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3장 1-13절
< 살면서 분명히 해야 할 것 >
< 살면서 분명히 해야 할 것 >
죄의 문제를 해결한 성도가 내적인 평안을 얻으려면 살면서 분명히 해야 할 4가지가 있다. 첫째, 삶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추구하는 일이 자기에게 맞는 정당한 일이라고 확신하면 그런 일이 있는 것만으로도 평안과 행복이 생긴다. 사도 바울이 고난 중에도 평안과 기쁨을 잃지 않았던 것은 삶의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둘째, 소속이 분명해야 한다. 한 사람에게 매이는 것이 참된 자유를 얻는 길임을 아는 사람만이 결혼할 자격이 있고 결국 행복과 평안도 얻는다. 고귀한 대상에게 스스로 매이면 고귀한 자유를 얻는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 매이고 교회에 매이는 것은 고귀한 자유와 대 평안을 얻는 핵심 원천이다. 마음과 몸과 삶을 모두 예수님의 손에 맡기면 환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얻는다.
셋째, 천국 소망이 분명해야 한다. 종말이 불확실하면 아무리 소유가 많고 권세가 있어도 평안이 없고 그때는 몸이 조금만 아파도 겁이 덜컥 난다. 사도 바울은 마음과 머리에 복음과 천국 소망으로 꽉 찬 상태에서 천국을 사모하며 살았기에 어떤 환경에서도 평안을 잃지 않았다. 천국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면 다른 문제는 다 작게 느껴지면서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얻는다.
넷째, 나눔의 삶이 분명해야 한다. 평안은 나눔과 비례한다. 나눌 줄 모르면 마음이 궁핍해지고 결국 삶도 궁핍해지지만 잘 나누려고 하면 마음이 풍성해지고 결국 삶도 풍성해진다. 잘 나누려는 마음도 구하고 잘 나눌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도 구하라. 가난하면 잘 나누기도 힘들고 삶이 비굴해지기 쉽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때도 많다. 청빈한 삶이란 최선이 아닌 차선의 삶에 만족하지 말라. 때로는 차선의 삶이 최선의 삶을 이루는 데 최대 걸림돌이 된다.
청빈(淸貧)이란 말에서 ‘맑을 청(淸)’은 좋아도 ‘가난할 빈(貧)’은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청빈한 삶이 최선의 삶은 아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과실을 많이 맺기를 원하신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레는 많이 벌어 많이 나누라고 했다.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열심히 벌어 좋은 일에 많이 쓰게 하소서.” 하늘나라 장부에는 번 돈은 기록되지 않고 쓴 돈만 기록된다. 축복의 샘물은 퍼내야 계속 솟아난다. 퍼내지 않으면 조금씩 썩다가 나중에는 물 근원까지 썩는다. <20.8.13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