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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이겨내는 길 (사도행전 9장 23-25절)
작성자 요삼일육선교회 등록일 2020-01-28
사도행전 9장 23-25절
23.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광야를 이겨내는 길 (사도행전 9장 23-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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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를 이겨내는 길 >
 
   선천적 재능만큼 후천적 준비도 중요하다. 준비는 상당한 능력의 원천이다. 미래를 잘 준비하는 삶이 위대한 예언자적인 삶이다. 인생 광야도 잘 준비하면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 수시로 찾아오는 인생 광야를 잘 이겨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인기에 얽매이지 말라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간 많은 깨달음을 얻은 후 사도 바울은 곧장 화려한 개선장군처럼 예루살렘에 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고 조용히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와 복음을 전했다. 그러자 다메섹 유대인들이 바울 죽이기를 공모했다. 그 계교가 바울에게 알려졌다. 심지어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켰다(24절). 그때 바울의 제자들이 밤에 바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려 탈출시켰다. 그 사실을 알면 바울의 대적들이 비겁하다고 했겠지만 그래도 바울은 그런 비판에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사람의 칭찬에도 연연하지 않았다.
 
   사람의 비판이나 칭찬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 그리고 칭찬이나 인기를 추구할 때는 바르게 추구하려고 하라. 요새 유튜브 1인 방송에서는 구독자를 늘리려고 무리수를 많이 쓴다. 좋은 콘텐츠로 정당하게 구독자를 늘리기보다 자극적인 말로 남의 명예와 인권을 침해하고 구독자를 늘리는 경우도 많다. 어떤 사람은 남의 사생활을 무차별적으로 폭로한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를 씌워 무차별로 폭로하는 사생활 침해를 잘 분별해서 걸러내지 않으면 내 영혼도 점차 오염된다.
 
   나의 기분 전환용으로 서슴없이 남의 사생활 침해를 자행하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따른다. 특히 남의 사생활 폭로로 구독자 수를 늘리고 돈을 버는 비열한 돈벌이는 스스로의 인생을 망치는 것이다. 또한 그런 식으로 남의 행복과 성공을 질투하는 본능에 편승해 비열하게 칭찬과 인기를 얻으려고 하면 혹시 대중의 인기는 얻어도 하나님의 마음은 결코 얻지 못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으로 당대와 후대가 추락한다. 내 미래 및 후대의 행복을 생각해서라도 남에 대한 손가락질은 지극히 주의하라.
 
   어떤 유튜버는 오래 전의 내밀한 사생활까지 까발려 사람들을 키득거리게 하고 구독자 수를 늘린다. 그런 유튜버에 성도마저 휩쓸린다면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만약 나의 몇십 년의 이력도 작은 일까지 탈탈 털린다면 얼마나 가관이겠는가? 독방에서 혼자 행했던 수치스런 일까지 하나님은 탈탈 털어 야단치실 수 있지만 그 수치를 예수님의 보혈로 덮고 보지 않으신다. 그런 하나님 앞에서 남에 대한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삼가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런 모습을 심히 슬퍼하실 것이다.
 
   남의 눈의 작은 티는 보면서 자기 눈의 큰 들보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사생활의 무차별 폭로는 악마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폭로 대상에게 큰 명예 훼손이 될 수도 있다. 고대나 중세에는 명예 훼손죄를 목숨을 걸어야 할 중범죄로 여겼다. 남의 명예 훼손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진중히 드러내라. 명예 훼손을 통해 유튜브 구독자 수와 수입을 늘리는 비열한 인기 전략과 돈벌이 전략에 놀아나지 말라.
 
   풍설에 좌우되기보다 사실에만 좌우되도록 나를 지키라. 잘 모르면 한 발 물러서고 한 마디 덜 말하라.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심을 가지라. 유명한 공인이라도 그의 사생활을 무차별적으로 폭로하는 것은 범죄라는 인식이 보편화된 사회가 성숙하고 건강한 사회다. 정당하고 신중하고 진중한 폭로가 때로는 필요하지만 낄낄거리며 하는 천박하고 무차별적이고 비신사적이고 비겁한 폭로에 휩쓸리는 것은 나의 수치다. 그런 수치가 내게 없게 하라.
 
  2. 열린 마음을 가지라
 
   바울의 제자들이 바울에게 피신하라고 했을 때 바울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어떻게 여러분들을 놔두고 나만 혼자 떠납니까? 그럴 수 없소.” 그때 바울과 바울의 제자들 사이에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표출된 ‘밀어내기와 버티기’가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쁘게 지라고 설교했던 자기가 십자가를 피하는 것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기 체면을 생각하면 다메섹이 남겠다고 고집을 부렸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더욱 큰 뜻을 위해 제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고집을 꺾었다.
 
   사람은 원래 고집스러운 면이 있다. 착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좋은 일에 대한 고집은 필요할 때도 있다. 문제는 나이가 들면서 고집이 심해지는 것이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따라 편리하게 살고 싶은 본능 때문이다. 어른의 인생 경험을 참고하면 매우 유익하다. 다만 어른이 되면 지식 수용 능력과 수용된 지식의 연산 처리 능력이 떨어지는 현실을 인정하고 의식적으로 열린 마음과 열린 귀를 가지도록 더 힘쓰고 세대 차이도 인정해야 한다.
 
   필자의 경우에 어렸을 때 부모가 가장 존경스럽게 느껴질 때는 부모로부터 고생한 얘기를 들을 때였다. 필자의 부친은 1945년에 평양에서 해방의 기쁨을 맞은 후 북한 정권의 정치적 반대자로 몰려 고문을 받고 3개월 간 투옥되었다. 그 얘기를 들을 때는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지금도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부친이 살아계실 때 이런 얘기를 못 나눈 것이다. “아버님! 1945년부터 육이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어떻게 사셨는지 자세히 알려주세요.”
 
   부친은 1946년 서울로 내려와서 학교 선생님으로 있다가 1948년에 한국은행에 다니던 22세의 모친과 결혼했다. 모친은 23세에 첫 딸을 낳고 이듬해에 육이오 전쟁을 겪었다. 전쟁 직후 서울이 3개월간 공산 치하였을 때 부친은 평양에서 수감되었다가 월남한 전력과 선생이란 신분 때문에 총살 일 순위가 될 가능성이 커서 서울 인왕산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며칠에 한 번씩 밤에 먹을 것을 구하러 산에서 집으로 내려왔다.
 
   당시 공산 치하에서 남대문 시장과 필자의 부모가 거주하던 옥인동은 10리 길밖에 안 되는데 쌀값이 크게 차이 났다. 결국 24살의 어린 딸 한 명을 업은 젊은 엄마가 남대문에서 쌀을 사서 옥인동에서 팔아 인왕산에 숨은 29살 남편을 먹여 살렸다. 그때 시청 주변으로 즐비하게 널린 죽은 사람의 시체를 걸어서 지나치며 젊은 엄마가 겁도 없이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고 목숨을 건 장사를 했다. 그런 얘기를 모친으로부터 들을 때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크게 들었다. 물론 철없던 필자는 곧 그 얘기를 잊었다. 그 나쁜 기억력이 문제다.
 
   명절의 가족 모임은 그 나쁜 기억력을 조금이라도 회복시키는 모임으로 존재해야 한다. 필자 세대는 부모로부터 육이오 전쟁 얘기를 들으면 더 사랑하고 효도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러나 지금 세대에게 육이오 전쟁 얘기를 하면 별로 진중하게 들려지지 않는다. 그것을 철없게 여기며 “너희는 인생을 너무 몰라.”라고 할 수만은 없다. 선대가 먼저 열린 마음을 가지고 후대에게 육이오 전쟁과 같은 괴리된 얘기로만 소통하기보다 다양하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사려 깊게 후대를 철든 인생으로 이끌어야 한다.
 
   자녀를 철들게 하는 방법도 때와 시기에 따라 변화를 주어야 한다. 자녀의 철없음만 탓하지 말라. 세대 갈등이 자녀의 철없는 모습 때문일 수도 있지만 부모의 과거지향적인 모습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성찰을 위해 기도가 필요하다. 생각 없이 무작정 기도만 하지 말라. 생각하고 성찰하고 땀 흘려 준비하면서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무작정 많이 기도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기도를 생활화해서 매 순간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창조적인 지혜를 받으며 살라는 말씀이다. 그때 생기는 열린 마음과 열린 귀가 복의 원천이다.
 
  3. 하나님을 깊이 만나라
 
   예전에 인생의 핵을 가진 삶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할 때 갑자기 우주의 광대함으로 생각이 미쳤다. 우주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항성, 행성, 위성과 같은 별들이 있는 부분과 그 사이에 있는 훨씬 광대한 암흑 공간 부분이다. 광대한 우주의 암흑 공간에 어떤 비밀이 감춰져 있을까를 생각하면 인생의 연약성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면 하나님을 더욱 추구하게 되고 그러면서 광야의 삶도 비교적 쉽게 이겨내게 된다.
 
   욥은 극심한 고난을 당한 후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했다(욥 1:21). 자신의 연약함과 피조물 됨을 겸손히 하나님 앞에 인정한 것이다. 불행의 밤이 찾아오면 먼저 자신이 연약한 피조물임을 인정하라. 불행의 이유를 철학적으로 너무 자세히 분석하지 말라. 광야의 고난과 상처를 이기는 가장 위대한 비결은 ‘분석’이 아닌 ‘예배’에 있다.
 
   앞으로 천국에 가면 하나님을 뵙고 고난의 비밀은 물론 신비한 우주만물의 원리를 다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소망이 있기에 빨리 하나님께 가고 싶다. 어떻게 빨리 가는가? 순교의 길로 억지로 가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때에 천국에 가기를 원하신다. 성도는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 생명을 주관하려고 하면 안 된다. 하나님 앞에 빨리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그것은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활용해서 복음 전파라는 성도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려고 열심히 사는 방법이다.
 
   요새 매달 <월간새벽기도> 한 권을 계속 집필하니까 필자에게는 한 달이 정신없이 지나가면서 마치 한 주처럼 느껴진다. 그처럼 거룩하고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살다 보면 사회에 큰 공헌도 하면서 어느새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을 빨리 뵙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매일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면서 천국에 가기 전에 이미 천국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인생 광야를 두려워하지 말라. 칭찬을 너무 바라지 말고 십자가의 복음을 꼭 붙잡고서 열린 마음과 열린 귀를 가지고 양심과 현실과 후대의 소리를 잘 들으며 살라. 무엇보다 매일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이루라. 그러면 광야조차 성숙한 믿음을 가진 나를 빚어내는 창조적인 장소로 변할 것이다. 늘 사도 바울처럼 광야 기간을 앞으로 주어질 인생 성공과 천국 상급을 예비하는 최대 준비 기간으로 만들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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