴리의 예수님을 통해 희망을 도전받고 갈보리의 예수님을 통해 희생을 도전받는다. 예수님을 붙잡고 희생하며 나아가면 치유 가능성은 커진다. 세례 요한 같은 인물을 의지해 문제 해결을 꾀하지 말라. 나실인 요한을 의지하기보다 나사렛 예수님을 의지하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간자를 두고 의지하려는 것은 우상숭배이고 기복주의다.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해 기도로 직접 하나님께 찾아가라.
   
  < 안식일의 참된 의미 >
   
  여자가 치유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회당장은 안식일에 예수님이 병을 고치는 일을 해서 율법을 범했다고 분노했다. 전승된 유대 율법서인 <미쉬나>에 의하면 안식일에도 짐 없이 가축을 끌고 나가 2000규빗(910m) 안에서는 물을 먹일 수 있었다. 그때 예수님은 안식일에 목마른 가축을 위해서도 융통성을 발휘하는데 병에 얽매인 사람에게는 더 융통성을 발휘해 사탄의 매임에서 풀어주어야 한다고 말씀했다. 치유는 일하는 것이 아니라 속박에서 풀어주는 것인데 당시 율법주의자들은 안식일 율법의 참된 의미를 망각했다.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알고 지키라.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을 안식일로 지킨다. 기계적인 안식일 준수보다 참된 의미를 따라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안식일은 실제적인 삶에서 영혼과 생명을 부활시키는 날이다. 그래서 신약시대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날 중에서 주일처럼 복된 날은 없고 모든 삶 중에서 주일을 지키는 삶처럼 복된 삶은 없다.
   
  점쟁이는 좋은 날을 택일해준다고 하지만 성경은 이미 좋은 날을 택일해주셨다. 그 날이 주일이다. 사탄도 주일의 축복을 잘 알기에 최대한 못 지키게 방해한다. 그 사실을 깨닫고 주일성수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과감히 물리치라. 주일성수는 “하나님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겠습니다.”라는 고백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신앙고백이다. 하나님은 주일을 힘써 지키는 성도의 인생과 가정을 힘써 지켜주시기에 이런 말도 생겼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켜주었다.”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 연합군 간의 전쟁 직전에 이스라엘의 다얀 국방상은 최첨단 컴퓨터로 전쟁 시뮬레이션을 했다. 아무리 유리하게 시뮬레이션을 해도 이스라엘이 절대 이기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는 곧 컴퓨터를 물리고 “우리는 과학이 아닌 믿음으로 싸운다.”고 선언한 후 안식일 다음날 전쟁을 개시했다. 전쟁에 나갈 때 군인들은 생각했다. “다음 안식일을 지킬 수 있을까? 지켜보자! 아니, 꼭 지키자.” 그리고 다음 안식일을 지키려고 힘써 싸워 6일 만에 아랍 연합군을 항복시켰다.
   
  현대 전쟁사에서 기적의 전쟁으로 여겨지는 그 <6일 전쟁>의 승리의 원천 중 하나가 안식일을 지키려는 군인들의 열심이었다. 인생 전쟁에서도 승리하려면 주일성수는 필수적이다. 주일을 힘써 지키면 주일을 지키는 삶이 내 영혼과 삶을 지켜주고 가정과 사업과 자녀도 지켜준다. 주일성수는 어떤 사탄의 공격이나 역경도 물리치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 진리 안에서 기뻐하라 >
   
  예수님이 안식일의 참된 의미에 대해 말씀하자 모든 반대자들은 부끄러워했고 온 무리는 예수님이 하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했다. 대적의 반대가 아무리 심해도 진리를 이길 수는 없다. 성도와 불신자의 차이가 무엇인가? 진리 안에서 성도는 기쁨을 느끼지만 불신자는 수치를 느낀다는 것이다. 참된 자유와 평안은 하나님과 진리에 매일 때 주어진다.
   
  어떤 사람은 만사형통과 신비한 능력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변화된 삶을 원하신다. 신비한 능력과 은사를 보여주어도 마음과 입술이 변화되지 않고 세상에 매여 살면 허무한 믿음이 된다. 사람이 무엇에 매여 사느냐는 것은 행복의 바로미터다. 미신은 믿을수록 자유를 잃고 두려워지고 불안해지고 불행해진다. 그래서 이사나 결혼도 함부로 못하고 점쳐서 이사나 결혼 날짜를 받는다. 심하면 영기가 막힌다고 못도 아무 데나 박지 못한다.
   
  점쟁이가 왜 저주 섞인 말로 불안과 두려움을 주는가? 영혼의 자유를 빼앗고 자기 맘대로 조종하기 위해서다. 점치러 온 사람에게 위로와 평강의 말을 해주는 점쟁이는 없다. 그러면 복채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에 사람의 영혼을 얽매는 말을 넌지시 한다. 그때 많은 말이 필요 없고 이런 말 한마디면 된다. “물을 조심해. 3년이 고비야.” 그 말을 즉시 물리치지 않고 받아들이면 믿음을 다 잃고 3년간 불안과 두려움에 싸여 영혼의 노예처럼 살게 된다.
   
  인생은 크고 작은 일의 연속이다. 하물며 3년간 전혀 일이 없겠는가? 신비한 척하는 애매한 말에 속지 말고 어떤 일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라. 사람들이 자유를 잃고 불행해지는 이유는 참된 자유를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헛된 말에 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매이면 복을 받지만 헛된 말에 매이면 세상과 사탄과 이단에 속박된다. 그 사실을 알기에 <월새기(월간새벽기도)> 사역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필자는 매달 한 권의 <월새기>를 집필하면서 지칠 때가 많다. 밤을 새우는 날도 많다. 이번 <8월호> 집필은 유난히 힘들었다. 그래도 한 달에 한 권씩 순산되어 나오는 것을 보면 기쁘고 행복하다. <월새기>가 수많은 영혼구원과 영혼변화의 역사를 이루고 특히 사탄과 이단에 미혹되는 것을 막는 영적인 방파제 역할을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진리 안에 있는 것도 기쁨이지만 진리를 위해 일하는 것도 기쁨이다.
   
  지금까지 <월새기> 사역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진리를 위해 일하는 기쁨을 가진 동역자들의 은밀한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동역자는 필자의 사역에서 바울을 후원했던 바나바나 루디아와 같은 존재였고 누가의 문서선교를 후원했던 데오빌로와 같은 존재였다. 바나바나 루디아가 없었다면 바울도 없었을 것이고 데오빌로가 없었다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도 없었을 것이다. 왜 그들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음지에서 헌신하는가? 진리 안에서 거룩한 사회성을 세우는데 일조하는 기쁨 때문일 것이다.
   
  진리 안에 있고 말씀에 순종하면 영혼이 얽매이는 것 같지만 그때 오히려 참된 영혼의 자유를 얻는다. 말씀에 매여 사랑의 순종을 하라. 왜 하나님은 사랑의 순종을 원하시는가? 일을 많이 시켜서 사람의 덕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삶을 풍요롭고 복되게 만들기 위해서다. 사랑의 순종이 없으면 영혼은 점차 병든다. 반면에 하나님과 진리에 매이면 여유가 생기고 자유와 평안 가운데 어떤 고난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
   
  어떤 성도는 평안하면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평안해도 나태하지 않도록 늘 피땀을 흘리게 하소서.” 고난이 없기에 능동적으로 고난의 분량을 채우려고 더 땀을 흘리고 더 소외를 즐기고 더 근신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 근신이 없으면 갑자기 극심한 고난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도록 고독과 소외를 적극적으로 즐기고 땀과 수고, 헌신과 나눔, 내버림과 내려놓음 등의 십자가를 능동적으로 앞세워 살라.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드나베의 삶’은 나의 소중한 물질을 떼어내는 아픔이지만 그 아픔은 기쁨과 보람과 행복감을 수반하는 일종의 십자가다. 능동적으로 십자가를 지는 삶 중에서 비교적 실천하기 쉬운 삶이 나의 물질을 떼어내어 나누는 삶이다. 그런 능동적인 나눔의 십자가가 수동적인 고난의 십자가를 막아준다. 그런 십자가 훈련을 통해 진리 안에서 기뻐하고 삶의 의미와 보람과 행복도 키워가고 내일의 축복도 예비하라.
   
  2019년 7월 10일 (월새기 영어 유튜브 D-53/ 월새기 영어판 D-785)
  이한규 (요삼일육선교회 대표/ 월간새벽기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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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34 온라인새벽기도 복된 자리에 오르는 길 (마가복음 10장 35-45절) 요삼일육선교회 64 2024.03.25
10733 이달의 월새기 감사한 후에 헌신하라 (마가복음 1장 29-31절) 요삼일육선교회 68 2024.03.25
10732 공지사항 월새기(월간새벽기도) 교정기관 선교현황 미션퍼블릭 13837 2024.03.25
10731 이달의 월새기 귀신이 무서워하는 것 (마가복음 1장 21-28절) 요삼일육선교회 52 2024.03.23
10730 심화성경공부 성경공부괄호넣기(100) - 여호수아 6부(11-12장) 요삼일육선교회 48 2024.03.22
10729 이달의 월새기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2) (마가복음 1장 14-20절) 요삼일육선교회 78 2024.03.22
10728 온라인새벽기도 자기 변화를 추구하라 (시편 41편 1-4절) 요삼일육선교회 78 2024.03.22
10727 공지사항 (알림) 월간새벽기도 2024년 4월호 발행 요삼일육선교회 42 2024.03.22
10726 담안편지 담안편지(895) - 매력이 넘친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삼일육선교회 48 2024.03.22
10725 자유게시판 정기구독 관련 질문입니다 (3) 주님의연인 51 2024.03.21
10724 온라인새벽기도 최종 승리를 확신하라 (시편 40편 9-17절) 요삼일육선교회 94 2024.03.21
10723 이달의 월새기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1) (마가복음 1장 14-20절) 요삼일육선교회 78 2024.03.21
10722 온라인새벽기도 세상에서 길을 내라 (시편 40편 4-8절) 요삼일육선교회 89 2024.03.20
10721 이달의 월새기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라 (마가복음 1장 9-13절) 요삼일육선교회 63 2024.03.20
10720 대표기도 주일예배 대표기도 (이창규전도사) 요삼일육선교회 58 2024.03.20
10719 온라인새벽기도 능력 있는 기도 (시편 39편 8-13절) 요삼일육선교회 80 2024.03.19
10718 이달의 월새기 예수님 안에서 변화되라(2) (마가복음 1장 2-8절) 요삼일육선교회 72 2024.03.19
10717 자유게시판 일본에서 정기구독 (1) 김갈렙 46 2024.03.19
10716 주일설교 속사람의 변화를 이루라 (마가복음 7장 1-23절) 요삼일육선교회 67 20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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