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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에 초점을 두지 말라 (사도행전 3장 11-12절)
작성자 요삼일육선교회 등록일 2019-12-27
사도행전 3장 11-12절
11.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기적에 초점을 두지 말라 (사도행전 3장 11-12절)
 < 오직 예수 그리스도 >
 
   베드로와 요한이 일으켰던 못 걷는 걸인이 성전을 뛰어다니며 하나님을 찬송하자 사람들이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에 모였다(11절) 솔로몬의 행각은 헤롯이 성전을 재건할 때 솔로몬 성전 터에 남은 기초석을 따라 지은 행랑이다. 그 행각은 두 줄의 대리석 기둥과 삼나무로 지붕을 덮은 회랑으로 이뤄졌는데 바깥뜰 동쪽 벽을 따라 죽 이어져서 성전 동편의 부속건물 역할을 했다. 그곳은 종종 대중을 위한 강론 및 집회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 모인 백성들에게 베드로가 말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2절).” 만약 기적이 나를 통해 일어나 사람들이 몰려들면 그때 해야 할 첫 번째 말은 “왜 나를 주목합니까?”라는 말이다. 그 말은 “예수님을 주목하라.”는 말이다. 그와 유사한 상황에서 그렇게 말하라. 즉 내가 성공해서 사람들이 도가 지나치게 칭송하면 그때 즉시 해야 할 말은 “왜 나를 주목합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라는 말이다.
 
   그때 베드로가 자기를 높이거나 주목하게 하는 말을 해서 사람들로부터 “위대한 주의 종!”이란 소리를 듣고 인기를 끌었다면 그는 이단 교주처럼 되었을 것이다. 이단 교주는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받아야 할 칭송을 가로채 사람들을 모아 자기 왕국을 세운다. 이단 교주는 영성과 영력이 탁월한 것처럼 주장하고 기적을 주는 존재처럼 여기게 해서 자기를 우월적으로 바라보는 신도를 이용해 돈을 벌고 힘을 키우지만 베드로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게 했다.
 
   걸인을 낫게 한 믿음은 누구의 믿음인가? 걸인의 믿음인가? 아니면 베드로의 믿음인가? 아니면 베드로와 걸인 혹은 베드로와 요한의 일치된 믿음인가? 아니면 베드로와 요한과 걸인의 일치된 믿음인가? 신학적으로는 모든 견해가 다 가능성이 있지만 베드로와 요한의 일치된 믿음에 걸인이 믿음으로 반응해서 치유의 역사가 나타났다는 것이 무난하다. 누구의 믿음인가보다 누구를 믿었는가가 중요하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치유의 역사를 일으켰다. 결국 베드로의 설교의 핵심 메시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다.
 
  < 기적에 초점을 두지 말라 >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지만 기적이 기독교의 근거는 아니다. 다른 모든 종교는 대부분 기적을 믿음의 근거 및 필수조건으로 삼기에 기적이 없으면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강신무당도 기적적인 능력을 내세워 사람을 미혹한다. 반면에 기독교는 믿음의 근거를 ‘기적’에 두지 않고 ‘계시’에 둔다. 그것이 기독교와 타 종교의 결정적인 차이이고 ‘성숙한 신앙’과 ‘미숙한 신앙’의 결정적인 차이다.
 
   기독교 계시의 출발점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믿는다’에 강조를 두지 않고 ‘예수님’에 강조를 둔다. 또한 얼마나 열심히 믿느냐보다 무엇을 믿느냐를 중시한다. 본문의 못 걷는 걸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되었다. 누가 그 기적을 이루셨는가? 하나님이 이루셨다. 병자가 고침 받았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 일을 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다. 그 정의는 ‘기적의 하나님’이란 정의보다 더 위대한 정의다. 하나님은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하는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참새 두 마리의 삶도 주관하는 하나님이시다(마 10:29). 하나님은 위대한 일에서도 위대하시지만 사소한 일에서도 위대하시다. 하나님은 역사적인 큰 기적도 일으키지만 내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살펴주신다. 하나님을 기적의 하나님으로만 보는 것은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적의 하나님으로만 보면 시험과 불평이 끊이지 않고 또한 참된 기적과 은혜도 주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기적적인 삶’만 주관하지 않고 기적 이외의 수많은 평범한 삶도 주관하신다. 하나님을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자신의 전인격을 맡길 때 그의 삶에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와 은혜가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기적’에 초점을 두면 참된 기적이 없고 ‘예수님’에 초점을 두면 참된 기적이 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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