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안에 거하라(1) (창세기 11장 10-32절)
누구에게나 이별의 순간은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잘 극복해 창조적인 이별로 만드는 것이다. 가끔 제3자의 가벼운 언행으로 거리낌이나 잘못이 없는 사람 사이가 벌어진다. 교회에서도 제3자에 의해 담임목사와 부목사, 목사와 장로, 심지어는 목사와 사모 간에 사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어떤 교인은 목사님은 좋은데 사모님이 별로라고 한다. 그 말은 목사를 높여주는 말이 아니라 목사와 사모를 은근히 갈라놓는 말이다.
어떤 전도사는 자기가 신학을 한 사역자이기에 사모보다 앞선 존재로 여긴다. 그러나 목사와 사모의 사이가 살갑지 않고 심지어는 갈등이 있어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사모를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 전도사가 사역적으로는 목사와 더 가까이 있는 시간이 많아도 위치적으로는 자신을 감추고 사모 뒤에 서려고 해야 복된 관계가 지속된다.
나를 감추고 기쁘게 순종할 수 있는 곳을 찾으면 내게 맞는 복된 가나안 땅이 예비되어 있다. 유교적인 문화로 인해 한국 교회에서는 ‘목회자의 한몸 리더십’이 잘못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지만 사실 그것은 성경적인 원리다. 사모가 겸양해서 스스로 감추고 낮출 수는 있어도 남이 “사모는 교회 일에서 뒤로 빠져.”라고 하면 안 된다.
사역적으로 사모는 전도사를 앞세우는 것이 좋고 위치적으로 전도사는 사모를 앞세우는 것이 좋다. 아무리 좋은 사람도 부부 사이를 벌리면 사실상 좋은 사람이 아니다. 아내가 남편 때문에 교회를 잘 못 나올 때 이단 교주는 무조건 부부 사이를 벌린다. 먼저 “성경은 가족도 버리고 뒤돌아보지 말라고 했어요.”라고 한다. 그래도 계속 남편 눈치를 보면 어떻게든지 정떨어지게 해서 부부 사이를 벌려 영혼을 훔친다. 그러나 참된 목자는 아내에게 믿음의 권면을 하면서도 부부 사이를 벌리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리 불만스러워도 리더가 팔로워의 부부 사이를 벌리지 않으려고 힘쓰듯이 팔로워도 리더의 부부 사이를 벌리지 않으려고 힘써야 한다. 그것이 사람됨이고 성도됨이다. 앞으로 교회에서 “목사님은 좋은데 사모님은 글쎄요.”라는 생각이나 그 반대의 생각이 없게 하라. 그런 생각은 의도하지 않게 목회자 부부 사이를 벌어지게 할 수도 있다.
목회자의 한몸 리더십에 기쁘게 순종하기 힘들고 오랜 기도로도 극복할 수 없다면 은혜를 앞세워 가나안 땅으로 과감히 출발하라. 오래 기도는 해도 오래 머뭇거리지는 말라.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라 과감히 결단하면 신기하게 더욱 복된 미래가 펼쳐진다. 하나님의 뜻 안에 있기만 하면 이별을 얼마든지 창조적인 이별로 만들 수 있다. 아브람은 떠남과 이별을 창조적으로 만든 성경의 대표적인 모델이다.<2019.8.20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