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바라보고 나아가라 (창세기 19장 12-29절)
< 물질주의를 잘 극복하라 >
신앙생활에서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드나베의 삶’이 왜 생각 이상으로 중요한가? 첫째,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둘째, 공동체에 힘을 보태는 책임감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보상을 넘치게 예비하기 때문이다. 넷째, 드림을 통해 탐욕을 극복하는 능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물질주의를 극복하면 인생의 의미와 보람과 행복도 커진다. 물질을 외면하지 않고 잘 선용하려고 추구하면서도 물질주의를 잘 극복하는 삶은 성도의 평생 과제다. 사람에게 선한 변화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런 변화를 이루려면 구체적으로 어디선가 선한 변화의 동력을 얻어야 한다. 그 동력을 얻는 데 실제로 큰 보탬이 되는 삶이 ‘드나베의 삶’을 통해 물질주의를 극복하는 삶이다.
혼자 챙기기에 급급하면 채워지지는 않고 헐떡임만 심해진다. 영혼을 물질로 채우려고 하면 허무감만 커진다. 영혼의 바다는 하나님으로만 채워진다.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대상은 물질이 아닌 하나님이다. 물질을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을 얻는 도구로 잘 사용하라. 참된 믿음을 통해 물질주의를 깨라. 왜 현대 형통신학이 위험한가? 물질주의를 깨기보다 오히려 조장하기 때문이다.
참된 믿음이 가시적인 축복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래도 가시적인 축복을 믿음의 주된 목표로 삼지 말고 저절로 따라오게 하라. 그래야 원하는 것을 이루거나 얻지 못해도 낙심과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이 더 많이 가지는 것에 있다는 아론의 종교에 미혹되지 말고 더 많이 나누는 것에 있다는 바른 기독교를 추구하라. 정당하게 많이 가지려는 노력도 궁극적으로 더 많이 나누기 위해서다. 물질주의를 잘 극복해야 참된 복의 주인공이 된다. <2019.9.17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