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십자가만 자랑하라 (사도행전 17장 16-21절 )
십자가는 초라하지만 십자가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진리를 믿을 때 거기서 진짜 능력이 나온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렇게 질타한다. “기독교만 구원이 있다고 하는 것은 독선이다.” 포용력 있는 말 같지만 ‘독실’을 ‘독선’으로 모는 것은 잘못이다. 결혼 후에 배우자만 바라보라는 것이 독선인가? 모든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결혼 관계에서는 사랑의 대상이 하나여야 한다. 그것을 독선으로 몰아붙이면 참된 변화를 주지 못한다. 그런 진리를 체험하고 바울은 십자가만 자랑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결심과 십자가의 진리가 아덴처럼 헬라의 중심 도시인 고린도에서 통할까 하는 두려움이 바울에게 있었을 것이다. 철학적 논리로 화려하게 전해도 안 되는데 사람 죽이는 형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전하면 사람들이 조롱하지 않을까 하고 처음에는 두려워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고린도 전도는 대성공을 이뤘고 결국 그 당시 신약 교회에서 가장 큰 교회가 고린도 지역에 세워질 수 있었다.
아덴에서의 실패와 고린도에서의 성공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는가? 환경도 유사했고 전하는 사람도 같았다. 유일하게 십자가가 있느냐의 차이였다. 똑같은 인생이지만 십자가에 따라 성공과 실패의 차이가 나타난다. 십자가는 성공과 능력의 원천이다. 루터가 어떻게 종교 개혁을 일으킬 수 있었는가? 그에게는 물질이나 인맥이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십자가였다. 십자가를 앞세워 그는 종교 개혁을 일으킬 수 있었다.
종교 개혁 전에 루터는 철저한 구도자였다. 그는 여러 번 굶어 죽기 직전까지 금식하며 끊임없이 자문했다. “내가 충분할 정도로 굶었나? 충분할 정도로 추웠나? 충분할 정도로 가난했나? 충분할 정도로 거룩했나?” 그렇게 살았지만 아무리 해도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결국 스스로 계명을 완벽히 지킴으로 구원받을 수 없음을 깨닫고 십자가를 붙들었다. 그리고 십자가만 의지하고 거대한 반대 세력과 싸워 종교 개혁을 이뤄 냈다. 십자가를 앞세우면 산과 같은 문제도 정복할 수 있지만 자기를 앞세우면 작은 문제에도 넘어진다.<2020.5.9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