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바로미터가 되라 (창세기 20장 1-18절)
< 축복의 바로미터가 되라 >
사람이 죄로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거짓말로 아브라함조차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늘 하나님 앞에 겸허하게 서야 함을 깨닫는다. 내가 죄인임을 자각할 때 하나님의 음성도 듣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는다. 죄인이란 자각이 없으면 자기 공로의식으로 인해 기분 나쁜 일이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 많이 생긴다.
죄인이란 자각이 없으면 “믿음이 없으면 지옥 갑니다.”라는 소리도 기분 나쁘게 들린다. 사람이 기분이 나빠지면 역효과로 인해 천국도 안 가겠다는 식으로 나오기에 요즘은 그런 얘기도 쉽게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돌려서 말한다. “믿으면 축복받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참된 축복을 받기 어려워졌다. 내 죄를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다. 사실상 하나님 앞에서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도 죄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조차 떳떳하고자 한다. 죄는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달리게 한 수치를 가져다주었는데 죄인이 끝까지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무조건 “나는 죄인입니다. 용서하소서.”라며 모든 공로의식을 버리라. 자기 공로에 기대어 살면 인생이 불안해진다. 하나님을 온전히 기댈 때 생기는 든든함이 없기 때문이다. 공로의식을 가지면 참된 사랑도 할 수 없다. 사랑이 있어야 사람은 진정으로 강해진다. 사랑은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이 감춰진 것이다.
사람은 다 죄와 허물이 많다. 남에게 손가락질하지만 나도 손가락질 받을 일을 많이 한다. 그런 인식도 없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죄에 젖으면 죄를 죄처럼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영혼의 무감각이 문제다. 은혜란 죄에 무감각해진 영혼이 죄를 깨닫고 공로의식을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내 믿음조차 내가 가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참된 회개도 할 수 없고 참된 믿음도 가질 수 없다.
죄에 대한 자각을 통해 공로의식을 버리고 더 이상 자기를 내세워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라. 넘어진 사람에게 쉽게 돌을 던지는데 앞장서지 말라. 나중에 보면 그 앞장선 사람이 똑같은 죄로 넘어질 때가 많다. 거짓말하는 정치인을 보면서 “저 도둑놈! 저런 놈은 매장해야 돼.”라는 반응만 하면 사회는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반면에 “저 모습이 내 모습일 수도 있다. 늘 깨어 근신하자.”라고 반응하면 사회는 점차 달라진다. <2019.9.19.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