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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처와 산성 되신 하나님 (요엘 3장 14-16절)
작성자 요삼일육선교회 등록일 2019-10-29
요엘 3장 14-16절
14.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15.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16.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
피난처와 산성 되신 하나님 (요엘 3장 14-16절)
 < 여호와의 날이 가깝다 >
 
    하나님의 심판 날이 되면 진리와 거짓이 온전히 드러나고 심은 대로 거두는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면서 심판자 하나님이시다. 끝이 다가와도 하나님 안에서 맞이하는 끝은 새로운 시작이 된다. 그때부터 새로운 천국 역사가 펼쳐진다. 살다 보면 실망하고 실수하고 실패할 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실망과 실수와 실패를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실 것이다.
 
    사람은 실패해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정의로운 최종 심판을 생각하고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말라. 살다 보면 이용을 당하고 사기를 당하고 왕따를 당하고 상처를 당하고 피해를 당할 때가 있다. 그때 너무 실망하지 말라. 나도 알게 모르게 남에게 피해를 주었을지 모른다. 심지어는 하나님께도 잘못된 행동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도 많았을 것이다.
 
    한 교회에서 화려한 교회당을 건축한 후 하나님의 은혜를 내세우려고 <하나님이 다하셨습니다>란 현수막을 걸었다. 그것을 보고 한 사람이 <하나님이 당하셨습니다>란 패러디를 인터넷에 올렸다. 사람은 하나님을 실망시킬 때도 많다. 그래도 하나님은 실망하지 않고 심판 날까지 오래 참으신다. 하나님의 마음과 심판 날을 생각하며 행동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본질적인 삶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심판할 사람이 많아지면서 여호와의 날인 심판 날은 가까워지고 있다. 본문 14절을 보라.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심판 날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해와 달이 캄캄해지고 별들이 그 빛을 거둔다(15절). 그 심판은 무서운 자연재해와 강력한 핵무기 등이 동반된 심판일 것이란 암시다. 요엘은 이스라엘의 심판을 언급하면서 종말 심판도 이중적으로 언급했다.
 
  < 피난처와 산성이신 하나님 >
 
    요엘이 하나님의 심판이 가깝다고 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공포에 젖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붙들게 하기 위해서다(16절). 요엘은 이스라엘을 모델로 삼아 무서운 종말 심판을 묘사하면서도 하나님이 피난처와 산성이 되시기에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악인에게는 무서운 호통의 말씀이 되겠지만 성도에게는 지극한 위로와 평강의 말씀이 될 것이다. 사탄이 미움과 두려움을 확산시킬 때 그 감정에 빠지지 말라.
 
    사탄의 세력화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분별력과 절제력을 갖추라. 출발선상이 다른 불공평한 현실에 좌절하지 말고 피난처와 산성 되신 하나님을 붙잡고 조금이라도 더 올라서서 불공평한 현실을 깨뜨리려고 하라.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자기 능력으로 당대에도 불공평한 현실을 정당한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깨뜨릴 수 있다. 당대에 그렇게 하지 못하면 뒤따라오는 세대를 위해 작은 길을 열어준 것으로 만족하라.
 
    사람들은 흔히 공부를 잘하면 불공평한 현실을 깨뜨릴 수 있다고 여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공부를 잘하면 기회가 늘어난다. 공부도 하라. 그러나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도 인식하라. 공부는 성공적인 삶을 위해 필요한 전부가 아닌 일부다. 다른 더 중요한 일부도 있다.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되면 인물이 되지만 공부를 잘해도 사람이 되지 못하면 괴물이 된다. 세상과 사회의 비극은 괴물이 리더 위치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품을 벗어날 때 사람은 방랑하는 존재인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가 된다. 하나님 안에 있는 삶보다 큰 축복은 없다. 왜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는가? 하나님 안에서 방랑하는 삶을 멈추었기 때문이다. 불안한 존재는 나도 든든하게 해줄 수 없고 남도 든든하게 해줄 수 없다. 든든함을 통한 평안함이 없으면 편안과 행복과 축복도 얻기 힘들다. 평안의 원천이 필요하다. 누가 평안의 원천인가? 피난처와 산성 되시는 하나님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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